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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전화기에 대고 울기만 했다" 상담사들이 전한 '한강 다리'

[2021 극단선택 리포트]② 주로 부모와의 관계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 많아
5년간 10대 청소년 4598명 응급실행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강수련 기자 | 2021-07-30 05:45 송고 | 2021-07-31 09:31 최종수정
편집자주 "국민은 자살위험에 노출되거나 스스로 노출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자살예방법 3조는 이렇게 규정돼 있다. 그렇지만 지난해에만 1만3018명(잠정치)이 안타까운 선택으로 숨졌다. 코로나 블루까지 겹쳤다. 국가는 어디에 있고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인 10일 서울 한강대교에 자살 예방을 위한 응원 문구가 적혀 있다. 2020.9.1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인 10일 서울 한강대교에 자살 예방을 위한 응원 문구가 적혀 있다. 2020.9.1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수도권에 사는 고등학생 김주영(가명)은 지난달 응급실로 실려왔다.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고가의 옷을 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와 말다툼을 한 뒤 주영이는 충동적으로 극단선택을 시도한 것이다.

주영이는 이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극단선택을 시도하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적 있다. 불안증세를 보여 평소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주영이는 현재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한국 10대 자살률, OECD 평균의 1.6배

30일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1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9년 10대 청소년 298명이 극단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인구 10만명당 4.2명이던 10대 자살률이 2019년 5.9명으로 3년 새 25.5%나 늘어났다.
한국의 10대 자살률은 전 연령대에서 증가세가 가장 가파른 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6번째로 높다. OECD 평균 10대 자살률 3.7명의 1.6배이다.

주영이처럼 자해 또는 극단 선택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온 10대 청소년은 최근 5년간(2015~2019년) 4598명에 달하고 그중 56명이 숨졌다.

극단 선택은 2011년부터 9년째 청소년 사망원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방에 들어와 울고 있다…계속 죽고 싶단 생각”

10대 청소년들은 어떤 이유에서 충동적 선택을 하는 걸까.

"엄마 앞에서 공부하면서 힘들다고 했더니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다. 방에 들어와 계속 울고 있다.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태권도 학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한테도 배신당했다. 미친듯이 죽고 싶고, 너무 불안하고 잠도 안오고 가만히 있다가도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너무 무섭다. 제발 저를 좀 도와주세요"

29일 하루 동안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들어줄개'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온 글이다.

지난 2018년 9월 '다들어줄개' 정식개통 후 올해 6월까지 접수한 상담 총 16만 6709건을 분석한 결과, 청소년들의 주 상담주제는 △동성친구 △이성친구 △부모와의 관계 △교사와의 관계 등으로 나타났다.

허희라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은 "한강 다리에 설치된 전화기로 상담을 요청하는 10대 청소년들은 주로 부모와의 관계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며 "특히 코로나19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 크게 힘들어한다"고 했다.

정체성이 확립 중인 10대 청소년들은 부모나 친구와의 관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과 관계가 무너지면 극단선택 충동에도 빠진다.

허 상담원은 "전화기에 대고 그냥 우는 친구들이 많다. 죽고 싶은데 막상 물을 보니까 무섭다. 진짜 죽을 것인가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며 "습관적으로 자해하거나, 몇 번째 한강에 왔다는 학생들도 있다"고 전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일본, 청소년 자살예방 예산 556억

일본에서는 올해 초중고교생 자살자 수가 1978년 통계 작성 이래 최다를 기록(499명)하자 53억엔(약 556억원) 수준의 예산을 편성하며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는 올해 한국 전체 자살 예방 예산 368억원의 1.5배다.

핵심 내용은 △학교에서 설문조사·교육상담 등을 실시해 고민을 겪는 학생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것 △극단 선택 고위험군 학생에 대해서는 휴교령 중에도 보호자에게 연락하거나 가정방문 통해 지속적으로 상황을 확인할 것 △극단 선택 위기 징후 보이는 경우 보호자·의료기관과 연계해 조직적으로 대응할 것 등이다.

한국의 교육부격인 문부과학성은 지난달 23일 아동·학생 자살 예방 관련 대책 통지문을 내고 전국 학교에 대책을 주문했다.

한국에는 범정부 차원의 청소년 자살예방 특화사업이 없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 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소년 자살률이 매년 상승하는데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복지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극단선택에는 개개인의 특성과 성장배경, 사회구조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는 만큼,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며 "청소년 자살 위험군 파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동시에 청소년 자해와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청소년 자살 예방 사업은 교육부에서 하고 있다"며 "복지부에서는 작년 7월부터 학교나 회사 등 조직 내에서 자살 사건 발생했을 때 조직원들이 동하지 않게 예방 교육을 하고 상담을 연계해주는 사후대응체계를 구축해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수도권 중학교 등교수업이 확대된 14일 서울 동대문구 장평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2021.6.14/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수도권 중학교 등교수업이 확대된 14일 서울 동대문구 장평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2021.6.14/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전문가들 "위험 요인 조기 파악해야"

전문가들은 팬데믹 이후 아동·청소년의 자해·극단 선택 시도가 49% 급증했다며, 위험요인들을 조기에 파악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봤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학교 내 자살위험 스크리닝(선별검사)의 경우 학생들이 노출 우려 때문에 솔직하게 답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학생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기분 장애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정부 정책 차원의 온라인 검사 플랫폼을 조성하며, 정신건강 전문가가 개입할 수 있는 안전하고 건강한 온라인 자조 모임(SELF HELP)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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