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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One] 내 나이가 어때서?…인생 좀 살아본 언니들의 전성시대

할머니 인플루언서 '그랜드플루언서'들, MZ 세대 팬 거느리고 끝없이 성장
평범한 언니들의 '웰 에이징' 카메라에 담는 네덜란드 사진작가 데니스 봄캔스

(에인트호번=뉴스1) 차현정 통신원 | 2022-01-01 12:01 송고
여성의 당당한 노화를 사진으로 남기는 네덜란드 사진 작가 데니스 봄캔스(Denise Boomkens) 의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 게시물 갈무리. © 뉴스1
여성의 당당한 노화를 사진으로 남기는 네덜란드 사진 작가 데니스 봄캔스(Denise Boomkens) 의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 게시물 갈무리. © 뉴스1

'인생은 70부터'를 외치며 백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리는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잘 나가는 사업가로 성장했다. 3040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는 밀라논나 할머니는 최신 유행 패션 정보뿐 아니라 삶에 대한 따스한 철학을 바탕으로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여태까지 나이 듦에 대한 사회적인 고정관념을 깨버리고 새로운 시니어 인플루언서 및 트렌드세터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70년 정도 인생을 살아본 그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누구에게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네덜란드에는 이런 '언니'들을 담아내는 특별한 사진작가가 있다. 사진작가로 다양한 세대와 소통 중인 '그랜드플루언서' 데니스 봄캔스(Denise Boomkens)가 있다. 평범한 여성의 노화라는 특별한 사진을 카메라에 담으며 '언니들의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그녀를 만나봤다.

◇“모든 평범한 여성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세계를 누비던 화려했던 패션작가 데니스는마흔이 넘어 아이를 낳고 육아와 가사를 하던 와중 당당하게 늙어가는 멋진 여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뉴스1
세계를 누비던 화려했던 패션작가 데니스는마흔이 넘어 아이를 낳고 육아와 가사를 하던 와중 당당하게 늙어가는 멋진 여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뉴스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데니스 봄켄스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했던 패션 전문 사진작가였다. 화려한 조명 아래 색색의 옷과 화장을 한 모델들을 더 아름답게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마흔이 넘어 시작된 육아는 그녀의 화려했던 생활 패턴을 하루아침에 바꿔버렸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정한 그녀는 어느 날 문득 왜 마흔이 넘은 주변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는 방송과 잡지에서 다뤄지지 않는지, 왜 아직도 젊고 마른 여성의 사진만 패션 잡지를 가득 채우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데니스는 2년간의 준비 끝에 2018년부터 평범한 여성의 평범한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스스로 느끼는 노화에 대해 솔직히 기록하기로 했다.

어떤 화려한 화장법과 사진 기술로도 노화를 완전히 가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노화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수많은 젊은 모델들의 화려한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던 그녀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성들 앞에 카메라를 들고 섰다.

◇흰 머리에 주름은 기본…"명품 따위 필요 없다. 내 늙은 몸이 명품"

여성의 당당한 노화를 사진으로 남기는 네덜란드 사진 작가 데니스 봄캔스(Denise Boomkens) 의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 게시물 갈무리. © 뉴스1
여성의 당당한 노화를 사진으로 남기는 네덜란드 사진 작가 데니스 봄캔스(Denise Boomkens) 의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 게시물 갈무리. © 뉴스1

데니스의 인스타그램에 소개되는 평범한 여성들은 노화에 대한 기존 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파격적이고 다채롭다. 한껏 멋을 부린 은발의 77세 여성은 60살이 넘어 첫 모델로 데뷔했다. 솔직히 50살 즈음 나이 세는 것을 멈췄다고 고백한다. 숫자를 넘어서니 할 일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제 그녀들은 책을 쓰는 작가로 데뷔하고 모델 활동만으로도 하루가 바쁘다.

그녀가 소개하는 평범한 여성의 모습에는 유행이 없다.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고 신체 일부분을 절제한 모습조차 당당한 맨 얼굴의 여성을 만날 수 있고, 주름을 감추는 화장 대신 꽃잎을 눈썹에 올려놓고, 다이어트는 먼 나라 이야기인 듯 있는 그대로 속임이 없는 모습의 여성들이 가득하다. 흰머리와 깊게 팬 주름은 기본 사항인데, 기품 있어 보이게 한다는 명품 가방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의 당당한 노화를 사진으로 남기는 네덜란드 사진 작가 데니스 봄캔스(Denise Boomkens) 의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 게시물 갈무리. © 뉴스1
여성의 당당한 노화를 사진으로 남기는 네덜란드 사진 작가 데니스 봄캔스(Denise Boomkens) 의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 게시물 갈무리. © 뉴스1

노화에 대한 데니스의 질문에 카메라 앞에 선 그녀들은 한결같이 대답한다.

“웰 에이징(well-ageing)은 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었어요.”

지난 3년 반 이상 평범한 여성의 모습을 기록했던 데니스는 수많은 여성들이 노화를 맞이하며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경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안티에이징(anti-ageing) 제품이나 영양제 광고는 우리로 하여금 나이 듦을 두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면 보톡스나 주름 제거 수술을 해야 할 것만 같기도 합니다. 세상은 완경기를 경험하는 여성들에게 이러한 영양소가 부족하니 영양제를 더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기도 하지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대부분의 40세 이상 여성들은 더 안정적이고 더 견고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들이 보여준 나이 듦은 인생의 두 번째 봄을 맞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설렐 수는 없지요.”

평범한 여성의 노화, 여성끼리 서로 돕는 커뮤니티 문화 등을 다룬 데니스의 이야기는 금세 유명세를 치렀고, 책으로도 발간되어 세계 여러 여성을 결속하고 있다.

지난 9월 데니스는 ‘당당하게 늙는 기술(And bloom the art of aging unapologetically)’이란 책을 내고 세계 여러 여성들과 소통하고 있다.© 뉴스1
지난 9월 데니스는 ‘당당하게 늙는 기술(And bloom the art of aging unapologetically)’이란 책을 내고 세계 여러 여성들과 소통하고 있다.© 뉴스1

◇이제 세상은 '그랜드플루언서' 전성시대

한동안 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운 단어가 인플루언서(influencer)였다면, 이제 세상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고 소개하는 그랜드플루언서(Grandfluencers·그랜드 파더, 그랜드 마더와 인플루언서를 결합한 용어로, 소셜 미디어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노인들을 의미)를 주목하고 있다.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는 70대 이상의 그랜드플루언서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던 고질적인 노인질환을 운동으로 이겨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운동법을 알려주고 보조제품을 소개하며 제2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는가 하면, 젊은 세대 못지않은 패션 감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인플루언서들을 관리하며 마케팅에 활용하는 네덜란드의 많은 광고 에이전시는 안정감 있는 이미지가 매출에 적극적인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그랜드플루언서들을 적극 모집하고 있다.

여성의 당당한 노화를 사진으로 남기는 네덜란드 사진 작가 데니스 봄캔스(Denise Boomkens) 의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 게시물 갈무리. © 뉴스1
여성의 당당한 노화를 사진으로 남기는 네덜란드 사진 작가 데니스 봄캔스(Denise Boomkens) 의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 게시물 갈무리. © 뉴스1

네덜란드의 그랜드플루언서들은 노인 전용 건강 보조제품 광고뿐 아니라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 저축 등의 금융 상품 소개, 럭셔리 소비재 홍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어떤 자세로 노화를 바라볼 것인가? 새로운 봄을 기다리듯 두 번째 봄을 기다려본다.


chahjli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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