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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 입고 6·10 항쟁 이끈 지선스님 "제도 넘어 '일상의 민주화' 이뤄야"

승려 신분으로 민주화운동…"중생 고통 외면할 수 없어"
"요즘 세대, 권위주의 타파·성평등 관심…민주화 잘 이어져"

(의왕=뉴스1) 정혜민 기자 | 2021-06-10 07:00 송고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2021.6.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2021.6.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노태우는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으므로 국민의 이름으로 무효임을 선언합니다."

1987년 6월10일 오전 10시. 서울 성공회 대성당 꼭대기에 승복을 입은 지선스님(당시 41세)이 올라와 외쳤다. 같은 시각 잠실체육관에서는 노태우 대표위원이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 상임 공동대표 자격으로 마이크를 잡은 지선스님은 직후 경찰에 연행됐다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지선스님은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유서를 2~3번 썼다. 나라고 왜 겁이 안 났겠어요"라고 말했다. 34년 전 오늘의 일이다.

6·10 민주항쟁 기념일을 앞둔 지난 1일 경기 의왕시에서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75세, 본명 최형술)을 만나 민주화운동이 오늘날 갖는 의미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01년 고(故)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 민주화운동 기념·계승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지만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어왔다.

지선 이사장은 1946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16세에 출가한 이후 영광 불갑사 주지, 조계종 제주교구 관음사 주지를 거쳐 198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2017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선임됐고 이후 연임하면서 만 4년간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알리고 있다.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2021.6.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2021.6.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직접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계기와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계기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0.27법난(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승려 등을 강제로 연행하고 전국 사찰 등을 수색한 사건)이었다. 회의가 들던 찰나 시민들이 절에 올라와 "중놈들이 전두환 잘되라고 조찬기도회를 했다"며 욕을 했다. 그게 아니라고 해명을 하다가 5.18에 대한 불교적 입장을 강연하기 시작했다. 들불야학의 시작이었다. 어느새 재야인사가 돼 있더라.

―승려의 신분으로 민주화운동을 하기 부담스럽지 않았나.

▶전부 나더러 빨갱이라고 하고 "저 사람 정치 해 먹으려 한다"고 손가락질했다. 민주화운동을 할 때도 승복을 입고 최루탄 속에서 뛰고 구르는 게 부끄럽고 어색하더라. 하지만 그것은 외형적인 것일 뿐이었다. 나는 '승려가 개인 구원과 사회구원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불교 교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등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불교가 중생의 고통 앞에서 무관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민주화를 이룩한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 MZ 세대 등 젊은 세대가 민주화 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보나.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권위주의 타파, 성평등, 인권 문제까지 다양한 민주주의가 이슈인 것 같다. 스스로 시민의 권리를 찾고 요구하는 것은 민주화 정신이 잘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는 민주화가 200~300년 역사가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50년 됐다.

―젊은 세대에 과거 민주화운동 및 민주화 정신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민주시민 교육이 일상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민주화 정신이 다른 게 아니라 역사에서 외치던 민주주의를 우리 일상으로 가져와 스미게 하는 것이다. 우선 착공을 앞둔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이 그 핵심공간이 될 것이다. 마을민주주의, 생활 속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진행 중이다.

―제도적 민주화운동을 이끈 586세대 공직자 중 일부가 오늘날 부의 세습, 성비위와 같은 반(反)민주적인 행동으로 젊은 세대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이 같은 세태에 대해 평가한다면.

▶앞선 세대가 우리 사회의 제도적 민주화를 이끌었지만 그것이 생활 속 민주주의, 일상의 민주주의로까지 발전하지 못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공직자는 민주주의의 기반인 양심과 도덕적 잣대로 신변을 청정하게 하는 등 수양의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 믿지만 멀리서, 높은 데서 보면 잘못된 길일 수 있으니 끊임없이 옳은 길인지 아닌 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의무교육에 민주시민 교육을 넣고 조기교육을 해야 한다. 미국, 영국 이런 곳에서도 민주화 퇴행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 교육을 게을리해서 그런 것이다. 민주시민 교육이 부족하면 먹고사는 문제로 비민주적 물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또 민주화유공자 중에는 당시에 다쳐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이 있는데 민주화유공자법을 만들어서 보상해야 한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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