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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연구실을 찾아]"환경만 만들어주면 어련히 잘하는 게 요즘 세대"

올해의 '건강한 연구실' 10개 대학 선정…카이스트 첫 현판식 주인공

(서울=뉴스1) 김승준 기자 | 2021-06-14 06:30 송고
편집자주 세상 참 많이 변했죠? 기업들은 '부장님' 호칭을 버리고 '위계적 칸막이'를 없애는 등 수평적 문화 만들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책까지보며 '90년생 배우기'에 열심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참 변하지 않는 곳이 대학 연구실입니다. 교수님은 여전히 대학원생의 생사여탈권을 쥔 '왕'이죠. 과학 R&D에 연간 20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되는데 '꼰대 교수님'과 '90년생 대학원생'이 공존하는 연구실이 변해야 나라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요? 이미 현장은 변하고 있습니다. 소통하는 문화에 성과까지 탁월한 '건강한 연구실'을 소개합니다.
2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서 '건강한 연구실' 현판식이 열렸다. 사진은 건강한 연구실로 선정된 3차원 마이크로 나노 구조체 연구실의 윤준보 교수, 지능형 연성소재 연구실의 김신현 교수와 소속 학생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한국과학기술원 제공) 2021.06.10 /뉴스1
2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서 '건강한 연구실' 현판식이 열렸다. 사진은 건강한 연구실로 선정된 3차원 마이크로 나노 구조체 연구실의 윤준보 교수, 지능형 연성소재 연구실의 김신현 교수와 소속 학생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한국과학기술원 제공) 2021.06.10 /뉴스1

"요즘 세대는 공정하고 자유롭게 존중해주는 분위기만 만들어 놔두면 알아서 잘한다."

지난 2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가진 3차원 마이크로 나노 구조체 연구실의 윤준보 교수가 달라진 '요즘 학생들'에 대한 질문에 대해 밝힌 답이다. 
윤준보 교수와 함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건강한 연구실'로 선정된 지능형 연성소재 연구실의 김신현 교수도 학생들의 자질과 자율성을 믿어준다고 답했다. 두 교수 모두 인터뷰 내내 학생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건강한 연구실은 젊은 과학자의 성장을 지원하는 연구환경 조성을 위해 2020년 최초로 시행된 정책이다. 지난해 6개 연구실이 처음으로 선정됐고 각 연구실은 상과 함께 상금 1000만원을 받는다. 올해는 10개 연구실이 선정됐다. 

◇신입생을 학생들이 뽑는다?…"연구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은 교육"

많은 교수들이 '교육'과 '연구'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둘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윤준보 교수는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은 다 교육"이라는 관점으로 연구실을 운영한다. 

그는 학생들이 향후 독립적인 연구자가 됐을 때 필요한 것들을 연구실에서 배울 수 있게, 다양한 활동을 독려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입생 선발'이다. 윤 교수는 연구실 신입생 선발에 관여하지 않고, 연구실 학생들이 맡는다.

윤 교수는 "처음에는 출장으로 신입생 면접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 학생들에게 선발을 맡겼는데 결과가 좋았다"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신입생은) 학생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을 텐데, 주인 의식을 길러줄 수 있어 학생들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혼자 뽑을 때보다 10여명의 학생이 더 다방면으로 꼼꼼하게 검증하고, 또 사람 뽑는 일의 어려움도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성장해 언젠가 연구 책임자가 될 학생들을 미리 교육시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연구제안서도 학생들이 쓴다.

윤 교수는 "연구제안서를 쓰는 것도 학생이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안서를 쓰며) 연구의 핵심이 뭔지,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며 "제안서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학생들을 미래의 독립적 연구자로 생각하고 존중하는 연구실 운영 철학은 그의 은사인 김충기 교수의 영향이다. 김충기 교수는 한국 반도체 연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2019년 과학기술 유공자로 선정됐다.

김 교수는 윤준보 교수가 임용됐을 때 "젊은 교수는 뭔가 연구를 하려면 얘네들을 교육시켜야 걔네들을 투입해서 연구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교육을 위해서 연구를 하는거다"라며 "이 학생을 길러내기 위해서 교육을 하고, 연구 성과를 내고 하는 것이지 그 연구 성과를 내려고 학생을 투입해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윤준보 교수는 임용후 부터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익명 피드백'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 연구실 운영에 대해서 교수에게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줬다. 그는 "(익명 평가를 통해) 스스로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 초창기에 학생들로부터 후배가 있는 자리에서 선배를 야단치지 말라는 이야기를 받았다"며 "제가 그 평가를 통해서 제가 사람이 됐다. 학생들이 교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무기명으로 해야 나온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을 믿고 신입생 선발을 맡기고, 직접 평가를 받는 윤 교수는 '요즘 학생'에 대해서 '환경을 마련해주면 어련히 잘하는 세대'라고 평가했다.

그는 "요새 신세대들은 공정에 민감하다. 공정해야만 동의하고, 동의하면 아주 열심히 한다. 교수가 학생을 존중해준다는 느낌이 들면 어련히 알아서 잘한다. 또 동료들끼리 서로 경쟁도 하면서 같이 잘 지내는 게 되는 세대다. 누가 열심히 하면 자극받아서 자신도 열심히 한다"라며 "요즘 세대를 교육시키려면 우리 세대의 관점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공정하고 자유롭게 존중해주는 분위기에서 놔두면 알아서 잘 하더라. 그게 제가 깨달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수는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더 많이 참는 게 맞다. 학생을 지도하면서 보면 인내를 하면 학생이 어느 순간인가 바뀐다. 그런 신비스러운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이 부단히 노력을 해서 많은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질적으로 바뀐다. 그 순간이 학생마다 다르다. 교수는 기다리는 것밖에 없어요. 잘 대해주고 기다린다"고 밝혔다.
2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서 '건강한 연구실' 현판식이 열렸다. 사진은 (왼쪽부터) 정원일 교수(2020년 건강한 연구실 선정), 윤준보 교수, 고서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김신현 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제공) 2021.06.10 /뉴스1
2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서 '건강한 연구실' 현판식이 열렸다. 사진은 (왼쪽부터) 정원일 교수(2020년 건강한 연구실 선정), 윤준보 교수, 고서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김신현 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제공) 2021.06.10 /뉴스1

◇"자질 충분한 제자들, 자기 프로젝트 맡기면 동기부여된다"…"연구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해야 한다"

다양한 혼합물 , 콜로이드에 대해 연구를 하는 김신현 교수는 "(카이스트 학생들은) 과학적 사고 능력과 같은 연구를 잘할 수 있는 자질은 충분하다"며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창의적 연구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주안점을 둔 것은 '자율성'과 '동기부여'다. 김 교수의 지능형 연성소재 연구실에는 모든 학생들이 모여서 하는 '랩 미팅'이 없다. 대신 교수와의 1대1 만남이 있다.

김 교수는 "연구 진행과정을 관리하는 장치는 없다. 의무적인 회의도 없고, 대신 학생이 원하면 회의(미팅)을 한다. 학생이 자기 진도에 맞게 연구를 하면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거나, 혹은 뭐 보여주고 싶은 결과가 있거나 토론이 필요하면 언제나 찾아오는 방식이다"라며 "개인미팅에서 연구 이야기만 하는게 아니라 진로나 생활문제 이야기도 자유롭게 이런저런 얘기를 다 한다. 다만, 연구비를 받는 과제에 주축을 맡는 학생들에게 진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김 교수의 운영법은 본인의 학위 과정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2013년에 돌아가신 양승만 교수님에게 학위 지도를 받았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연구하란 소리를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큰 연구단 사업을 하게 되면 좋은 연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가 크다. 교수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을 텐데도 학생들에게 벌써 집에 가냐, 연구해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며 "심지어는 박사 고년차들이 찾아가서 학생들을 타일러 달라고 이야기 했지만, 교수님은 "연구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해야지 남이 뭐라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연구 성과를 내야 하는 지도 교수의 입장에서는 불안하지 않을까?

김 교수는 "학생들이 욕심이 있다. 저년차일 때는 상당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 연구성과가 되는 것이라면 굉장히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석사 1년차 학생에게 박사 과정 학생 연구를 도와주면서 배우라고 하지 않고, 자기 프로젝트를 하게 한다. 석사 1년차가 자기 프로젝트를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열심히하는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지만, 연구실에 아무도 없고, 몇 명만 앉아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학생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위해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생들에게도 지도 교수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연구하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교수는 자율성 외에도 학생들이 연구에 몰입할 환경을 만들기 위해 행정 전담 직원 채용(다른 교수와 비용 분담) 등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한 분의 행정원을 온전히 채용하기에는 인건비 부담이 커서 기업 연구 과제를 따와야 했지만, (연구재단의 연구비 사용 규정이) 융통성 있게 바뀌어서 수월해진 점이 있다"며 "(학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발표자료를 학생에게 만들어 달라고 한 적도 없고 다 무조건 내가 만들고 오히려 학생들한테 보내주는 편이다"라고 했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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