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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민권운동에서 ESG까지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1-08-09 07:10 송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70년대는 고속버스 여행의 시대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장거리 여객운송회사 그레이하운드도 한국에 진출했는데 그레이하운드는 1978년 철수할 때까지 여러 가지 화제를 낳았다. 그레이하운드는 특히 2층 버스로 유명했다. 1914년 창업한 그레이하운드는 아직도 1700대 버스, 123개 노선으로 미국 전역을 커버하는 미국 최대의 버스 라인이다. 그레이하운드는 영화와 음악에도 많이 등장하는 미국 현대문화의 중요한 일부다.  

그레이하운드는 미국 민권운동사에도 그 이름을 남겼다. 1947년에 2인의 운동가가 그레이하운드가 인종분리 방침에 따라 남부지역 노선에서 좌석을 분리 운용한다는 이유로 회사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46년에 주간 여행에서의 인종분리는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지만(Morgan v. Virginia) 특히 남부 주 정부와 해당 지역 단체, 기업은 동 판결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먼저 그레이하운드 주식을 각 1주씩 산 다음 회사의 주주총회에 회사의 고객 인종분리 방침을 철폐하라는 주주제안을 제출하려고 시도했다. 민권소송에 헌법이나 다른 법률이 아닌 증권법을 활용한 것이다. 회사는 주주제안을 주주총회에 상정하기 거부했고 그러자 이들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Peck v. Greyhound). 판결문에는 원고가 주식 3주를 보유한다고 나온다.

그러나 이 소송은 1951년에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의 개입으로 기각되었다. SEC가 원고의 청구가 부적법하다는 주주제안 관련 규칙 해석을 법원에 제출했고 법원이 그를 받아들였다. SEC는 이듬 해 1952년에 상장회사 주주제안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서 “인종, 종교, 또는 그 외 유사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주주제안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ESG 시대에는 ESG 관련 이슈들이 주주총회에서 더 많이 다루어지고 관련 주주제안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ESG 관련 주주제안이 증가한다면 주로 E&S로 불리는 환경과 사회 문제의 영역이 될 것이다. 2021년 미국 S&P 500 기업의 경우 E&S 관련 주주제안은 전년의 93건에서 121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단순히 보고서를 발간하라는 투명성 요청에 그치지 않고 세부 사안별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이 증가했다. 그중 26%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실행전략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러셀(Russell) 3000 기업의 경우 2021년에 플라스틱 공해, 정치기부금, 이사회 다양성 등 관련 주주제안이 가장 많았고 종업원 다양성과 포용성 제고 관련 주주제안이 150% 급증했다. 특이한 사항은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요청이 종업원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무환경, 코로나19, 작업장 안전 등이 그 뒤를 따른다. 포용성 요청은 성과보상체계의 공정성 문제로도 이어진다.

SEC의 현행 규정은 “인종, 종교, 사회적 문제” 등의 문구는 포함하지 않고 법률상 주주총회 결의 대상이 아닌 사안, 회사에 위법한 행동을 요구하는 경우, 개인적인 고충과 불만에 관한 사안, 다른 주주들과 공유되지 않을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사안, 통상적인 회사경영에 수반되는 사안 등을 포함하여 회사가 거부할 수 있는 주주제안 종류를 열거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법에서는 3%이상 의결권 지분을 보유해야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제363조의2 제1항) 또 그 시행령 제12조에서 주주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로 주주 개인의 고충에 관한 사항, 회사가 실현할 수 없는 사항 또는 제안 이유가 명백히 거짓이거나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항인 경우 등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ESG 시대가 본격화된 것을 고려하면 다소 부족해 보이는 내용이다. ESG 관련 주주제안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칫 주주제안이 ESG의 틀을 내세워 회사경영이나 주총 안건과는 별 관계없는 논점으로 기울고 미디어 앞에서 행동주의 주주 등이 경영진을 비판하고 공격하는데 활용될 우려도 있다.  

연방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인종에 따라 승객을 분리해 운행한 당시의 그레이하운드는 비난받아 마땅했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그레이하운드라는 기업의 가치에는 별 관심이 없던 사회운동가가 회사 주식을 3주 새로 사서 주주가 된 다음 소송을 제기하고 그로써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행동이 적절했는지 논란이 많았다. 

지금은 주주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별개로 여겨지지 않는 ESG의 시대다. 그레이하운드를 제소했던 민권운동가들의 행동은 지금와서 보면 그레이하운드를 착한 기업으로 만들고 그 기업가치 증가에도 기여한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과 정치가 점점 더 상호작용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가 과거보다 더 다루기 힘든 시대가 왔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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