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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기후변화가 싫지 않은 사람들

(서울=뉴스1) | 2021-06-18 15:50 송고 | 2021-06-18 15:51 최종수정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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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세상 관심사 중에 큰 일이 되었다. 대통령에서부터 마을 이장에 이르기까지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을 이야기해야 지도자답게 보이는 세상이다. 30년 전 사람들은 '기후변화'란 말을 모르고 살았지만, 지금은 뉴스 시간마다 자주 듣는 얘기가 기후변화이니 세상이 얼마나 달라진 것인가.     
한국의 농업에도 기후변화 영향이 뚜렷해지는 것 같다. 대구를 중심으로 재배되던 사과가 북으로 이동한 것은 꽤 오래 전 얘기인데, 최근엔 제주 감귤나무들이 육지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제주의 특산물로만 여겨지던 한라봉·레드향 등 감귤 나무가 의외로 빠르게 육지의 내륙지방으로 북상해서 경기 경상북도 충청도에까지 감귤 재배농가가 많이 생겨났다.

전남 해안 지방에서 한라봉 농가가 생겨난 것은 꽤 오래됐지만 그것은 실험정신이 높은 소수 농가의 일이었다. 그러나 근래 적지 않은 농가들이 체계적인 감귤재배 교육과 하우스 시설에 힘입어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 황금향 등 소위 만감류를 재배해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서귀포신문’이 특별취재단을 구성해서 호남지방의 감귤재배 현황을 자세히 취재 보도한 것을 보면 전북 완주에 22농가, 정읍에 33농가, 전남 보성에 15농가로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 농가들이 늘고 있으며 지자체가 나서서 지원도 크게 한다는 것이다. 직접 취재를 했던 이 신문의 장태욱 편집국장은 “육지 지역이 일조량이 많고 토질이 좋아 잘만 재배하면 제주도보다 높은 당도를 낼 수 있다며 재배 농민들이 희망에 차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감귤의 본고장 서귀포 일대의 감귤재배 농가 사람들은 내색은 안 하지만 감귤의 남해안 지역 확산에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한다. 이들 지역에서 생산된 감귤이 서귀포 감귤보다 대도시 시장 접근이 훨씬 수월해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장차 기후변화가 감귤 시장에서 서귀포 감귤을 찬밥 신세로 만들어버릴지 누가 알겠는가.      
기후변화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요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육지의 감귤재배 농가처럼 희망의 전령사가 될 수도 있다.

기후변화를 가장 먼저 예측한 사람은 스반테 아레니우스라는 스웨덴의 화학자였다. 그는 1897년 "석탄 사용이 계속 늘어나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온실가스)가 2배로 증가하면 지구 평균기온이 2~5℃ 상승하여 기후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다른 연구로 1903년 노벨화학상을 받았지만, 당시 과학계는 그의 기후변화 학설은 근거가 약하다며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설적인 것은 아레니우스는 기후변화를 재앙이 아니라 축복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기온이 높아지면 시베리아와 같은 추운 곳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세계는 따뜻한 곳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세기 농업시대에 추운 땅 스웨덴에 살았던 영향을 받아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가졌던 모양이다.

아레니우스가 120년 전 기후변화를 축복으로 생각했던 예측이 우리나라 과수농가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라봉 등 감귤나무의 이동은 아주 미미한 부분이고 전 세계를 놓고 보면 지금 어마어마한 동식물의 이동이 기후변화로 일어나고 있다. 아마 시베리아와 캐나다는 기후변화가 싫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농업도 그렇지만 전 세계 산업을 놓고 보면 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세기를 구가했던 석유 등 화석연료 산업은 비상이 걸렸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은 제철을 맞아 번창하기 시작했다. 테슬라 자동차가 몇 년 만에 시가총액으로 세계 최고가 자동차회사가 되고 20세기를 구가했던 석유회사 엑손모빌이 전전긍긍하는 것도 기후변화가 바꿔놓은 산업의 모습이다.

아레니우스가 예측한 대로 지구는 지금도 뜨거워지고 있다. 인류는 석탄뿐 아니라 석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광범하게 쓰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120여 년 전보다 약 40%나 늘려놨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축복이 아니라 자연의 저주로 나타나는데 있다.

지금 지구촌은 기온을 산업혁명 이전보다 2℃ 이상 못 올라가게 해야 한다며 수많은 나라 대통령과 총리들이 나서서 야단법석이다. 정치적으로 이해가 천만갈래로 갈리기 마련인 국제사회가 30년 후의 목표를 정해놓고 이렇게 협력하는 것도 세계 역사상 없던 일이 아닐까. 정말 기후위기를 느끼게 된다.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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