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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235명 희생' 정방폭포 일원 4·3위령비 세운다

토벌대, 1948년 11월~1950년 2월 54차례 학살
3살 아이·여성·80대 노인 등 총살로 목숨 잃어

(제주=뉴스1) 강승남 기자 | 2021-07-01 08:00 송고
1956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도 시찰 당시 서귀포시 정방폭포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1일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벌어진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7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4·3평화재단 4·3아카이브에서 발췌)© 뉴스1
1956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도 시찰 당시 서귀포시 정방폭포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1일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벌어진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7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4·3평화재단 4·3아카이브에서 발췌)© 뉴스1

제주 서귀포시의 정방폭포는 폭포수가 뭍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 제주 대표 관광지로 꼽힌다.
그런데 정방폭포 일대가 4·3당시 서귀포지역 최대 '학살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제주4·3평화재단이 발간한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4·3 당시 정방폭포와 인근 '소남머리' 일대에서 1948년 11월부터 1950년 2월까지 54차례에 걸쳐 토벌대에 의해 학살이 자행됐다.

이로 인해 3살 어린아이부터 여성, 노인 80여명이 공개 총살되기도 하는 등 이 일대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것으로 공식 확인된 희생자만 235명에 달한다.

정방폭포 일대가 1948년 11월 시작된 초토화작전 당시 토벌대의 주요 근거지였던 탓이다.
서귀포지역 토벌의 주력부대인 2연대 1대대가 서귀리에 주둔했는데, 정방폭포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옛 서귀면사무소(현 송산동주민센터)에 대대본부가 설치됐다.

또 서귀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예하부대인 6중대와 헌병대가 각각 주둔했다. 농회창고라 불리던 서귀면사무소 인근 건물은 정보과(2과)가 취조실 겸 유치장으로 사용했다.

진나라 때 불로초를 찾아 제주로 왔다던 서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서복전시관은 과거 전분공장이자 수용소였다.

그런데도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는커녕 4·3학살터라는 사실을 알리는 변변한 안내판도 없어 4·3 유족들로부터 불만을 사왔다.

서귀포시 자구리공원 전경(제주관광공사 제공)© 뉴스1
서귀포시 자구리공원 전경(제주관광공사 제공)© 뉴스1

이에 따라 제주도는 사업비 8000만원(국·도비)을 들여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일대 4·3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조형물(위령비)을 설치한다. 위령비에는 4·3당시 이 일대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길 예정이다.

이를 위해 도는 지난달 29일 도홈페이지에 '자구리공원 공원조성계획 결정(변경)안'을 공고하고 오는 13일까지 주민 의견을 받고 있다. 자구리공원은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등 4·3유적지가 포함된 지역이다.

강민철 제주도 4·3지원과장은 "4·3당시 무고한 희생자와 유족들의 한을 풀어드리고 역사 교육의 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위령조형물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며 "행정절차가 마무리되면 올해 말까지 위령비 등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자구리공원에 4·3위령비를 설치하는 것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 원혼을 보듬고 당시 아픔을 미래세대와 공유하는 교육의 장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ks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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