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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법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재심으로 48년만에 무죄…법원 "깊이 사과"

故박남선씨, 집단납북사건 13년 뒤 이근안에 간첩으로 몰려
경찰 고문에 허위자백 7년 옥살이…고문후유증·억울함 호소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2021-06-29 17:32 송고 | 2021-06-29 17:52 최종수정
29일 미법도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고(故) 박남선씨의 변호인 장경욱 변호사(왼쪽)와 신윤경 변호사(가운데), 박씨의 아들 박영래씨가 선고 이후 기자들과 만나 사건기록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2021.06.29 © 뉴스1 이장호 기자
29일 미법도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고(故) 박남선씨의 변호인 장경욱 변호사(왼쪽)와 신윤경 변호사(가운데), 박씨의 아들 박영래씨가 선고 이후 기자들과 만나 사건기록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2021.06.29 © 뉴스1 이장호 기자

'미법도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문을 받고 허위자백을 해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4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2-3부(부장판사 김형진 최봉희 진현민)는 29일 고(故) 박남선씨와 박씨의 6촌 동생 박남훈씨가 청구한 국가보안법 위반 등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남선씨가 불법 체포돼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은 사실이 인정되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박씨의 진술들은 경찰의 가혹행위 이후 나온 것이었다고 의심할 만하다"며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사와 경찰이 작성한 자백조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머지 증거도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부족하다"며 "공소시효 10년이 지난 범죄에 대한 공소제기는 모두 면소 판결하고 나머지 혐의는 모두 무죄"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인권의 마지막 보루였던 사법부가 제 역할을 못 한 점을 사법부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한다"며 "이번 재심 판결이 피고인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강화도 근처 작은 섬인 미법도에서 1965년 조개를 캐는 주민 112명이 집단으로 북에 나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미법도 집단 납북 사건'이다. 이들 중 104명은 다시 송환됐다. 

당시 조개잡이를 하던 박남선씨도 납북될 뻔 했다가 현장에서 도주해 납북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1978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중심으로 한 경찰들이 납북됐다가 송환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았다.

납북되지 않았던 박씨도 간첩조작의 대상이 됐다. 이근안은 북한에 있는 삼촌을 통해 공작원을 소개받고 이적행위를 했다며 박씨를 불법 체포한 뒤 고문해 강제자백을 받았다.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린 이근안 전 경감 2012.12.14/뉴스1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린 이근안 전 경감 2012.12.14/뉴스1

이후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1심부터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1심에서 징역 15년을,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북에 있는 삼촌이 왔다갔다는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남훈씨와 박남선씨의 아내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7년을 채우고 만기 출소한 박남선씨는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05년 사망했다. 박남훈씨도 숨을 거둬 당사자들이 모두 사망한 가운데 유족들은 2019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재판이 시작됐고 43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됐다.

박남선씨의 아들 박영래씨는 선고가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아버지가 재심청구를 말씀하셨는데도 제가 재심 청구를 하더라도 무죄 받기 힘들 거라 생각해 차일피일 미뤘다"며 "지금도 그 점이 너무 죄송하고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늘 아프셨고 분노를 참지 못해 밥상을 엎는 등 억울해 하셨다"며 "그런데 이근안씨가 자서전에서 아버지가 체포되는 과정에서 총을 쏘고 저항했다며 소설 쓰듯 재미로 써 분노가 일었다"고 토로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장경욱 변호사는 "정의실현을 목적으로 가해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근안을 어떤 식으로든 국가배상 소송의 당사자로 세우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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