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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피아] 미래형 콘텐츠야?…10대 소녀 마음 뺏는 '액괴 시리즈'

슬라임으로 '일기' '소설' '상황극'까지
싸이월드 감성짤 대신 유튜브 '감성영상' 시대?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2021-05-24 08:00 송고
편집자주 20세기 대중문화의 꽃은 TV다. TV의 등장은 '이성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의 지성을 마비시켰다. '바보상자'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TV가 주도한 대중매체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우리 사회 곳곳을 바꿔놓았다. 21세기의 새로운 아이콘은 유튜브(YouTube)다. 유튜브가 방송국이고 도서관이고 놀이터고 학교고 집이다. 수많은 '당신'(You)과 연결되는 '관'(Tube)이 거미줄처럼 촘촘한 세상이다. '취향저격'을 위해 인공지능(AI)까지 가세했다. 개인화로 요약되는 디지털 미디어의 총아인 유튜브. 유튜브가 만든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적인 '멋진 신세계'일까.
유튜브 '액괴계' 콘텐츠 섬네일 © 뉴스1

먹방, 브이로그 등 내로라하는 유튜브 콘텐츠들 사이에서 시나브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콘텐츠가 있다. 바로 액체괴물이라 불리는 '슬라임'을 이용한 콘텐츠다. 슬라임을 만지작거리는 단순 촉감놀이 영상을 떠올리면 큰 오산이다. 슬라임을 활용해 '일기'를 쓰고 '상황극'을 펼치는 등 파생된 콘텐츠만 십여 종. 주 제작자이자 시청 층인 10대 소녀들은 이같은 영상을 '액괴계'라 통칭한다.

유튜브 검색창에 '액괴계'를 검색하면 형형색색의 슬라임 영상들이 빼곡하게 나타난다. 검색 필터를 이용해 한 주 동안 업로드된 영상만 추려내도 300여개. 겉으로 보면 모두 똑같은 영상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천차만별이다. 액괴계라는 큰 범주는 △시리즈계 △버실계 △소설계 △일기장계 △사연계 등으로 나뉜다.

유튜브 '액괴 시리즈' 콘텐츠 (유튜브 캡처)  © 뉴스1

◇ '액괴 시리즈'…최근 엄마 몰래 했던 행동은?


대표적인 콘텐츠는 '액괴 시리즈'다. 여기서 시리즈는 '주제'를 의미한다. 한 유튜버는 연두색 슬라임을 만지작대며 '최근에 엄마 몰래 했던 행동'을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아이폰6를 쓰고 있는데 너무 오래된 기종이라 안 되는 앱도 많다. 심지어 배터리 성능이 떨어져 충전하고 밖에 나가도 바로 20%가 된다"며 "최근에 제 돈을 모아 엄마 몰래 당근마켓에서 아이폰8을 구매했다. 그런데 폰을 들고 거실에 나가도 엄마와 아빠는 제가 폰을 바꾼지 아무도 못 알아보신다"고 밝힌다. 모든 스토리는 '음성'이 아닌 '문자'로만 풀어내는 게 특징이다.

또 다른 유튜버는 핑크빛 슬라임을 만지작대며 '부모님 앞에서 모르고 욕했을 때 유형&대처법'을 소개한다. 먼저 "문 지방에 발을 찍혀 저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왔을 때 신발 갖고 싶다고 하라"며 "장점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단점은 또 신발 사냐고 혼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당한 유형들은 '응 나 욕했어'라고 말하라"면서 "장점은 거짓말 안했다고 칭찬 받을 수 있지만, 단점은 엄청 혼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액괴계란 슬라임 영상을 '도화지'로 그 위에 각종 '스토리'를 추가하는 방식.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위 영상들의 평균 조회수는 3만~5만회. 10만회를 웃도는 영상도 있다.

유튜브 '액괴 모버실' 콘텐츠 영상 (유튜브 캡처) © 뉴스1

◇ '액괴 버실'…친오빠가 방에 들어오면?


액괴 시리즈 만큼이나 인기를 끄는 게 바로 '액괴 버실'이다. 버실이란 '버전'과 '실시간'을 합친 용어. 쉽게 말해 10대 여자 아이들이 '실시간' 스트리밍 상황을 가정해 '버전별' 상황극을 펼치는 영상이다.

일례로 '친오빠가 방에 들어온 버전'이 있다. 슬라임을 만지작대는 영상 위로 오빠의 실시간 채팅이 등장한다. "야 나 좀 도와줘"라는 오빠의 말에 유튜버는 "싫은데여"라고 말한다. "아니 좀 친오빠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줘 망할 동생아"라는 말에 "부탁하는 사람의 자세가 안됐네?"라고 대답한다. 이어 오빠가 "도와주면 5만원"이라고 하면 "세계에서 가장 예쁜 ○○님, 라고 하면 내가 5만원 받고 들어줌"이라 받아치는 형식이다.

'가오(폼) 잡는 선배 버전'도 있다. 슬라임 영상 위로 "안녕하세요, 예쁘신 선배님" 등의 후배들의 채팅이 빗발친다. 이에 유튜버가 "민서랑, 지희, 주혁이는 왔는데 왜 민준이는 안왔어"라며 혼내자 민준이 나서 "죄송합니다. 왔는데 눈팅중이었습니다"고 대답한다. 또 다시 유튜버는 "야, 내가 눈팅 싫어하는 거 모르냐?"라고 혼내는 형태다.

이처럼 버실 콘텐츠는 소위 '쎈 척'을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다만 이 모든건 '상황극'이다. 실시간 채팅을 실제로 진행하지도 않으며, 채팅도 모두 짜여진 대본으로 진행한다. 다시말해 '액괴 버실'은 10대 소녀들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콩트인 셈이다.

싸이월드 '감성짤' 모음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 뉴스1

◇ 액괴계, 이해 안 되나요?


액괴계 영상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많지 않다. 도대체 이런 영상을 왜 보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일부 기성세대는 10대 소녀들의 '쎈 척' 영상에 아이들의 미래를 우려하기도 한다.

10대 소녀들의 액괴 영상 제작 및 시청 동기는 단순하다. 엄마 몰래하는 행동, 친오빠에게 버티기, 일진 선배 따라하기 등 현실에서 쉽게 할 수 없지만, 한번쯤 해보고 싶은 일들을 유튜브 상황극을 통해 풀어내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 댓글도 "친오빠에게 사이다를 날려 너무 통쾌하다"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식의 반응이다.

생각해보면 액괴계 콘텐츠는 과거 기성세대들이 싸이월드에서 보여준 '감성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차가워질거야...따뜻하게 살기에는 세상이 날 너무 만만하게 보니까 / 나 지금 기분 매우 상쾌하니 건들면 죽이겠어요 / 함부로 가지고 놀지 마라. 사람 마음 니가 가지고 놀만큼 나 우습지 않아 (사진) 

이는 과거 기성세대의 휴대폰 배경화면 및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사진을 장식했던 '감성짤'이다. 그러니까 감성 충만한 10대들의 놀이터가 과거엔 싸이월드였다면, 이젠 유튜브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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