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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감추고 부끄러워할 너희들 잘못이 아닌데…

"부모가 없는 것이 죄"로 생각하며 살아온 청년들
차별과 낙인 그리고 무관심…"도움의 손길 필요해"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21-07-22 07:00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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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때문에 회사에 걸려서 솔직하게 이야기 했어요. 들통이 난 거죠."

앞서 3일(7월19~21일) 동안 보육원 출신의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추적하는 기획 기사를 썼습니다. 이번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청년 백민경씨(가명·24·여)는 사망한 백동민씨(가명·24)의 동갑내기 친구로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함께 자랐습니다.

민경씨는 보육원 출신으로 생활하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최근 회사에 '가족관계증명서'를 내야 할 때가 있었다며 그 계기로 자신이 가족이 없음을 회사에 '들켰다'고 표현했습니다. 텅 빈 문서를 바라보며 창피해했을 민경씨의 모습이 상상돼 마음이 아픈 것도 있었지만 더욱 저를 슬프게 했던 것은 이 일을 민경씨가 '들켰다'라고 표현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민경씨는 특별한 감정 없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그 '들켰다'는 단어를 들으며 민경씨가 그동안 자신의 배경을 '부끄러움 것, 감춰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온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민경씨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육원 정문 앞에 버려졌습니다. 이름도 지어지지 않아 보육원 원장의 성씨를 받아 '백민경'이 됐습니다. 민경씨에겐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민경씨가 이런 자신의 배경에 대해서 숨겨야 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일까요?

실제 민경씨를 비록한 보육원 출신 친구들에게는 자신의 배경을 부끄러워해야 할 계기들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보육원 원아들이 '고아'라며 뒤에서 수군거렸습니다. 또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문제아'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냉대 속에서 실제 엇나가 범죄에 빠지게 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민경씨는 스스로도 자신이 '방황'을 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절도, 무단침입 등의 혐의로 소년보호시설에 머물렀던 민경씨는 그때에 대해 '먹을 게 없고 배가 고파서 마트에서 물건을 훔쳤고, 퇴소한 뒤 보육원의 아이들이 보고 싶어 보육원 담을 넘었다가 무단침입으로 걸렸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민경씨의 나이는 어른이 됐습니다. 그동안 청소년자립생활관을 거친 뒤 대학에 진학했고 현재는 한 병원에서 경비직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별과 낙인을 넘어선 그곳에는 '무관심'이라는 더 극복하기 힘든 벽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많았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은 없었습니다. 민경씨는 "시설을 퇴소하고 나서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요. 후원해주시는 분이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모가 그 최소한의 어른이 되어 주지만 민경씨와 보육원 친구들에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은 죽음을 선택한 동민씨의 경우에도 '마지막 순간 도움을 청할 어른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하고 슬퍼했습니다.

최근 정부가 보육원 출신 등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민경씨와 같은 청년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창구가 좀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정부의 지원에 앞서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관심을 가지고 청년들을 이끌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들은 지금 있는 제도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했습니다.

다행히 기사가 나가고 난 뒤 몇몇 곳에서 기사에 나온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청년들이 무관심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의지와 관심을 보여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편, 민경씨는 지난 3일 자신을 보육원에 맡긴 부모를 찾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평소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해온 민경씨의 마음이 변한 계기는 친구 동민씨의 죽음이었습니다.

가족이 없어 '무연고'로 분류돼 장례가 미뤄지는 친구의 시신을 보면서 민경씨는 부모가 없는 것이 죄가 되는 것 같다고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가족이 있었더라면 '무연고'로 기록될 이유도 없고, 빨리 장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시신이 차가운 냉동고에 계속해 보관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민경씨는 부모님을 찾기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등록했습니다. 민경씨의 유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져 이르면 다음달 초에 결과가 나올 예정입니다. 만약 민경씨의 부모가 딸을 찾기 위해 유전자 등록을 했다면 상봉이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혹시나 부모를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것을 물어보고 싶냐는 질문에 민경씨는 "어쩌다가 여기다가 버렸느냐…아니 버렸다는 식은 말고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고 싶어요"고 말했습니다. 스물넷 생에 꾹꾹 눌러 왔던 이 질문에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답을 해줄 분이 나타나셨으면 좋겠습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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