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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리뷰] '인트로덕션', 홍상수의 세계에서 마주한 '꼰대'와 '젊은이'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1-05-18 11:00 송고 | 2021-05-18 11:04 최종수정
'인트로덕션' 스틸 컷 © 뉴스1
'인트로덕션' 스틸 컷 © 뉴스1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러닝타임 66분의 짧은 흑백 영화 '인트로덕션'은 풋풋한 두 젊은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인생의 도입부(introduction)에서, 잔뜩 주눅 들어있는 두 사람. 이들의 주변은 이들의 서툰 고민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어른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힘껏 안아주는 연인의 두 팔과 꽁꽁 언 체온을 녹여줄 친구의 손이 있어 괜찮다.  
17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인트로덕션'은 느슨하게 연결돼 있는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이다. 기주봉과 예지원, 서영화, 김민희 등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익숙한 배우들과 홍상수 감독의 건국대학교 영화학과 제자 출신인 신인 배우 신석호, 박미소의 조합이 신선하다.

1번 이야기는 간절하게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는 중년 남자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전재산의 반을 바치겠다'는 남자의 간절한 기도는 무엇을 위함일까. 기도하던 남자는 한의사인 영호의 아빠(김영호 분)다. 영호(신석호 분)는 아빠를 만나기 위해 한의원을 찾지만 아빠는 손님들 때문에 바쁘다. 간호사(예지원 분)는 영호에게 쌍화탕을 내주며 영호의 어린 시절과 추억을 회상한다.

독일의 한 집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엄마(서영화 분)와 딸 주원(박미소 분)의 모습으로 2번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 해보는 유학 생활, 낯선 엄마 친구의 집에서 지내야 하는 주원은 걱정과 염려로 가득하다. 엄마 친구가 자신을 별로로 볼까봐 걱정하는 주원에게 엄마는 '엄마가 너한테 해 될 사람이면 붙여줬겠느냐'며 짜증을 낸다. 이어 엄마 친구인 화가(김민희 분)의 집에서 주원과 엄마 친구가 함께 대화를 나눈다. 깍듯이 존댓말을 쓰는 주원에게 엄마의 친구는 주원이 들어보지 못한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며, 패션 공부가 쉽지 않다고 충고한다. 다 함께 집에서 나와 공원을 산책하는 중에 주원이 갑자기 남자친구 영호가 독일에 왔다며 영호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유학온 지 하루 만에 쫓아온 딸의 남자친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주원은 영호를 만나러 간다. 영호와 주원은 애틋하게 서로를 품에 안고 눈을 맞춘다.

3번에서 영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엄마(조윤희 분)가 유명 배우(기주봉 분)와 함께 한 바닷가 앞 횟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유명 배우는 1에서 영호가 아버지를 만나러 갔을 때 아버지의 손님으로 왔던 사람이다. 엄마는 유명 배우에게 영호가 아버지의 한의원에서 그를 만난 후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영호는 친구(하성국 분)와 함께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아들이 친구까지 달고 온 것을 엄마와 배우는 탐탁지 않아 한다. 영호는 이제는 배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데, 배우는 이해되지 않는 영호의 고민에 역정을 내고 만다. 잠깐 자리를 피해 나간 영호와 친구는 술에서 깨기 위해 시간을 보낸다. 영호는 거친 파도 속에 몸을 맡긴다.
홍상수 감독의 여느 영화들처럼 '인트로덕션' 역시 여러 번 반복되는 대사와 행동이 영화에 특별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강조되고 반복되고 변주되는 이 리듬에서 관객들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도출한다. 이 영화에서는 세대차이를 드러내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영화 속 영호와 주원, 영호의 친구까지, 세 젊은이에게 보여주는 영화 속 어른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어색하거나 무관심하고(영호 아빠), 짜증을 내거나(주원 엄마) 답답해 하기도(영호 엄마) 하고, 시니컬하기도 하고(화가) 윽박지르며 분노하기도(배우)한다. 자신이 가본 적 없는 길을 먼저 간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주눅이 들어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한국식 예의를 차리려 노력해 웃음을 준다. 연장자에게 '다나까'로 답하고, 받은 술은 고개 돌려 마시며 주도를 지키는 모습에서 자유로움 없이 얽매여 있는 우리네 삶을 보게 된다. 영화 말미, 영호가 거친 파도 속에 뛰어든 것은 아마도 이런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영화 '인트로덕션'에서 '인트로덕션'은 도입부라는 의미일 뿐 아니라 누가 누군가를 소개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영화에서 어른들은 인생의 초반에 진입한 아이들에게 누군가를 소개한다. 어른들이 소개한 사람이, 혹은 어른들이 소개한 어떤 세상이 주인공들을 어디로 인도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불안만이 가득할 뿐이다. 영화는 그런 불안함을 떠안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거친 파도를 맞느라 얼어버린 몸을 녹여줄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세 번의 파트 1, 2, 3에는 꼭 한번씩 포옹하는 장면이 들어간다. 1에서는 영호와 간호사, 2에서는 영호와 주원, 3에서는 영호와 영호의 친구가 서로를 끌어 안는다. 우리는 끝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잠시 잊게 하는 팔과 체온이 소중하다는 것을 배운다.

'인트로덕션'은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장편 영화이며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각본상 수상작이다. 오는 27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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