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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100일→단주→회복…15년째 '알코올 중독' 해방기

[회복자들]③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가 정진완씨
고등학교 때부터 술 달고 살아…회복 후 상담까지

(인천=뉴스1) 이상학 기자 | 2021-09-19 07:06 송고
편집자주 중독과 상처, 고통에서 회복돼 다시 출발한 사람들의 드라마, '회복자들'을 만났습니다. 삶의 끝에 내몰린 절망을 희망으로 이겨낸 우리 이웃들입니다.
정진완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회복자 상담가가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정진완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회복자 상담가가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집안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부모님의 다툼은 어김없이 난투극으로 번졌다. 충돌이 발생한 곳에선 늘 무언가 박살 났다. 노름꾼인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한 어머니는 자해도 했다. 누군가 반드시 말려야 끝나는 싸움의 불똥은 그에게 튀곤 했다.

"저 xx만 아니었으면"는 말을 그는 여전히 기억한다.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회복자 상담가 정진완씨(61)가 네 살 때 겪은 일이다.

불안과 두려움에 떨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이 건넨 술잔은 그에게 '한 줄기 빛' 같았다. 그러나 그 빛이 사라지면 세상은 온통 어둠이었다. 술은 술을 불렀다. 연신 들이킨 그가 술에서 깰 때면 이미 사건·사고에 휘말린 상태였다.  

그랬던 정씨는 어떻게 '회복'한 걸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지 15년째라는 그는 서울시 정신건복지센터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교육과 상담을 통해 회복의 길을 전수하고 있다. 13일 인천 계양구 작전동 모처에서 만난 정씨에게 회복의 의미를 물었다. 

◇"강제 입원, 종교시설 등 회복 노력"

- 술에 빠진 계기가 있을까요?
"중독자 가운데 상처가 없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특히 가정을 보면 건강한 쪽으로 상황을 풀어가는 게 아니라 서로 비난하면서 악화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죠. 저만 해도 아버지에게 폭행 당한 어머니가 자해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기도 했어요. 그때 제 나이는 고작 네 살이었죠."

- 고등학생 때 이미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요?
"당시 어디서든 기를 펴지 못했어요. 친구들이 건넨 술잔을 마시면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죠. 술이 술을 불렀고 술을 마시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어요. 자연스럽게 '술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어요."

- 성인이 돼서도 비슷했나요?
"그렇죠. 그런데 20대 초반부터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겼어요. 정신을 차리면 항상 사건·사고에 휘말려 있었죠. 알코올 중독 양상 중 필름이 끊기는 것도 있습니다."

- 주변과의 관계도 순탄치 않았을 것 같네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기도 하고, 그 상태로 무면허 운전을 해서 또 차를 박살 냈어요. 벌금도 내고 이런 상황이 벌어져도 또 운전대를 잡아요. 내가 나를 죽여버리고 싶은 정도였습니다. 처가에서는 저를 사람 취급 안 했죠. '너 같은 놈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라 한다'고 말까지 했어요."

- 알코올 중독의 '신호'는 무엇일까요?
"가장 심각한 중독 증상은 강박적으로 술을 마시는 거예요. 이 경우 제어 자체가 안 됩니다. 참으려 해도 결국 다시 마시는 악순환이지요. 알코올 중독자라고 하면 폐인이나 낙오자, 실패자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지요."

- 회복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요?
"강제적으로 입원도 하고, 종교시설도 가봤어요. 몇 달 끊는가 싶다가 다시 술잔을 들이키죠. 병원에서 석 달간 참다가 나와 다시 술을 마시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어요. 병원에서 함께 지내던 분이 퇴원하고 연락이 와 공동체를 하나 추천해줬는데 처음엔 안 갔어요.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을 때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병원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느낌말이죠. 약도 강제로 먹게 하는데 그 약이 안정제와 수면제예요. 수면제, 안정제면 말을 잘 들으니까요."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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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은 함께할 때 가능한 것"

당시 정씨는 병원 간호사에게 한 치료공동체를 소개받았다. 대학 교수로 일하다가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사람이 설립한 곳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그는 퇴원하자마자 그곳을 찾아갔다. 처음으로 금주 100일을 넘겼다. 정씨는 "금주 100일"이라고 말할 때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회복과정에서 금주 100일은 그만큼 상징적인 기간이라고 한다.

- 치료공동체는 병원과 많이 달랐나요?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되고, 촉진자(알코올 중독에서 회복한 사람)들의 피드백에 큰 힘을 받았어요. 그게 인연이 돼 제가 매주 금요일 촉진자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알코올 중독은 참 희한한 병이에요. 절대 혼자서 극복되지 않습니다. 혼자 발버둥 쳐서 극복한 사람은 거의 없어요. 모임도 하고 프로그램도 참여해야 해요. 요컨대 '다 함께'해야 술을 끊을 수 있어요."

◇"이젠 처가에서도 반겨줘…"회복=단주+새로운 삶"

정씨는 현재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과거의 자신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회복'을 돕고 있다. 냉랭한 시선을 보내던 처가에서도 "이렇게 따뜻한 사람인지 몰랐다"고 반겨준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 기억에 남는 회복자가 있을까요?
"금주는 100일을 넘기기가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데, 상당히 노력해서 100일을 넘기고 또 마신 분이 계셨어요. 그러고는 폭력을 휘둘러서 집에서 경찰에 신고를 한 거예요. 술기운에 죽겠다고 뛰어내리려던 걸 간발의 차로 경찰이 잡아서 살게 됐는데, 이런 일은 겪고 나서부터는 우리 말을 너무 잘 듣더라고요. 결국엔 회복에 성공했고 지금은 마약퇴치본부에서 양성 과정을 밟고 상담가로 간헐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성공한 케이스죠."

- 회복이란 무엇인가요.
"회복은 술만 먹지 않는 걸 뜻하지 않습니다. 그건 전제조건일 뿐이에요. 술을 먹든 안 먹든 사람이 바뀌는 게 중요하죠. 중독 문제를 겪는 사람을 보면 중독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요. 성격의 왜곡은 물론이고 사고방식이 상당히 자기중심적입니다. 모임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삶을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것이죠. 쉽게 말해 회복은 단주와 새로운 삶을 합친 개념입니다. 술은 안 먹지만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 사람들은 우리끼리 '쌩 단주'를 한다고 해요. 그 사람들의 행태를 '마른 주정뱅이'라고 하죠."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정씨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이들에게 강제적 조치를 하기 어려워 목숨을 잃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치료선상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회복할 기회 없이 떠나간다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을 해결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요?
"선진국들은 입원 후 퇴원하면 회복 프로그램, 자활센터까지 연결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병원에서 퇴원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요. 병원도 손해 볼 거 없다고 생각하죠. 진짜 힘든 사람들은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지경까지 갑니다. 왜냐하면 일어나마자 바로 술을 마시니까요.

- 그런 분에게는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러다가 죽을 수 있는데 입원을 강제로 못 시켜요. 본인이 안 가면 그만이에요. 보호자도 없으면 보호입원도 못하고 사고도 안 치면 행정입원도 못하는 거죠. 인원 찾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그는 오늘 본 사람이 다음 주 만남을 앞두고 숨을 거뒀을 때 너무 안타깝고 힘들다고 했다. 중독자들은 자신들을 가둬놓는다고 생각해 입원을 거부하는 일이 많다. "입원할 바에 죽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라고 한다.

"중독의 특성 중 하나가 숨는 거예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요즘엔 자치구마다 정신건강 복지센터가 있어서 문을 두드리면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거든요. 분명한 건 도움 받으면 치료받을 수 있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니까 치료받을 생각도 못 하고 상태가 나빠지는 거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다들 처음에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뭐 하는 곳인지 경계하다가 가면 갈수록 오길 잘했다는 말을 한다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고집이 센 사람들도 바뀌는 것을 여러 차례 봤고, 회복률도 눈에 띄게 높단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가 회복을 시작한 계기이자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센터 방문을 권유하는 이유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진완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회복자 상담가가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정진완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회복자 상담가가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shakiro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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