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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며 도망치는 '마약 딜러들'…못 따라잡는 수사기관들

[2021 마약리포트]⑤대검 백서도 "SNS 마약거래" 우려
위장수사 없이 검거 힘들어…'제도화 필요' 목소리 높아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이상학 기자 | 2021-06-27 07:01 송고
편집자주 경찰의 대대적 단속에도 마약류 범죄가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뉴스1>은 마약 회복자와 상담가, 수사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재활센터, 병원 등을 취재해 그 원인과 해법을 진단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20대 남성 A씨는 과거 마약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집행유예 4월을 선고 받았다. 필로폰에 중독된 A씨는 이후에도 마약 구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딜러(판매) 일을 계속했다.

그는 트위터와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휴대전화 메신저에 광고 글을 올려 마약 구매자를 물색했다.
집행유예 기간에 적발되면 가중 처벌된다. 수사기관의 추격이 두렵지 않았냐는 말에 A씨는 "솔직히 잡힐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경찰은 밥만 먹고 잡으러 오는 사람이고 우리(딜러)는 밥 먹고 연구하며 도망치는 사람입니다."

◇SNS, 마약 거래의 성지로…최근 마약사범 급증  
A씨의 발언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트위터 등 SNS를 검색해 메시지만 보내도 마약 딜러와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이들 중 돈만 받고 잠적하는 사기범도 있지만 트위터 등이 '성지'로 불릴 만큼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는 마약 창구인 점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사기관의 단속이나 현행 형법의 처벌 수위가 두려웠다면 마약 광고 글을 노골적으로 SNS에 올리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2020년)에도 "기존 사범뿐 아니라 마약을 접한 경험이 없던 일반인도 인터넷·SNS를 통해 국내외 마약류 공급자로부터 비교적 쉽게 마약을 구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이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1만8050명으로 전년(1만6044명)보다 12.5% 증가했다.

◇"법적 근거 마련되면 범죄 심리 억제"

특히 온라인 마약거래를 소탕하려면 '위장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마약 수사관들의 공통된 말이다. "SNS를 통한 마약류 범죄는 위장수사 없이 검거할 수 없다"며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장수사는 '범의유발형'과 '기회제공형'으로 나뉜다. 범행유발형은 범행 의도를 갖게 만든 뒤 상대가 범죄를 저지르면 검거하는 방식이고 기회제공형은 범행 기회만 제공한 뒤 범죄가 실행되면 검거하는 방식이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현재 판례상 '범의유발형' 위장수사는 위법으로 간주되고 기회제공형은 사실상 적법한 수사 절차로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판례에만 의존해 위장수사의 정당성 여부를 가리는 상황이라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위장수사 관련 법적 기준과 근거가 없다면 일선 수사관들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수사처럼 마약 범죄 관련 위장수사도 입법화해야 수사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마약 딜러들은 SNS에서 자신의 신원을 감춘 채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위장수사를 제도화할 경우) 자기가 저지른 범죄가 적발되거나 처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심리적 억제력이 발휘되고 SNS 마약거래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약 범죄와 달리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위장수사는 입법화한 상태다. 수사관이 신분을 속이고 텔레그램 대화방 등에서 범행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9월부터 위장수사의 범위와 기간, 장소, 방법, 대상, 사유 등을 서면으로 작성한 뒤 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3개월 동안 위장수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도 마약 범죄 위장수사의 필요성을 살피고 있다.

국수본 관계자는 "(마약수사에서의 위장수사 제도화를) 검토 중"이라면서 "필요성 여부와 다른 나라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온라인엔 마약류 광고 버젓…"기술 발전·예산 투입 필요"

트위터 등 온라인에 게시되는 마약류 판매 광고량이 워낙 많은 데다 마약류 은어가 계속 변형되는 탓에 모두 단속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적 한계도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2017년부터 온라인을 통해 불법적으로 마약류를 판매하려는 광고 행위가 적발될 경우 해당 게시물을 삭제·차단할 뿐 아니라 그 행위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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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구글과 트위터 같은 해외 사이트뿐 아니라 네이버·다음 같은 국내 사이트에서도 마약류 은어를 검색하면 관련 광고가 곧바로 노출된다. 

승재현 위원은 "온라인과 기술을 통해 범죄는 점점 진화하고 있지만 대응은 답보 상태"며 "마약류 광고를 제재하는 법이 효과적으로 집행되기 위해선 기술적 발전과 함께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경찰과 식약처, 검찰이 협력해 적극적으로 마약류 광고를 단속해야 한다"면서 "마약은 재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광고를 강력히 단속하고 형량을 강화해 애초에 마약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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