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6.2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미국과 북한 간 대화 재개를 두고 서로 공을 넘기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대화·대결'이라는 첫 대외메시지를 내놓은 가운데 미국의 북핵 수석대표는 '우리도 둘 다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대화 제의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다.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약 45분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 북핵 수석대표협의를 가졌다. 협의 시작 전부터 북한에 대한 전향적인 메시지가 나올지 여부에 외교가의 관심을 모았던 자리였다. 특히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견인할 '유인책'이 논의될지를 두고서다.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협의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유인책'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다만 다양한 아이디어가 논의됐을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기류는 일부 감지됐다.

노 본부장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지난달 한미정상 간의 협의를 적극 이행하기 위한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며 "한미 간 협의 내용을 모두 공개할 순 없지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정착이라는 공동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노 본부장과 모든 쟁점들에 대해 훌륭한 대화를 나눴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외교와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와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나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 2021.6.2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아울러 한미 모두 김 총비서의 대화·대결 발언을 주시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호응할 것을 적극적으로 촉구했다.

김 대표는 이날 협의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대화·대결) 둘 다 각각 준비할 것"이라며 "우린 여전히 회담에 대한 북한으로부터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김 총비서가 언급한 대화가 우리가 긍정적인 답변을 곧 얻을 것임을 의미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지난달 초 재검토가 끝난 대북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북한에게 한 대화 제의에 북측이 답을 내놓을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현재까지 '잘 접수했다'는 반응 이후 '참여' 또는 '불참'이라는 확답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이날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직후 열린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도 "전제조건 없이 언제 어디서든 만나자"고 북한의 호응을 거듭 촉구했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 2021.6.2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바이든 행정부는 '잘 조정된 실용적 접근'(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을 기치로 내건 대북정책을 발표하고 최대한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공은 북한에게 넘어갔다는 입장을 견지 중이다.

김 대표의 이날 발언에 앞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0일(현지시간)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 총비서의 발언을 '흥미로운 신호'라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의 직접적 소통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힌 부분은 이러한 기조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북한도 미국의 공 넘기기에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김 총비서는 지난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새로운 조미(북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며 '강대강·선대선'이라는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관망'하는 입장을 견지 중이라는 평가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측의 공식 반응은 지난달 31일 김명철이라는 개인명의 글을 통해 일부 공개 됐는데 당시 "권모술수에 불과하다"고 비난한 바 있다. 북측은 그러면서 지난 17일 제8기 제3차 전원회의 3일차 회의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검토가 상세히 진행됐음을 관영 매체를 통해 알렸다.

또한 북한은 "우리 국가의 존엄과 자주적인 발전 이익을 수호하고 평화적 환경과 국가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자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며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김 총비서의 전원회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김 총비서가 표면적으로는 '대결'을 강조했지만 "이른바 최고존엄이 '대화'를 언급한 것 자체가 대화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김 총비서가 '선(先)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같은 조건을 내걸지 않았고 대미·대남 비난 발언도 자제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관측이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전날 중앙위원회 8기 3차 전원회의가 폐회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당 총비서.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총비서가 이번에 대화·대결을 모두 언급하며 모호하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 것은 미국 쪽으로 공을 넘긴 것"이라며 "그런데 대북 사안의 경험이 많은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받고 바로 공을 다시 북측으로 넘겼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국은 여전히 '외교적 방법'을 강조하며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라며 "현재로서는 미국 쪽에서 전향적인 입장이 먼저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련의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의 장에 나올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오는 7월11일 전후를 주목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7월11일은 20년 만에 '북중 우호협력조약' 갱신이 이뤄지는 날로써 고위급 인사의 방중 또는 방북이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간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앞서 중국과의 접촉을 먼저 가져온 선례가 많은 만큼, 이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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