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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박애주의 정신의 깊이

[NYT 터닝 포인트 2022]

(서울=뉴스1) 박병진 기자 | 2022-01-02 09:30 송고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2'가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변화의 파고를 넘어서: 디지털 세상과 세대교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터닝 포인트: 연구원들의 추산에 따르면 2021년에만 1,400명이 넘는 이주민들이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했다.

아프리카의 한 묘지 정원은 우리가 전 세계 이주민들이 견뎌내야 했던 위험을 인식하게 만든다.
현재 지중해를 건너려다 익명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인들의 정확한 숫자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육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통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남유럽과 북아프리카의 해안경비대가 구조한 사람들의 수에 근거한 추산에 따르면 남성, 여성, 아동을 포함한 수천 명의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매년 바다에 빠져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인간적인 절망의 연쇄적 사건의 끝자락에는 지중해의 잔혹한 해류로 인해서 해안으로 떠밀려온 이주민들의 조각난 시신을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장소 중 하나는 튀니지 남동부의 자르지스다. 지난 2021년 6월 알제리의 예술가인 라시드 코라이치가 자스민 꽃과 꽃피는 오렌지 나무 향기를 풍기는 공동묘지를 이곳에 짓기로 결정했다.
코라이치는 이곳을 '아프리카 정원'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 정원 묘지에 가 본 적이 없지만, 르몽드 신문에 실린 이 묘지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에 충격을 받았다. 한 기자는 '빗물과 새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란색과 초록색 컵'이 하얀 무덤에 세워져 있다고 썼다.

코라이치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 낙원 같은 아름다움을 '바다에서 운명을 다한'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죽음을 맞는 동안 그들이 견뎌낸 고통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정원 묘지는 이미 거의 만원이다. 끔찍한 희생의 규모를 나타내는 증언을 간직한 채 말이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지구촌은 원래 위험한 자연적인 국경으로 가득 차 있다. 가령,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리오 그란데 강은 매년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곳은 중부 지중해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2014년부터 약 2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이 바다에서 죽거나 실종됐다. 이 숫자는 심지어 그리스와 터키의 해안에서 동부 지중해 속으로 사라진 중동과 동부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은 포함하지도 않은 것이다.

모든 사람은 남반구 사람들이 북반구로 떠나려는 이유를 알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 이주민들이 남반구는 살기가 어렵고, 척박하고,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지도 않기 때문에 집을 버리고 떠난다고 생각한다. 북반구도 살기 어렵고, 척박하고,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이주민들이 이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블랙 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 북서부 머그레브에서 온 이 남녀들은 대부분 젊고 목숨을 걸고 리비아를 거쳐 지중해 중부를 횡단해서 유럽으로 항해한다. 단지 참고 사는 것을 중단하고, 새 삶을 시작하고, 가족에게 미래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전체 여정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나는 항상 미국의 재난 영화에서 대재앙을 보여주는 반복되는 친숙한 시나리오에 충격을 받곤 한다. 전기가 끊긴다. 수돗물도 끊긴다. 식량 안보는 없다. 병원도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당연하게 즐기는 모든 것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이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하지만 세상의 종말에 대한 이 같은 가상의 재현은 인류의 절반이 매일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혜택을 받지 못한 수십억 명에게 삶이란 정말로 깨어있는 악몽이다. 그들에게는 자기 힘으로 먹고, 마시고, 목욕하고, 옷을 입는 일이 일상적인 싸움이다.

계속 심해지는 이러한 비참함의 폭력으로부터 도피하려고 결심한 이주민들은 산다는 것이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은 북반구를 자신이 속한 세계의 정반대로 보는 희망에 눈이 트이고 눈이 먼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북반구란 기꺼이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평화와 평온함을 달성할 수 있는 안식처다.

지중해가 삼켜버리는 사람들은 북반구에 대한 환상을 잃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유럽이나 북아프리카의 구치소에 갇혀 있는 생존자에게는 그러한 환상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이러한 재앙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묻는 것은 유용할까? 북반구와 남반구 간에는 정치적 책임이 공유될 수 있다. 또한, 양측이 비난을 덜어주는 견고한 주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서로 얽혀 있다. 남반구는 오랫동안 북반구에 부를 착취당하는 동안 피해자가 되지 않았던가? 또한, 우리가 말하고 싶든 말든 간에, 북반구는 바다에서 미지의 이주자들을 끌어내 익사로부터 구해내지 않았는가?

우리에게는 18세기 철학자가 도덕철학의 기본 체계 중심에 두었던 보편적인 윤리 규칙인 '정언 명령'이 있다. 그것은 "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해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우리는 임마누엘 칸트의 선구적인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에 이 의무를 빚지고 있다. (지중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주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는 모든 사람은 몸과 정신이 모두 칸트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칭찬과 존중을 받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상당한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지중해가 유럽 문명의 무덤이 아닌 요람으로 계속될 수 있게 한 것은 비정부기구(NGO)나 유엔 사무소의 지원을 받는 선의를 지닌 개인들 덕분이다.

라시드 코라이치와 같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은 우리를 깨어있게 하려고 여기에 있다. 그의 묘지는 지중해의 잃어버린 영혼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뿐이 아니라, 남북 간에 공유돼야 하는 슬픔을 백 마디 말보다 더 잘 표현해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켜잡은 '아프리카의 정원'은 우리가 전 세계 이주민들이 견뎌낸 여건을 인식하게 만들어 공유된 인간애를 새롭게 한다. 관대함과 연대는 환상이 아니다. 그들은 북반구뿐만 아니라 남반구의 사회에도 존재한다.

'아프리카의 정원'은 우리에게 인류 자체를 집단 난파선으로부터 막는 유일한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2) © 뉴스1

다디드 디오프는 프랑스인 어머니와 세네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설 『프레르담』으로 2021년 국제 부커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이자 학자다.


pb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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