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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畵音] 와이파이는 피아노를 이용해 발명했다?

음악가 조지 앤타일과 화가 페르낭 레제

(서울=뉴스1)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 2021-05-11 07:00 송고
페르낭 레제 작 '프로펠러'© 뉴스1
페르낭 레제 작 '프로펠러'© 뉴스1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모습, 요즘 우리의 일상에서는 당연한 모습이 됐다. 특히 와이파이(WiFi)의 발명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세계와의 연결이 가능해졌다. WiFi 기술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런 편리함과 글로벌함이 가능했을까? 그런데 이 와이파이 기술에 숨겨진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다름 아닌 작곡가 조지 앤타일(George Antheil, 1900 ~ 1959)의 곡 '기계적 발레'에서 착안이 됐다는 것.

조지 앤타일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사람은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이자 발명가였던 헤디 라마다. 그녀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잠수함이 피란민을 태운 영국 여객선에 어뢰를 발사, 격침하는 사건을 접한다. 이때 어린이 70명을 포함, 293명이 사망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연합군을 도울만한 연구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라마는 연합군의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할 때 무선으로 어뢰를 조종, 주파수를 분산시켜 적군이 이를 알아차릴 수 없게 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하지만 개발이 쉽지만은 않았던 라마는 어느 날 할리우드 파티에서 앤타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작곡한 '기계적 발레'에서 그 실마리를 찾게 된다. '기계적 발레'를 위해 앤타일은 피아놀라라 불리는 자동 피아노를 사용했는데 수많은 자동피아노를 동시에 연주하게 하기 위해 원통을 사용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선주파수간 빠른 도약"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자동 피아노란 "사람이 연주하는 대신에 기계의 작용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연주하는 피아노"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들은 88개의 피아노 건반과 마찬가지로 88개의 주파수로 변조하는 장치를 만들어 특허를 출원했다. 이후 이 기술은 무선전화통신망,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으로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앤타일의 '기계적 발레'는 원래 화가 페르낭 레제(Henri Léger, 1881-1955)가 더들리 머피와 함께 제작한 동명의 영화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15분 남짓 진행되는 이 영화 속에는 그네를 타는 여성, 기계와 같이 반복적으로 웃는 여자의 얼굴, 타자기, 움직이는 시계추, 앵무새, 놀이공원의 기계들, 자동차, 마네킹 다리, 그리고 모자, 구두와 같은 공산품, 공장에서 찍어낸 조리도구, 기계 파트의 움직임들이 등장한다. 이 이미지들은 숫자와 도형들과 교차 편집되면서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마치 기계가 일상에 들어온 모습과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함께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영화에 걸맞게 앤타일 역시 반복되는 리듬을 사용해 음악을 작곡한다. 이 곡에서 자동 피아노는 기계와 인간의 만남을 그리듯 연주자들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협연을 하는 형태로 사용된다. 무대 위 자동 피아노는 스스로 현란하게 움직이는데 제목인 '기계적 발레'처럼 마치 춤을 추는 듯 보인다.

'기계적 발레'를 제작한 레제가 기계에 빠져든 것은 제 1차 세계대전 전후다. 세계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기계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기계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을 거라 믿었던 레제. 그는 작품에서 사람들을 마치 기계처럼 그려내기 시작했다. 세잔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레제는 피카소, 브라크 등과 함께 큐비즘을 거쳐 결국 모든 것들을 원기둥으로 표현하는 이른바 튜비즘이라는 독창적 화풍을 만들어냈다. 또한 레제는 기계화된 도시를 그려내며 기계를 미학적으로 그려냈다.

페르낭 레제 작 '건설자들'© 뉴스1
페르낭 레제 작 '건설자들'© 뉴스1

레제의 대표작 중 하나인 '건설자들'은 건설현장을 그리고 있다. 철근을 나르고 높이 쌓아 올린 철근 위에서 작업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기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레제는 여행 중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보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계화를 이루기 위한 노동자들의 모습.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 속에 담긴 기계적인 느낌. 레제가 그린 세계는 기계와 인간이 마치 하나가 되는 듯 기계와의 화합을 그리고 있다. 레제는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는데 기계화된 사회에서 대량생산을 통해 모두가 동등해 질 수 있다는 점에 기계화의 가치를 둔 것으로도 보인다.

당시 개념미술의 선구자였던 뒤샹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은 프로펠러에 매료됐다. 1912년 항공 박람회를 관람하고 난 뒤샹이 "이제 회화는 끝났다, 저 비행기 프로펠러보다 더 멋진 걸 누가 만들어낼 수 있겠나?"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프로펠러. 레제는 이것을 그림의 소재로 차용, 프로펠러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작업을 통해 기계미학을 완성한다.

앤타일 역시 비행기를 주제로 '비행기 소나타'라는 피아노 곡을 썼다. 기계적인 리듬을 통해 프로펠러의 매력을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를 '음악의 악동'이라 불렀던 앤타일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실험적 음악을 만들어갔고 결국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던 '기계적 발레'에 이르러서는 프로펠러를 무대에 등장시키기까지 했다.

기계를 사랑했던 화가와 음악가. 당시 기계의 발전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다. 2021년 현재. 비행기도, 와이파이 기술도,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우리는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나?

앤타일과 라마의 기술은 한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라마의 아름다운 미모와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가, 다름 아닌 피아노를 이용해 발명했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결국 이들은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고, 1997년, 미국의 '전자 개척자 재단'으로부터 개척자 상을 수여 받는다.

지금 당연한 것들이 한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지금 그렇지 않은 것들 중 언젠간 당연해져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예술도 그러하다.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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