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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ESG 공시의무 위헌론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1-11-15 07:01 송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불량품을 아무 말 않고 파는 행동은 사기가 아니다. 하자가 없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없다고 해야 사기가 된다. 매매거래에 있어서 물건의 하자에 대한 매도인의 침묵은 원칙적으로 사기행위가 아니라는 민법의 원칙 때문에 증권의 매도인에게 ‘말할 의무’를 부과하는 자본시장법이 탄생했다. 증권을 사는 사람이 회사의 모든 측면에 이상이 없는지를 묻는 것은 불가능해서다. 그래서 증권 발행인은 다양한 공시의무를 지며 위반에 대해서는 민형사 제재를 받는다.

ESG 이념의 구현을 실효성 있게 하기 위해 국내외에서는 ESG가 커버하는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한 공시의무 도입이 준비되고 있다. 사실 ESG의 내용과 같이 정량적 현출이 어렵고 범위가 모호한 정보들은 민형사 책임이 수반되는 자본시장법상의 공시의무없이는 그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고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혼란만 증가시킬 수 있다. 미국의 SEC가 필요한 작업을 선도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글로벌 자본시장과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세계 모든 대기업들은 SEC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ESG 공시의무의 위헌론이다. 미국 연방헌법 수정 제1조(First Amendment)가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는 표현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도 포함하는데 법률이 표현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헌법적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종래 증권의 발행회사에 말할 의무를 부과하는 자본시장법에는 헌법적 심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 주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수치와 기능적 내용이 대부분인 ‘G’가 아닌, 가치와 이념을 내장하는 ‘E&S’ 영역에서 기업에 공시를 요구하는 것은 헌법적 심사 대상이라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실제로 2021년 5월에 웨스트버지니아 주 법무장관은 ESG 공시의무가 도입되는 경우 위헌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SEC에 통보했다. 이러한 동향은 지난 200년 동안 회사의 규모와 경제적 비중, 회사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 등에 발생한 큰 변화로 미국에서 회사의 헌법적 권리가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온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제 미국에서 법인인 회사는 자연인과 큰 차이 없는 헌법상 기본권 향유 주체로 변모했고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도 같다. ESG 공시의무 위헌론을 가볍게 보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 사법부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2015년에 연방항소법원(DC)이 미국 기업들이 인권취약국가로부터 광물을 수입하는 경우 그를 공시하게 한 SEC의 규정을 위헌으로 판결한 바 있고 연방대법원도 근래 한 공익단체 관련 소송에서 표현의 강제에 대한 헌법적 심사 강도를 상향 조정한 바 있다. 학계에서는 SEC가 ESG 공시의무를 도입하는 경우 그 강도와 범위가 높을수록 장기간의 소송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SG는 생산의 효율성 제고뿐 아니라 분배의 공정도 실현해서 사회적 안정과 멀리 인권의 신장까지 추구한다는 이념이다. 지금까지 주로 생산에 필요한 도구로 여겨져 왔던 기업에 정치적 이념을 투사해서 단순한 도구 이상의 역할을 요구하려는 획기적 시도다. 미국의 ESG 공시의무 위헌론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새로운 시도는 기존의 여러 가치들과 상충되는 모순도 노정한다. 장기적인 인권의 신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보호하는 헌법의 대원칙과 충돌하기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사회적 가치를 위해 기업을 마치 사람처럼 취급하려면 기업을 사람처럼 대우도 해 주어야 하는 데서 생기는 모순이다.

우리 금융당국도 2026년부터 ESG 공시의무를 도입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제적 정합성 문제와 해외 증시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 때문에 아마도 앞서간 미국 등 다른 나라의 동향과 결론을 참고로 할 것이다. 그렇긴 해도 우리 나름의 준비에 소홀할 수는 없다. 우리 헌법에 합치하는 ESG 공시의무의 강도와 범위를 생각하는 연구와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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