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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확장] '조선적(朝鮮籍)' 재일조선인은 우리 국민이다

(서울=뉴스1)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우리학교> 감독 | 2021-06-19 08:00 송고 | 2021-10-05 11:19 최종수정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감독© 뉴스1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감독© 뉴스1
국적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한 나라의 구성원이 되는 자격'이라고 되어있다. 필자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니고 주소를 가지고 있고 세금도 내고 권리도 누린다. 비행기에서 적는 '출입국 신고서' 국적란에도 '한국'이라 적는다. '그 나라의 구성원이 되는 자격'을 가졌음을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여권'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우리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약 3만 5000명 존재한다. 바로 '조선적'(朝鮮籍) 재일동포들이다. 필자는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우리 국민임을 근거없이 주장하는 게 아니다. 2010년 법무부에서 밝힌 검토의견이 그 근거다.

당시 한국 국적 남성과 결혼하여 국내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적' 재일동포 리 모씨는 '한국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생활의 불편 요소, 즉 신용카드, 휴대폰, 주민등록 등을 만들 수 없었다. 불안과 불편에 참다 못한 부부가 법무부에 진정을 넣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조선적인 리 모씨는 여권 발급도 안되며 국내체류자격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국적자'로 분류되는 것이 옳으며 한국 국적 배우자와의 결혼을 통해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배우자 비자(F-2-1)를 발급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답으로 법무부는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1948.5.), <제헌헌법>제3조, <헌법>제3조, 신청인의 출생 당시 국적법에 의거 신청인이 재일조선인을 부로하여 태어난 자이므로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자임이 자명함’이라고 명시했다. 48년 남조선과도정부 법률 제11호의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에 따르면 ‘조선인을 부친으로 하여 출생한 자는 조선의 국적을 가진다'는 것이다.

2010법무부가 리 모 동포의 신청에 대해 응답한 문서.© 뉴스1
2010법무부가 리 모 동포의 신청에 대해 응답한 문서.© 뉴스1

다시 말해 우리의 헌법은 '조선적'을 '한국 국적을 가진자'로서 우리 국민임을 2010년에 뚜렷이 명시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국민으로서 대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을진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리 모씨는 여전히 법적으로 국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비국민'으로서 자기 소유의 휴대폰 하나 만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나라 외교부가 여권을 발급하지 않아 친정이 있는 일본을 드나들 때마다 한국 영사관에 1회만 사용하면 폐기해야 하는 '임시여행증명서'를 신청하고 발급받아야 한다. 임시여행증명서 발급의 권한은 재외공관의 영사관에게 있다.

임시여행증명서는 원래 외국 여행 중에 여권을 분실한 국민에게 1회에 한 해 발급되는 증명서다. 우리 정부는 이를 '조선적' 재일동포에게 발급하여 국내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이 '여행증명서 발급지침'의 제1조에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근거했다고 하면서 '외국 국적을 보유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의 여권을 소지하지 아니한 외국 거주 동포'가 그 대상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법무부는 우리 국민이라고 하고, 외교부는 위의 이유로 여권발급대상이 아니라 한다.

그리고 최근에 이들 '조선적' 재일동포의 여권발급과 관련해 심각한 국가적 폭력이 있었음이 MBC 시사교양프로그램 'PD수첩'에 의해 밝혀졌다.

'정원과 하얀 방 고문 – 공작관들의 고백'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방송에서 양심고백을 한 전 국정원 해외공작관이 재일동포를 상대로 한 '여권발급 공작'을 폭로한 것이다. 필자는 20년 간 재일동포들과 교류하면서 이미 영사관들의 여권발급 권한 남용, 발급 기간을 가지고 괴롭히기, 면담 시의 각종 폭언과 자존심 긁기, 한국 국적으로의 변경 강요, 여권 갱신으로 괴롭히기 등 무수한 피해 사례를 들어왔다. 다만 이를 증명할 길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방송으로 인해 그것이 단지 영사관의 실적 쌓기나 업신여김의 차원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지침'이자 '공작'이었음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소위 '우리나라의 적을 상대로 하는 해외공작'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재일동포에 대한 국가 폭력의 실체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2000년대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심했음을 알게 되었다.

200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약 250만의 재외국민이 새로 유권자가 되면서 40만 이상의 한국 국적 재일동포 역시 201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지침을 내려 조선적 동포들의 한국 국적 취득을 막아 결과적으로 투표를 못하게 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2017년 시민단체들의 '조선적 재일동포 자유왕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이후 8.15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보장할 것을 약속했으나 입국 절차가 간소화되었을 뿐 자유왕래는 실현되지 않았다.© 뉴스1
2017년 시민단체들의 '조선적 재일동포 자유왕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이후 8.15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보장할 것을 약속했으나 입국 절차가 간소화되었을 뿐 자유왕래는 실현되지 않았다.© 뉴스1

사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조선적' 없애기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는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일관된 일이었다. 그만큼 '조선적'의 존재는 대한민국에게 골치아픈 것이기 때문일까.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조선적'이라하면 그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연상하고 자연히 '북한국적'이라 한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무지의 소치다. 최근 들어 몇몇 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지만 여전히 무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조선적' 동포들.

해방 후 일본 땅에 살고 있던 재일조선인들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는 1952년까지 일본국적을 소유하고 있었다. 일본에 주둔하던 연합국총사령부는 국내의 조선인에게 '적국민' 대우를 했고 그래도 분류, 관리해야 하니 외국인등록령이란 걸 1947년에 발령해 조선에서 건너 왔다 하여 '조선적'이라는 정체불명의 법적 존재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당시 재일조선인은 '조선적'이라는 외국인 신분에 '일본국적' 신분도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52년 연합국이 물러나자 일본정부는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들의 일본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한다. 당시 60만 재일동포는 그렇게 해서 모두 '조선적'으로 남게 된다.

곧이어 불어닥친 냉전의 시대는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연맹의 두리에 뭉쳐있던 재일조선인들을 '빨갱이'로 분류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 분류에 충실했다. 1965년 한일조약 당시 양쪽 정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자에게 '영주권'을 준다는 발표를 했으며 그때까지 기호로서의 국적, 즉 '조선적'으로 살면서 언제든 추방당할 위기의 난민 신세였던 재일조선인들은 '한국국적'과 '조선적'으로 크게 분단되어 갔다. 한국정부가 외교적으로 조선적 없애기에 나섰던 최초의 일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재일동포는 한국국적을 소유하고 있어도 한국정부에게는 여전히 공작의 대상이고 '간첩'이며 빨갱이였던 시절이 7,80년대의 일이다. 재일동포가 '자이니치'(在日)라는 허공에 뜬 존재로서의 자기 인식을 시작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동포들 사이에는 '한반도에서 재채기를 하면 재일동포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냉전은 동포들 삶의 구석구석까지 병들게 했다.

한편 2000년 6·15가 준 평화의 물결 역시 재일동포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 중에서도 조선적 동포들의 한국 입국은 조부모, 부모의 고향 방문을 가능케 하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조선적'동포들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은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대한민국 대사관의 이름으로 조선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한국국적 부모들에게 보낸 편지. 조선학교 학생들의 조국 수학여행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하며 ‘자제’를 권고했다. 고향 방문 등 자주 한국을 찾는 동포들에게 충분한 위협이 되는 내용이며 조선학교 재학을 심각히 고려하게 만드는 행위였다. 2012년 박근혜 정권 시절의 일이다. © 뉴스1
대한민국 대사관의 이름으로 조선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한국국적 부모들에게 보낸 편지. 조선학교 학생들의 조국 수학여행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하며 ‘자제’를 권고했다. 고향 방문 등 자주 한국을 찾는 동포들에게 충분한 위협이 되는 내용이며 조선학교 재학을 심각히 고려하게 만드는 행위였다. 2012년 박근혜 정권 시절의 일이다. © 뉴스1

그들에게는 본토에 사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감각이 있다. 비록 스스로 선택한 '적'(籍)은 아닐지라도 '분단되지 않은 조선'으로서의 조선을 기억할 수 있는 '조선적'(朝鮮籍)을 쉽게 반쪽 조국인 '한국 국적'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그저 한국이 싫어서 옮기지 않는다 해석하고 그래서 그들은 북한을 추종한다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은 그들의 사상이나 삶의 방식과는 전혀 관계없이 '조선적' 재일동포를 아주 간단히 '적'(賊)으로 규정하고 우리 국민에게는 상상도 못할 인권침해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영사관은 조선적 재일동포가 국내에 입국하려고 '임시여행증명서'을 신청할 때 '신원진술서'라는 걸 쓰게 한다. 북에 몇번 방문했는지, 친척이나 가족 중에 '조총련' 관련자가 있는지, 아이가 조선학교를 다니는지 사돈의 팔촌까지 그 내력을 조사한다. 이것 자체가 인권침해이지만 거기에 더해 면담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욱 심하다.

영사관  "아이가 조선학교에 다니네요."

신청자 "네."

영사관 "왜 많은 학교를 놔두고 조선학교에 보내요. 계속 이러면 여행증명서 발급 못해줘요."

신청자 "집 주변에 우리말과 글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조선학교 밖에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이니 당연히 일본 땅에서도 조선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서요."

영사관 "그래도 조선학교는 안돼요, 차라리 일본학교에 보내세요. 그러면 발급해줄게요."

     
다시 말하지만 재일조선인은 조선적이건 한국국적이건 분명한 우리의 국민이다. 더 이상 국가 폭력이 그들에게 가해져서는 안된다.

지난 국정원 여권공작의 폭로 이후 시민단체의 성명서에 첨부된 영사관들의 폭언을 담은 자료. © 뉴스1
지난 국정원 여권공작의 폭로 이후 시민단체의 성명서에 첨부된 영사관들의 폭언을 담은 자료. © 뉴스1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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