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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확장]작은 조선학교가 전해준 '만남'의 교훈

(서울=뉴스1)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우리학교> 감독 | 2021-12-04 09:00 송고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감독.© 뉴스1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감독.© 뉴스1

필자는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이하 '몽당연필')에서 일하고 있다. '몽당연필'이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설립됐으니 올해로 꼭 10년째가 됐다. 단체 이름과 설립 목적에도 명확히 드러나 있듯 필자는 '조선학교'를 세상에 올바르게 알리고, 재일조선인과 '좋은 교류'를 하며, 선한 일본사람들과 연대해 조선학교에 대한 각종 '차별'을 불식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일엔 성수아트홀에서 '10주년 기념 소풍 콘서트'를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때문에 불과 150여명의 관객과 함께 했지만 온라인 생중계로 일본 동포들과도 함께했다.  

공연을 직접 참관하거나 온라인으로 생중계를 본 분들도 공감했겠지만 공연자와 축사를 보내준 동포들, 그리고 현장에 모인 회원들 사이엔 따뜻함이 흘렀다. 공연 전 한 온라인 방송 진행자의 인터뷰에서 그 '따뜻함'의 원천을 질문 받았을 때 잘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를 얘기가 오늘 주제다.  
'몽당연필' 회원들이 일본 아이치현 소재 도슌조선초중급학교를 방문해 노래·춤 등을 공연하고 있다. © 뉴스1
'몽당연필' 회원들이 일본 아이치현 소재 도슌조선초중급학교를 방문해 노래·춤 등을 공연하고 있다. © 뉴스1

아주 작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경찰의 압수수색

'몽당연필'이 일본 동포들, 특히 조선학교와 교류할 땐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어쩌면 지난 10년 간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근원이라 해도 무방할 이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문하는 지역의 조선학교 역사를 공부하고 간다. 이를 위한 사전모임에 불참하면 회원이라고 해도 해당 지역을 방문할 수 없다. 둘째, 작은 학교의 경우 방문단 학생들의 이름을 외워 간다. 처음 만나지만 이름이라도 먼저 부르자. 셋째, 사진은 단체가 지정한 사진작가가 찍고 이를 학교 측에 전해 '불가 판정'을 받은 사진을 폐기한 뒤 나머지를 방문단에게 전한다. 방문단은 개인적으로 학교 안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넷째, 조선학교 노래를 배워 학생들과 같이 부르자.  
'너무 엄하고 강제적이지 않느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 원칙에 동의하는 회원들만 '소풍' 행사에 참가하고 조선학교를 방문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하진 않았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세워진 원칙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회원들은 이런 원칙에 동의하고, 조선학교를 방문한 회원들은 이게 '좋은 교류'와 '신뢰'를 얻는 방법임을 공감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교류는 사실 2007년 어느 조선학교에서 일어난 사건과 그 여파에서 힌트를 얻은 거다. 거기서 배운 재일조선인의 손님맞이를 우리 활동에 적용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지난 2007년 4월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복도에 경찰의 강제수색과 그에 항의하는 동포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붙어 있다.. © 뉴스1
지난 2007년 4월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복도에 경찰의 강제수색과 그에 항의하는 동포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붙어 있다.. © 뉴스1

시가조선초급학교와 차고지 허위신고 사건

2007년 4월21일 전철, 그리고 동포들이 마련해 준 미니버스로 시가조선초급학교에 도착한 건 정오 조금 전이었다. 한국에서 온 10여명의 노래패 '우리나라', 민예총 관계자, 필자, 현지 관계자 등이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오사카·교토·시가 공연 마지막 일정이었다.  

그해 1월28일과 2월6일엔 일본 공안경찰의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 관계기관에 대한 비인도적 탄압이 벌어졌다. 2월 사건은 '효고현 조선회관' 압수수색이었다. 세리사법 위반을 빌미로 공안경찰, 기동대 600여명이 효고현 총련본부가 있는 '조선회관'을 수색했다. 명백한 정치 탄압이었다. 이 과정에서 항의하던 동포 청년, 일꾼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보다 앞서 1월엔 시가조선초급학교 강제 수색이 있었다. 이때도 130여명의 공안경찰이 학교에 들어와 무려 6시간 동안 수색했다.

어째서 학생 수 40여명도 안 되는 변두리 작은 초급학교에서 공안경찰이 압수수색을 해야 했을까. 교토 옆에 위치한 시가현의 이 학교 부지엔 작은 주차장이 하나 있는데, 당시 이 주차장에 오사카 번호판을 단 재일동포 차량이 장기 주차를 했고 명백히 '차고지 허위 신고'에 해당한다는 신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경찰 '교통과'가 담당할 문제가 아닌가. 오사카 사람이 시가현 주차장을 장기 이용한 게 불법이라고 하면 당연히 시가현 경찰이 해당 오사카 거주자를 조사해야 하는데 시가현 학교를 수색한 건 '오사카부 경찰'이었다. 게다가 주차장과는 무관한 초등학교 교무실, 교육회실을 수색했다.

이 혼란스런 사건의 진짜 원인은 이후 그들이 압수한 문서를 변호사들이 확인하면서 밝혀졌다. 경찰이 압수한 문서는 학적부, 학부모 명부, 학교에서 운영하는 통장(7개), 그리고 학생들 사진, 메모 등이었다고 한다. 변호사들 추궁에 경찰 측은 학교 통장 자금의 '해외 유출' 파악이 목적이라고 대답했다.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유치반 학생들이 지난 2007년 4월21일 학교에 도착한 노래패 '우리나라' 등 일행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 뉴스1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유치반 학생들이 지난 2007년 4월21일 학교에 도착한 노래패 '우리나라' 등 일행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 뉴스1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유치반 학생들이 지난 2007년 4월21일 한국에서 온 노래패 '우리나라' 등 일행에게 종이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 뉴스1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유치반 학생들이 지난 2007년 4월21일 한국에서 온 노래패 '우리나라' 등 일행에게 종이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 뉴스1

결국 경찰은 교원들 월급도 변변히 지급하지 못하는 형편의 조선학교가 북한으로 송금하지는 않는지 파악하려 한 것이다. 주차법 위반을 핑계로 조선초급학교를 침탈해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든 경찰의 목적은 그로부터 몇 개월 전 경찰청 장관 발언에서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경찰은 북조선(북한)에 대한 압력을 책임지고 있다. 잠재적 사건을 적발하고… 북조선 관계자가 일으키는 사건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다." (2006년 10월 우루마 이와오 일본 경찰청 장관)  

문제가 된 자동차 소유주는 오사카 거주 총련 일꾼이었다. 시가에 아는 동포가 있어 주차를 부탁했었다고 한다.

당시 어처구니없는 일본 경찰의 탄압에 1만3000여명의 동포와 일본인이 항의서명에 동참했다. 체포된 총련 일꾼 등 두 사람은 벌금과 기소 중지로 풀려났으나 상황이 심각했다. 작은 학교에 경찰기동대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주변 일본인들 입에 오르내려 동포들은 주민들 집을 하나하나 방문해 해명해야 했다. 일본 시민들과 조선학교를 갈라놓으려는 당국의 의도가 숨어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7년 4월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교실 게시판에 노래패 '우리나라'가 이 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란 소식이 게시돼 있다. © 뉴스1
지난 2007년 4월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교실 게시판에 노래패 '우리나라'가 이 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란 소식이 게시돼 있다. © 뉴스1

조선학교의 '손님맞이'가 준 교훈

노래패 '우리나라'는 민예총 소속 민중가요 중창단이다. 오랜 기간 인권·노동·통일운동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일본에서도 공연 요구가 있어 동포들 앞에서 노래했고 그 과정에서 동포 예술집단 '가무단' 청년들과도 교류했다고 한다.

효고 총련과 시가조선초급학교에 대한 부당한 탄압에 분노한 강상구 '우리나라' 전 대표는 급히 민예총 예술인들에게 호소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상처받고 저항하는 동포들을 위로해주는 콘서트를 현지에서 열겠단 취지였다. 호응이 컸고 금세 목표액을 달성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효고현 조선회관 압수수색 영상에서 심한 부상을 당한 가무단 청년들 모습을 본 '우리나라' 단원들의 피가 거꾸로 솟았을 거다. 그 직전 영화 '우리학교'를 개봉했던 필자도 '우리나라' 친구들과 친분이 있어 이 순회공연에 동행했다.

2007년 시가조선초급학교를 방문한 우린 짧은 일정의 강행군에도 지친 몸을 한꺼번에 치유해 준 장면과 마주했다. 기타와 음향기재를 들고 학교 정문을 들어선 순간 시가학교 유치반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발이 멈췄다. 귀여운 얼굴로 노래하던 아이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방문자 이름을 손수 적은 종이 목걸이를 하나하나 목에 걸어줬다.

아이들에겐 처음 만나는 외부인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감동이 목을 타고 올라와 눈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학교 복도엔 우리 일행 사진이 붙어 있고 각 사진엔 이름도 적혀 있었다. 교실엔 여기 찾아온 한국 사람들이 누군지 안내하는 각종 신문기사가 걸려 있기도 했다.
 
노래패 '우리나라'가 지난 2007년 4월21일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공연 뒤 마련된 '불고기 모임'에 참석, 노래하고 있다. © 뉴스1
노래패 '우리나라'가 지난 2007년 4월21일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공연 뒤 마련된 '불고기 모임'에 참석, 노래하고 있다. © 뉴스1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학생들의 학부모. © 뉴스1
일본 시가조선초급학교 학생들의 학부모. © 뉴스1

교사들에 의하면 우리 일행 방문 한 달 전부터 노래패 '우리나라'의 노래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친근해지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이런 대접을 받아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의 배려였다.

경찰이 학교를 침탈한 1월28일은 일요일이어서 다행히 학생들이 없었다. 그러나 압수수색의 흔적은 다음날에도 학교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아이들은 부모의 분노와 슬픔을 볼 수밖에 없었다. '왜 경찰이 우리 학교에 들어왔는지' 학생들의 질문에 어른들은 곤혹스러워 했다.

어린 시절 상처는 평생을 가는 법이다. 그 사건 이후 이들은 '외부인'의 학교 방문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교사와 보호자들은 '외부인'인 우릴 어떻게 맞이할까 고민했다. 먼저 아이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수업과 일상을 통해 '우리나라'를 알리고, 이름을 외우게 하고, 활동을 알렸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어머니들은 요리를 하고 아버지들은 학교를 청소했다. 그렇게 마련된 공연이었으니 그 온기와 감동은 평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고마운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배우게 하고, 동시에 이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명확하게 일깨우는 조선학교의 '손님맞이'는 이후에도 '몽당연필'이 간 동포사회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이름 외우기' '학교에 대해 공부하기' '노래 배우기' 등을 통해 보답하자는 게 우리 취지다. 그리고 그런 우리 노력을 동포들도 그대로 느끼고 있다.

노래패 '우리나라'는 그 후 '몽당연필' 공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연했다. 그런 동포 마음을 잘 알고 그 마음을 배워 성장한 데다 한국 내 활동 또한 그때 경험이 디딤돌이 됐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방식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만나는 법이다.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는 그들이 사는 방식으로 우릴 만난다. 70여년 만에 이뤄지는 쉽지 않은 만남이기에 그들 또한 우릴 만날 때 많이 준비하고 긴장하며 기대한다. 그러나 항상 그 준비의 질과 양에서 우리가 훨씬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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