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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호주 안보체 설립에 소외된 EU…"독자적 방위 강화해야"

유럽, 미중 사이 완충 역할로 가져온 소프트 파워 존재감 상실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2021-09-17 15:47 송고 | 2021-09-17 16:38 최종수정
유럽연합(EU) 기와 미국 성조기. © AFP=뉴스1 자료 사진
유럽연합(EU) 기와 미국 성조기. © AFP=뉴스1 자료 사진

미국과 영국, 호주가 대(對) 중국 안보 협력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면서 프랑스는 물론 유럽연합(EU) 전체가 당황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프랑스가 뺏긴 건 잠수함 수주 건만이 아니다. 미중 전략 경쟁에서 완충 장치 역할을 하며 나름의 입지를 유지하려던 EU 전체가 지정학적 영향력에 치명타를 당했다는 분석이다.

17일 CNN은 '미국이 영국, 호주와 맺은 거래는 프랑스에 상처를 입히고 대중 전선에서 유럽을 소외시켰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지난 15일 공개된 이 '딜'에는 미국과 영국이 전략·기술팀을 파견해 호주의 핵잠수함 건조를 돕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호주가 프랑스와 맺은 수십억 달러의 비핵 잠수함 건조 계약을 취소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 장관은 "호주한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일갈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겨냥해서도 "트럼프가 하던 짓과 닮은 잔인하고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프랑스가 받은 자존심의 상처는 일부에 불과하다. 오커스는 이미 EU 전체에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EU 당국자들은 CNN에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16일 오후에 인도·태평양 관련 전략을 발표한다고 했기 때문에 오커스 발표 시점은 대충 알았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화상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3국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 발족을 발표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화상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3국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 발족을 발표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유럽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저 좀 무례하다고 느꼈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심한 경우 EU가 중요한 지정학적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반응도 나왔다. 어느 쪽이든 상처받은 건 분명하다.

EU 한 고위 당국자는 CNN에 "호전적인 영어권 국가들이 반중 동맹을 구성 중인 건데, 이 나라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함께 침공한 나라들이다. 어떻게 됐는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전은 2001년 10월7일 미·영국군의 '항구적 자유 작전'(OEF,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했다.

사실 미국과 EU의 대중국 전략은 한 가지 중요한 차이를 보여왔다. EU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 측면에서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내오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중국을 경제적·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해왔다.

EU 당국자들은 중국과의 교역과 협력을 통해 중국의 인권 기조와 에너지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미중 사이에서 완충재 역할을 하려 했다. 이를 통해 EU가 미중 패권 대결 속에서도 분명하고 중요한 지정학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오커스 딜은 EU가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했다는 해석마저 일각에서 제기된다.

벨리나 차카로바 오스트리아 유럽안보정책연구소장은 "미국이 EU에 손을 뻗치기 보다는 영국과 호주와의 안보 동맹에 더 많이 투자하고 정치적 재원을 들일 것이란 사실이 자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가 앵글로스피어 파트너들(미·영·호주)에게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려면 우선 인도태평양에서 안보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EU가 어떻게 인태지역에서 안보의 주체로 거듭날지 그 방법론을 두고는 회원국 간 의견이 갈린다고 CNN은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로이터=뉴스1 자료 사진 © News1 정윤영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로이터=뉴스1 자료 사진 © News1 정윤영 기자

EU 내에 유럽의 방위 관련 컨센서스란 건 없고, 그저 EU내 유일한 군사강국 프랑스가 통합 방위 정책을 주도해왔을 뿐이다.

이 사안에 정통한 한 EU 당국자는 "최근 아프간 사태와 오커스 출범으로 우리 EU도 독자적인 방위 능력을 기르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존재감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프랑스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는 유사 시 군대를 파병하는 수준까지 거론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대부분의 EU 당국자들은 군대 배치 구상에는 선을 긋고 있다. 한 EU 외교관은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핀란드, 스웨덴 같은 중립국들은 분쟁지에 군대를 배치하는 걸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제3국 군대를 훈련하고 국경지역에서 평화 유지활동을 하는 것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국은 27개 회원국이 함께하는 통합 방위 정책을 주장하고 있지만, 유럽의 방위전략 고민이 깊어질수록 EU 내 소규모 협력도 모색될 수 있다고 스티븐 블록맨 유럽정책연구소장은 관측했다.

EU는 그간 미중 경쟁 속에서 소프트파워를 축적해왔는데, 이제 하드파워에 기반을 둔 오커스가 EU와 프랑스를 소외시키고 있다고 차카로바 오스트리아 연구소장은 재차 강조했다.

결국 바이든 정부가 전통적인 동맹들과 전통적인 하드 파워 협력을 강화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지정학적 파워가 어디에 놓일지는 분명해졌으며, 하루 만에 벌어진 오커스 출범 사건은 EU가 그 막대한 경제력에도 미중 사이에서 밟히지 않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고 CNN은 전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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