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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여든 노인 숨지게 한 50대 여성…유족 "재산 착복하려 해"

동거할 집 사기로 했지만 피해자 회피에 지속적 다툼
재판부 "다투다 화가나 때리고 방치…사망에 이르러"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2021-09-11 06:00 송고 | 2021-09-17 11:21 최종수정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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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때문에 옥상에 갔다 내려와 보니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어요."
2018년 11월28일 오후 119에 신고가 들어왔다. 구급대가 8분 만에 도착했지만 B씨(당시 80세)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B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신고인은 B씨와 내연 관계에 있던 A씨였다. 수사기관은 B씨보다 스물여섯살 젊은 A씨가 사건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법원은 지난달 상해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스물여섯살의 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인으로 발전했던 둘의 관계는 그렇게 파국으로 끝났다. 

두 사람은 2014년 지인의 소개로 만나 내연 관계가 됐다. 특이한 점은 각서를 수차례 작성했다는 것이다.  
2017년 3월5일, 두 사람은 "A와 B는 동거하되 공동명의로 아파트를 매입한다"는 각서를 작성했다.  

2018년 6월26일, 또다시 각서를 썼다. "A와 B는 동거하고 A는 B가 90세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한다. 그 대신 B는 2018년 10월31일까지 A에게 주택 매입 용도로 사용할 1억원을 지급한다."

각서 작성에 맞춰 B씨는 A씨에게 약속어음을 줬다. B씨가 A씨에게 액면금 1억원을 2018년 10월31일까지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법무법인의 공증도 받았다.

두 사람은 같은 해 7월13일에도 각서를 작성했다. 각서에는 △이 돈(1억원)으로는 오로지 A와 동거할 주택을 매입해야 한다 △A는 다른 남자와 정을 나눌 수 없다 △B가 90세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B에게 1억원 이상 더 요구하지 않는다 △A의 스마트폰을 해지한다 △폭행하지 않는다 △서로 살아 있는 한 동거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같은 해 11월9일 A씨는 이 약속어음을 근거로 B씨 소유 부동산의 강제경매를 신청해 법원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B씨는 어음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소장은 그달 26일 A씨에게 도착했다.

A씨는 다음 날 오후 9시쯤 자신의 집으로 B씨를 불렀다. 소송 진행에 유리한 내용을 녹음하려는 목적이었다.

녹음 내용에 따르면 A씨는 이전부터 B씨에게 동거할 주택 구입을 요구했으나 B씨가 회피했으며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은 다툼과 화해를 반복한 것으로 추정됐다. 

B씨가 쓰러진 날도 두 사람은 말다툼을 했다. A씨는 동거할 주택 구입을 요구했다. B씨는 소송을 계속하겠다면서 자신 소유 부동산에 대한 강제경매 절차 취하를 요구했다. 

B씨는 다음날인 28일 오후 3시쯤에도 술에 취한 채 부동산 강제경매 취하를 거듭 요청했다. 

화가 난 A씨는 B씨의 머리를 잡아 문틀에 2~3회 세차게 내리쳤다. B씨는 의식을 잃었다. A씨는 그런 B씨의 얼굴에 이불을 덮고 30분가량 방치했다. B씨는 결국 숨졌다.

A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법원에서 A씨 측은 "B씨 머리의 상처는 자해의 흔적이며 B씨 머리의 상처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B씨의 사망이 머리 손상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내놨다.

머리 손상 자체가 사망에 이르게 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술 취한 상태에서 머리에 충격이 가해져 발생한 뇌진탕이 사망으로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각서와 이웃의 진술로 미뤄 A씨는 이전에도 B씨를 밀치거나 완력을 행사한 것으로 짐작됐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안동범)는 "A씨가 소송 등으로 다투다 화가 나 B씨의 머리를 문지방에 내리치는 방법으로 상처를 가하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수년간 교제하던 고령의 B씨에게 폭력을 행사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B씨의 유족은 "A씨는 아버님과 동거할 마음도 없이 각서의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아버님의 재산을 착복하려고 접근했다"면서 "아버님을 위협, 상해하고 가스라이팅했다"고 주장했다.

또 "A씨는 아버님이 강제경매신청에 대응하기 위한 소송을 못 하게 하기 위해 계획 후 살인한 것"이라며 "강제경매 청구이의의 소에서는 1심에서 A씨의 사기행각이 드러나 A씨가 패소했다"고 밝혔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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