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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지 한달만에 발견된 20대 배달기사…취준생 방엔 '이력서 100통'

[2021 극단선택 리포트]①위험한 충동에 빠져든 1인가구
30대 취준생 방에 이력서 100통…코로나 속 숨진 50대 사장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윤지원 기자 | 2021-07-29 05:54 송고 | 2021-07-30 14:11 최종수정
편집자주 "국민은 자살위험에 노출되거나 스스로 노출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자살예방법 3조는 이렇게 규정돼 있다. 그렇지만 지난해에만 1만3018명(잠정치)이 안타까운 선택으로 숨졌다. 코로나 블루까지 겹쳤다. 국가는 어디에 있고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소주 20~30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모두 빈 병이다. 바닥 곳곳에는 담배꽁초들도 널브러져 있다.

방안 한쪽에는 생활용품 상자가, 다른 방 한쪽에는 운동기구가 자리하고 있다. '정'을 의미하는 한자 '情'이 큼지막하게 새겨진 제과 제품 상자는 거꾸로 뒤집힌 상태다.

지난달 숨진 채 발견됐던 당시 김득호씨(가명·26)의 집안은 이처럼 외부 세계와 단절돼 있었다.

◇숨진 지 한 달만에 발견

득호씨는 음식 배달기사였다. 몸이 불편한 모친은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그는 서울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혼자 살았다.

득호씨 자신도 사고를 당해 몸이 편치 않았다. 그는 후유증으로 사망 전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의지할 곳 없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면 자꾸 다른 생각이 든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위험한 충동에 빠져들 수 있다. 

지난달 "악취가 난다"는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소방대원이 득호씨의 사망을 확인했다. 그가 집안에서 극단선택으로 숨진 지 약 한 달만이었다.

◇자격증 준비한 것 같았는데…

김철웅씨(가명·35)는 지난 5월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철웅씨도 수도권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혼자 살았다. 사망 당시 그의 책상 주변에서 이력서 100통 이상이 발견됐다. 2~3장을 제외하면 빈칸이 하나도 채워지지 않았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그가 다녔던 대학의 졸업장도 방안에 보관돼 있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책과 화물차량 기사 자격증 책도 함께 발견됐다.

이력서·졸업장·자격증 책은 처지를 비관하는 메모와 함께 수거됐다.

현장 정리를 맡았던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는 "요즘 책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일반 가정과 비교해 철웅씨의 집에는 책이 아주 많았다"며 "특히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하신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제야 창업했는데

박광수씨(가명·50)는 지난해 12월 극단선택으로 세상을 떴다.

사망 당시 그의 원룸 테이블에는 빈 소주병과 플라스틱 빈 그릇이 놓여 있었다. 고개를 숙인 곰 인형 두 개가 테이블 옆을 나란히 차지했다.

왕래하는 가족이 없던 광수씨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작년 12월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섭게 퍼지던 시기였다. 자영업자들은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며 "코로나 절벽에 내몰렸다"고 호소했다.

광수씨는 원래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 수도권에 중식당 문을 열었다. 평생 주방장으로 일하다가 창업했으나 그는 '사장님'의 삶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들 모두 혼자 살았다

20대 득호씨와 30대 철웅씨, 50대 광수씨는 나이대와 처한 사정이 달랐지만 모두 혼자 살았다.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거나 여건과 환경이 안돼 생계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상 '고독사'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놓고 '600만 1인가구 시대'의 한 단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 1인가구의 비중은 전체 가구의 30.2%(615만명)로 가장 높았다.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에 따르면 2018년 1인가구 성인의 '자살 생각률'은 9.0%로 2인 이상 가구(4.2%)의 약 2.2배이다.

1인가구의 자살 생각률은 남성 6.2%, 여성 11.5%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청년기 6.3% △장년기 7.4% △중년기 8.1% △노년기 12.5%였다.

연령대가 높은 1인가구일수록 자살 생각률이 상승하는 셈이다. 

1인가구는 가족과 지인, 동료가 인명을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인 '골든타임'을 감지하기 어려운 환경에 노출됐다는 지적이 많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국무총리실 산하 자살예방정책위원회 위원)는 "혼자 산다는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극단선택 충동 같은 다른 위험 요인과 결합했을 때 위험을 증폭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 2021.7.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송 교수는 "정서적·사회적 지지가 없어 해결책이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데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났을 경우 비현실적인 생각에 압도당할 수 있다"고 했다.

◇'직접 찾아가는 지원' 필요

혼자 살아 우울하고 우울해서 더욱 가난한 악순환 속에서 1인가구 중 극단선택 위험군을 직접 찾아가는 정부 지원 서비스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극단선택 사망자 1만3018명(잠정치)은 전년 확정치보다 다소 감소했는데도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상위 수준인 데다 코로나 블루(우울)의 장기화로 극단선택 충동을 부추길 요인이 취약 계층 사이에서 확산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2021년 2분기)'를 보면 5월 조사 대상의 우울평균 점수는 5.0점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우울 2.1점)보다 2.4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중앙자살예방센터장)는 "1인가구의 복지 서비스 접근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이 힘들다는 것"이라며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등 부처 간 지원 서비스를 연결해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했다.

백 교수는 "재난지원금·긴급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복지 서비스와 극단선택 관련 신경정신과 지원을 연결하는 원스톱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가령 지방자치단체가 위기의 자영업자에게 지원금을 줄 때 극단선택 예방 지원을 함께 안내·홍보하거나 자살예방센터도 함께 찾아가 심리 지원을 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 대비 자살예방대책'은 현재 위험 요인과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한국은 보건복지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지 않아 '찾아가는 서비스'가 실질적 효과로 이어지려면 인프라(기반시설) 확대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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