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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00℃] 북한판 '갯마을 차차차'?…평양 남자는 왜 시골로 갔을까

드라마로 상상해본 북한 도시와 시골의 격차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2021-10-16 10:00 송고
편집자주 [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tvN '갯마을차차차' 제공© 뉴스1
tvN '갯마을차차차' 제공© 뉴스1

"다 마음에 안들어. 서울에 있을 걸 괜히 왔어."

홧김에 바닷마을 '공진읍'에 치과를 개원한 윤혜진(신민아)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며 이렇게 말한다. 늘 쓰던 고급 샴푸는 동네 어디에도 팔지 않고, 위생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마을 잔치에 크게 실망한 터다. 그러던 혜진은 만능 백수 '홍반장' 홍두식(김선호)을 만나 어느새 '시골 생활'에 동화된다. tvN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도시와 시골의 생활과 문화 격차에서 오는 해프닝을 현실주의 '도시 여자'와 따뜻한 '시골 남자'의 힐링 로맨스로 풀어냈다.  
도시와 시골 간 '격차'는 북한에도 예외가 없는 것 같다. 올해 초부터 북한 매체에서는 험지로 자원 진출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적극 선전하고 있다. 이들은 금속, 석탄, 채취공업 부문뿐만 아니라 농촌 등 '험지'에 진출해 일손을 돕는다고 북한 매체들은 선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보단 시골이 열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도 말이다. 북한에도 도시와 시골 간 격차를 몸소 느끼는 혜진과 두식의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은 험지로 자원하는 청년들을 애국자라고 선전하고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은 험지로 자원하는 청년들을 애국자라고 선전하고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판 '갯마을 차차차'는 도시 남자와 시골 여자의 이야기

조선(북한)영화 '먼훗날 나의 모습'은 도시 남자와 시골 여자의 이야기다. 평양에서도 '알아주는' 집안의 아들 신준은 어떤 일에도 열정을 보이지 않고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이른바 '금수저'로 묘사된다. 반면 양강도 대홍단군이 고향인 여자 홍수양은 속도전청년돌격대 미장소대 소대장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인물이다. 신준은 수양을 보고 첫눈에 반하지만 자신과는 다른 그의 성격에 뒷걸음질치며 망설인다.  

수양에게 '직진'하기로 마음먹고 찾아간 대홍단에서도 신준은 "우리는 젊은 청춘들인데 일생 이런 곳에 묻혀있는게 솔직히 아깝지 않소?"라며 실언을 해버린다. 수개월 후 두 사람은 평양에서 다시 만나는데, 신준은 자신이 살고 있는 평양집을 수양이 소속된 속도전청년돌격대에서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각성한 신준도 이후 대홍단에 다시 파견해 오고 자신만의 뜨락또르(트랙터) 운전 방법을 연구해 국가로부터 표창을 받는다. 영화는 신준이 '부모의 공적'에 묻혀 살지 않겠다고 수양에게 다짐하며 '열린 결말'로 끝난다.

비슷한 내용의 북한 소설 '버드나무'도 있다. 이번에도 도시 남자와 시골 여자의 이야기다. 평양에서 나고 자란 천일홍은 아버지의 뜻에 이끌려 어느 농촌에 도착하지만 이곳에선 작곡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좌절한다. 그러던 그가 새 품종의 밭 벼 개발에 헌신하는 농업과학원의 딸, 진상금을 만나 변화하기 시작한다. "두메산골의 농장원들에게 흰쌀밥을 먹이려고 비탈밭을 걷는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국가에 헌신하는 상금에게 감명을 받기도 한다. 일홍은 상금처럼 농장 발전에 힘쓰겠다고 결심하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간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농사 중인 북한 신천군 주민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농사 중인 북한 신천군 주민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이 이야기들에는 시골을 기피하던 도시 청년이 모범적인 시골 청년을 만나 스스로 변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시와 시골 간 격차와 생활상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들 스스로 시골을 택했다는 의미다. 청년들에게 '시골에 살자'고 직접적으로 압박하기보단 미담처럼 스스로 변하길 바라는 당국의 의도가 담긴 것 같다. 북한 매체들이 험지로 자원해 가는 청년들을 꾸준히 선전하며 보여주는 이유일 것이다.
또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남한과는 정반대라는 점이 흥미롭다. 여성에게 모범적인 시골 청년의 역할이 자주 주어지는 건 아마도, 북한에서 여성 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난의 행군 이후 커진 영향도 있을 것 같다.  

◇농촌·어촌·산촌…북한이 시골 마을을 선전하는 이유는?

시골에 헌신하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이처럼 조명되는 이유는 북한에서 도시뿐만 아니라 지방이 갖는 의미가 작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급자족, 자력갱생 기조로 경제를 유지하는 북한에서 농촌과 어촌은 식량 수급에 중요 부문을 차지하는 단위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해 태풍과 홍수로 농촌이 큰 피해를 입어 "인민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졌다"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농업을 '주타격전방'으로 정했으며 특히 자연재해 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촉구했다.

이 중 모내기가 시작되는 5월은 농민은 물론이고 북한 주민 전체가 농사일에 동원되는 달이다. "밥 먹는 사람은 모두 농촌을 지원하자"는 말이 있을 정도다. 북한 매체도 5월부터 수확철인 가을까지 농업의 생산 현장을 거의 매일 보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이동이 통제됐을 때도 농업 현장에 '총동원'은 계속됐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서흥범안양어사업소의 사진.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서흥범안양어사업소의 사진.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어촌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각 시, 구들은 '양어'를 전군중적 운동으로 전개해 물고기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자연먹이와 비알곡먹이를 이용해 물고기를 키우는 등 효율적인 방법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어촌에도 지난해 큰물(홍수) 여파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기 때문에 '양어의 과학화' 실현을 위해 관련 자료를 시, 군들에 자주 내려보내주며 학습을 하고 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은 '집짐승' 기르기를 통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북한 대외용 월간지 '조선'은 8월호에서 전변된 강원도 세포지구의 목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거대한 풀판을 조성하고 유치원, 학교, 문화회관 등을 건설에 이곳을 새로운 도시로 일궜다고 매체는 선전했다. 농업과 양어, 축산 등 식량과 연계되는 활동이 주로 이뤄지는 지방에 일손이 모이길 바라는 당국의 소망은 이같은 선전 활동을 통해 나타난다.

◇이국적인 삼지연시?…시골도 '전변하라' 지시한 김정은

북한에서 시골 마을이 갖는 의미가 작지 않은 만큼, 현대화 시도도 올해 들어 더 강조되고 있다. 올해 초 북한은 앞으로 15년간 전국의 200여개 시·군의 모든 리들을 삼지연시의 수준으로,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전변시키겠다고 밝혔다.

백두산 입구에 자리 잡은 삼지연은 북한이 '혁명 성지'로 선전하는 곳으로 지난 2019년 12월 2단계 공사를 마무리하고, 3단계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곳을 관광지구와 혁명사적지로 조성하라는 김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전변' 됐으며 2019년 12월 삼지연군에서 삼지연시로 승격됐다. 조선 9월호에 소개된 삼지연시를 보면 4000여 세대에 달하는 소층, 다층 살림집(주택)들과 380여 동의 공공 및 산업건물들이 솟아나있다. '계획도시'답게 통일되면서도 독특한 형식의 살림집과 편의시설들이 늘어선 모습이다. 이국적인 거리의 풍경도 인상적이다.

북한 대외용 월간지 조선 9월호에 소개된 삼지연시. © 뉴스1
북한 대외용 월간지 조선 9월호에 소개된 삼지연시. © 뉴스1

북한은 삼지연시처럼 "농촌들이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전변되어야 시·군들의 자립적이며 다각적인 발전이 빨라지게 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10~20년 전 건설한 농촌 살림집을 본보기로 삼지 말라고 경계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각 시·군 당 위원회가 주도해 목표를 세울 것을 주문했다. 산간마을은 산간지대 특성을, 바닷가 마을은 해안가 특성을 살리는 등 살림집 설계와 배치를 환경에 어울리고 특색있게 하라는 설명이다.

특히 자연 재해에 취약한 지방에 대한 관리도 강화해 주목된다. 올해 초 8차 당 대회에서 제시한 새로운 5개년 계획에도 수해 예방을 위한 국토관리사업이 포함돼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국토관리사업을 훌륭히 수행한 모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을 일일이 언급하며 관리했다. 기사의 약 3분의1을 할애해 미진한 단위를 질책했는데, 그만큼 국토관리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tvN © 뉴스1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tvN © 뉴스1

드라마 속 갯마을 공진읍은 오지랖 넓고 정 많은 동네다. 기분 전환을 하러 서울로 갔던 혜진도 온통 '공진'과 '홍반장'만을 떠올리다 다시 마을로 향한다. 스스로 험지나 농촌을 향하는 북한 청년들과 이들을 선전하는 당국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지만, 그곳에서도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있을 청년들을 상상해본다. "다 마음에 안들어"라며 불평했던 처음의 혜진처럼, "평양에 있을 걸 괜히 왔어"라는 식의 불평을 하는 청년들도 있지는 않았을까라는 상상도 함께.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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