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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기적'서 흰쌀밥 같은 역할…소풍 다녀온 것 같아요" [N인터뷰]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1-09-19 09:00 송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뉴스1

화상 인터뷰를 처음 해보는 배우 박정민은 이리저리 화상 통화 프로그램의 필터를 바꾸는 장난으로 인터뷰어들을 웃게 만들었다. 요상한 색안경을 쓰고, 머리에 꽃을 단 채 인터뷰를 하는 그의 모습은 비록 온라인이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편안함'을 감염시켰다.

"좌절이 취미"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한 명의 개인으로 그는 고민이 많은 진지한 성격이지만 영화 '기적'의 기억을 꺼내는 모습은 유독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박정민은 지난 15일 개봉한 '기적'에서 주인공인 준경 역을 소화했고, 이와 관련해 최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적'에서 모두와의 호흡이 너무 좋았어요. 이런 말을 하면 인터뷰라서 하는 말처럼 들릴까봐 말하기도 조심스러운데요, 작년 여름에 촬영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이상해요. 재밌게 촬영했고, 영화를 보면서…전 제가 나온 영화를 재밌게 보지 않는데 처음에 봤을 때, 이 영화는 제가 같이 영화를 만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마음이 좋았어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소풍을 갔다 온 느낌이 들었어요."

'기적'은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인생 목표이자 4차원 수학 천재인 준경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1988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 양원역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연출한 이장훈 감독의 신작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뉴스1

박정민은 '기적'의 시나리오를 받고 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출연을 놓고는 한 차례 거절을 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배역과의 나이차 때문이었다. 1987년생인 박정민은 올해 34세. 그는 제 나이의 절반인 17세 고등학생 역할을 맡을 것에 대해 큰 부담을 느꼈다.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이 자신의 연기를 진짜처럼 받아들이지 않을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의 두 배를 더 산 배우가 17세 연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다고 쳐요, 그런데 관객들이 그걸 용서해주실까? 고민이 됐어요. 감독님에게 너무 좋은데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려고 처음에 찾아갔었죠. 그런데 감독님으로부터 별의 별 아이디어가 쏟아졌어요. 첫 시작을 30대 중년으로 시작해서 플래시백으로 가보는 게 어떠냐 이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감독님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는 계셨구나 싶었어요. 미팅을 해보니 감독님이 너무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 영화와 참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죠. 미팅 기간에 마음을 조금씩 뺏기고 말았어요."

실제 이장훈 감독은 박정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있는 노력 없는 노력을 다 했다. 그가 펭수의 팬이라는 말에 '정준경'이라는 극중 배역의 이름을 새긴 명찰을 단 펭수 인형과 펭수 우산을 잔뜩 선물했다. 박정민은 사실 감독의 이 정성 다한 펭수 선물에 마음이 녹았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뉴스1


"'10대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을 갖는다거나, 10대를 연기한다고 신경쓰고 노력한 부분은 별로 없었어요. 언론배급시사회 때 말씀드렸듯이 주변 친구들 역할을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하면 낫지 않을까 싶었고, 그런 부분에서 감독님, 스태프들이 많이 도와주셨죠."

박정민은 상대역인 라희 역의 임윤아와 '기적'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완성했다. '하이틴 로맨스'다. 두 사람 모두 이제 삼십대에 접어들었지만, 이들이 연기하는 십대 커플의 모습에는 위화감이 없다.

"(임윤아씨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편하게 연기할까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몇 번 연기를 하다보니 윤아씨라는 사람 자체가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은 내가 하는 장난이나 그런 것들을 재밌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번 장난도 치고 하면서 굉장히 가까워졌어요. 어색한 느낌이 없었죠.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연기하면서 전혀 불편함이 없고 너무 재밌었어요."

'기적'의 시나리오는 박정민에게 큰 공감을 줬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했다. 배우라는 꿈을 가꿔온 인간 박정민으로서 준경에게 공감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뉴스1


"시나리오를 처음 볼 때 양원역 앞에서 누나랑 싸우는 장면에서 되게 많이 울었어요. 준경이는 양원역을 만드는 게 꿈이었어요. 마음 깊숙이는 좋은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걸 묻어두고 사는 아이에요. 처음에는 '이까짓 게'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시작하다가 하다보니 '이 정도면 잘했다'라는 말을 듣는데, 저는 '이 정도면 잘했다'는 말이 마음 아팠어요.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기준치가 이 정도까지인가? 조금 더 멋지잖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더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한 사람의 꿈에는 늘 이런 장애물이 있고, 준경이처럼 누나의 위로가 위로가 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지지가 그리 큰 힘이 되지 않는 순간이 있죠."

박정민은 이미 꿈을 이뤘지만 여전히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좌절이 취미"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저는 꿈을 이룬 사람인지도 몰라요. 어릴 때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는데 그 꿈만큼 제가 절실하게 꾼 꿈이 없었거든요.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배우라고 불러주시니까, 어느 정도 꿈을 이룬 사람일 거예요. 그런데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아직 제가 배우라는 타이틀을 온전히 흡수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요. 지금은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제가 해야할 일이 있을 거예요...사실 매 테이크 때마다 좌절해요. 좌절이 취미라. 예전에는 연기할 때 인물의 감정 안에서 안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좌절을 해야 좋은 게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생각이 바뀌고 있어요. '기적'이 그런 생각을 바꿔줬고, 류승완 감독님과 찍는 '밀수'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바뀌고 있죠. 굳이 제가 우울해 하지 않아도 좋은 연기와 좋은 영화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어요."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뉴스1


그간 박정민은 무척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시골 출신 래퍼 역을 맡아 랩에 도전했고,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피아니스트 역할을 위해 피아노를 연습했다. 트랜스젠터 역할을 위해 파격 변신을 감행하기도 했다. 박정민은 일부러 독특하고 센 역할을 고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 그렇지 않은 역할이 들어온 것이 '기적'의 준경이었다.

"흰쌀밥 같은 역할, 제가 드러나지 않아도 관객들이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고, 주변에 있는 동료들의 연기와 어우러질 수 있는 자극적이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풀어져도 좋을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죠. 그때 마침 '기적'이라는 영화를 만났고 준경이라는 역할을 만났어요. 처음에 이 영화를 찍을 때는 제가 너무 뭘 안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나? 연기를 해야하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죠. 그런데 감독님은 계속 좋다고 하시고, 저는 불만족스럽고. 몇 회차 초반 그런 순간들이 있었어요. '감독님을 찾아가서 따질까? 나 어떻게 하냐고 따져볼까?' 하다가 감독님을 만났어요. 그런데 감독님꼐서 2시간 동안 세상을 바꾸는 강의와 같은 명강의를 해주셨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감독님이 제게 어떤 연기를 보고 싶어 저를 캐스팅하셨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주셔서 그때부터 편하고 재밌게 촬영했죠."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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