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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개월의 미래' 감독 "임신, 꼭 해야할 이야기…최성은 에너지 넘쳐" [N인터뷰]

남궁선 감독 첫 장편 '십개월의 미래' 최근 개봉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2021-11-01 08:50 송고
남궁선 감독/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뉴스1
남궁선 감독/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뉴스1

남궁선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십개월의 미래'는 정신 차려 보니 임신 10주, 인생 최대 혼돈과 맞닥뜨린 29살 프로그램 개발자 최미래(최성은 분)가 10개월 만에 변화한 인생을 사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소재는 현실적이지만, 영화는 줄곧 유쾌한 감성을 가지고 이어진다.

건축학도로 공부하다 영화에 도전한 남궁선 감독은 2009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이후 여러 단편 작품을 선보인 끝에 이번에 첫 장편작을 세상 밖에 내보였다. 감독은 다른 내용의 장편을 기획하다가 임신을 하면서 새롭게 '십개월의 미래'를 탄생시켰다. 영화는 2018년 한 달간 촬영했으나,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개봉은 쉽게 잡히지 않았고 올해 드디어 공개됐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십개월의 미래'는 지난 14일 개봉한 이후, 6일 만에 관객 1만 명을 돌파, 작은 영화임에도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또한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 제41회 하와이국제영화제, 제16회 파리한국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도 초청을 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남궁선 감독은 최근 뉴스1과 만나 '십개월의 미래'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감독은 "영화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인생의 변수로 인해 한 인물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힘을 느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십개월의 미래' 포스터 © 뉴스1
'십개월의 미래' 포스터 © 뉴스1
-첫 번째 장편작을 선보이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어떻게 기획했나.

▶사실 많은 분들이 장편을 만드는데 오래 걸리는 것 같다. 난 다른 기획을 준비하다가 중간에 아이를 갖게 되면서 갑자기 이 주제를 다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렇게 노선을 한 번 변경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덤비기 쉬운 주제가 아니더라. 여차저차 2018년에나 제작됐고, 코로나가 세상을 바꿔 놓으면서 올해 개봉하게 됐다. 제목처럼 '미래'의 시간이 됐다. 사실 영화를 개봉하고 관객들도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었는데 그 점이 아쉽다. 그런데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6일 만에 1만 명이나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임신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세상이 '이 경험'을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을 비추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더 많은 관객을 향하는 영화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게끔 방향을 잡았다. 임신하고 느낀 건 난 같은 사람으로서,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결심을 한 건데, 생각했던 것보다 주위에서는 내가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이제 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됐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있고, 만약 임신한 사람이 이전과 같이 살아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고 봤다. 임신을 하면서 그전까지 몰랐던 것들이 드러났고, 세상이 내게 대하는 방식도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우리의 어머니들도 이런 느낌이지 않았겠나. 그런데 이를 다룬 이야기가 없었다.

-주인공 미래가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됐는데,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하다 시간이 흐른다. 이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다양하게 나오는데 감독의 의견은 어떤가.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중절을 하지 그러냐고 하기도 하고, 낳으면 된다고 말하기도 하더라. 그 반응이 정말 달랐다. 결과적으로 미래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의아하다는 분들도 있고, 또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그렇더라. 그런데 실제로 그 시간 안에 들어가면, 미래는 10주나 되어서야 임신을 한 걸 알게 됐고, 굉장히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빠르게 정리를 해야 하는데, 미래는 '명분이 없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내가 중절을 하고 비난을 감수할 명분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상황에서 미래가 출산을 한다는 것에 대한 완전한 그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는 이 이야기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가 어떤 선택을 했다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택을 하려다가 시간이 흘러갔을 뿐이다. 실제로도 자신의 일이 됐을 때 빠르게 선택을 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남궁선 감독/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뉴스1
남궁선 감독/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뉴스1
-미래는 영화에서 새로운 엔딩을 그려냈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했나.

▶그렇다. 처음부터 그 엔딩으로 생각했다. 엔딩에서 나오는 모습은 미래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보통 우리가 임신을 했을 때 중절이냐, 출산이냐 두 가지 갈래로 생각할 텐데, 이 영화는 그런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조건 안에 놓인 인물의 경험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으로서 경험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설정했다.

-극중 지나가던 중학생이 임신한 미래의 모습을 보고 욕설을 하는 장면이 삽입되기도 했는데.

▶이 장면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지나가던 중학생이 내게 그런 말을 했고, 그때 당시에 '어린애가 이런 말을 하는구나, 애들이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몰라서 하는 말이겠지'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미래처럼 실제로 싸우지는 못했다.(웃음) 영화에서 미래는 가뜩이나 일도 안 풀리고, 그럼에도 자신은 이제 엄마니까 스스로 자제하고자 하는데, 그런 것을 겪게 되니까 다시 원래 모습이 나온다. 이는 하루아침에, 임신을 한다고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임신부를 대하는 괴롭힘의 한 모습이라고도 생각해서 넣었다. 누군가는 일부러 악의적으로 넣었다고 말하던데, 사실 실제 겪은 일을 순화해서 넣었다.

-최성은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백현진, 서영주, 유이든과의 호흡도 눈길을 끌었다.

▶작품을 준비할 당시 같은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이었지만 그 인연은 아니었고, 연출부에서 추천을 받아서 만나게 됐다. 최성은은 연기 에너지가 엄청나게 있는 친구더라. 연기를 통해서 어디든 가고 싶어 하는 의지가 보였고, 미래에게 필요한 건 이거라는 생각에 캐스팅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촬영하면서 10개월의 시간을 소화해야 하는 조건을 이겨낼 배우이기도 했다. 하하. 백현진씨는 산부인과 의사가 가지고 있는 특이한 뉘앙스를 살릴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다가 찾았다. 정극 연기를 한 사람은 재미없겠다 싶었고, 당시에는 백현진이 지금처럼 연기활동을 하지 않을 때라 딱 맞았다. 김김 역을 맡은 유이든도 정말 김김 같았다. 서영주는 최성은과 비슷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라 둘이 조화가 됐을 때 시너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캐스팅했다.
'십개월의 미래' 스틸컷 © 뉴스1
'십개월의 미래' 스틸컷 © 뉴스1
-최근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을 어떻게 바라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2015년, 처음 이 작품을 기획할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서 마치 이름이 없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고, 이에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임신)을 하는데, 그들도 경험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최근에 임신을 다룬 작품이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다들 이 시대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이게 나의 일이 되지 않아도, 이 경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혼란 속에 빠지는 사람들이 덜 생기지 않을까. 우리가 임신부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사회가 달라지고 바뀔 것이고,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용인되지 않았다. '모성신화'라는 것이 어쨌든 존재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인데 그런 신화적인 것을 요구한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차기작도 준비할 텐데, 혹시 최근에 관심이 가는 주제가 있나.

▶요즘 사회가 팍팍하고, 살기 힘들고, 생존 문제가 삶을 힘들게 만든다. 서로 잔혹하게 하고 싸우고 갈등을 하는데, 이런 파국은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더 인간으로서 공통점을 바라보며,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무드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니까 이제는 인간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시기라고 생각한다. 난 시니컬하지 않은 인간성을 탐구하고 싶다.

-'미래'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영화는 미래라는 인물이 임신을 한 특수 설정이라는 이야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 변수로 인해 크게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에게 내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느끼고 가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사실적이고, 재밌고, 무섭다는 것보다 생각하지 못했던 더 큰 감동이 있는 이야기다.


seung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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