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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꼭 살아서 집으로 퇴근하게 해 달라"

주말에 일하다 사망 10시간 만에 발견된 서울대 청소노동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2021-07-21 07:10 송고
1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아고리움에 설치된 청소노동자 추모공간. 2021.7.1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1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아고리움에 설치된 청소노동자 추모공간. 2021.7.1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저희는 근로를 하러 왔지 죽으러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근로자의 건강과 안녕을 배려해 꼭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십쇼. 제 아내의 동료들의 출근하는 뒷모습이 가족들이 보는 마지막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이달 7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숨진 청소노동자 이모씨(59) 의 남편은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대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병이 없던 고인의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고인은 토요일인 26일 쓰레기를 치우다가 휴게실로 들어갔고, 사망 10시간 만인 다음날 오전 관리자에게 발견됐다. 고인의 옆에는 컵라면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평균 8시간 일했다. 근무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에서 매일 100리터 쓰레기봉투를 들고 날라야 했다.  

기숙사에 살았다는 서울대 학생 A씨는 "100리터 쓰레기 봉투가 기숙사 한 층에 하루 3개씩 나온다"고 전했다. 100리터 쓰레기봉투의 무게는 꽉 채웠을 때 5~10㎏이다. 성인 남성이 들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50대 후반 여성이 들고 계단을 오르내르기에는 버거운 무게였을 것으로 보인다.  
숨진 이씨는 늘 웃는 얼굴에 누구보다도 성실했다고 한다. '과도한 업무 강도' 등을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는 학교와 노조 측이 한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씨가 늘 웃었다고 해서 힘들지 않았다는 근거가 되진 않는다.

이씨는 특히 음료수 병을 손으로 들어서 옮겨야 해 손가락과 손목이 아프고, 업무 외 제초작업이 힘들다고 동료들에게 종종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동료들은 고인이 숨지기 3일 전 기숙사 행정실장, 부장 등 3~4명으로 구성된 인원이 청소 상태를 검열한다는 공지가 내려온 탓에 평소 안 하던 창틈과 유리창, 샤워실 곰팡이 청소까지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일하던, 1983년 지어진 이 건물은 아무리 청소해도 깨끗하게 청소한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씨의 죽음에 과로가 영향을 미쳤는지를 두고 학교와 노조 측의 진실공방이 한창이다. 갈수록 과로보다는 직장 갑질과 윗선의 사전 인지 여부 등에 무게가 옮겨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핵심은 또 하나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숨졌다는 점이다.  

지난 2019년에도 서울대 청소노동자 B씨가 폭염 속 계단 옆 가건물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잠을 자다 목숨을 잃었다. 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노동자들의 처우는 크게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서울대 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이씨처럼 과로사로 숨진 사고는 사고성 재해와 달리 죽음의 업무 관련성을 증명해야 한다. 과로사는 공식 통계도 없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산업재해로 인정된 뇌심혈관 질환 사망자 숫자로 어림잡아 1000명(2019년 기준 1265건)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

이제는 조사 주체와 개별 사안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고 확실한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할 때다.

과중한 업무가 있었다면 업무 강도를 줄이고, 예방적인 근로 문화가 정착되도록 지원하고 감독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드는 청소노동자 지원책에 대한 추가 고민도 필요하다.

"아침에 떠난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않는 슬픔"이 더는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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