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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반도체는 인프라다

(서울=뉴스1) | 2021-05-03 10:14 송고 | 2021-05-03 10:43 최종수정
© News1 
세계 자동차 제조업계가 차량 반도체 부족으로 난리다. 팬데믹으로 침체됐던 경기가 회복되면서 주문은 밀려드는데 반도체가 없어 자동차를 제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대와 기아, 미국의 GM과 포드, 독일의 폭스바겐과 벤츠 등 내로라하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대만의 반도체 생산업체 TSMC를 향해 '반도체 칩을 좀 공급해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다. TSMC는 차량 반도체 칩을 포함한 반도체 생산 분야의 세계 톱 기업이다.

자동차에 반도체 칩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동차 생산이 마비될 정도로 중요한 부품인지, 왜 요즘 들어 공급이 잘 안 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동차 생산과 관련해서 반도체 공급이 문제된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미·중 반도체 전쟁'이란 무시무시한 얘기까지 들으며 살아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자동차에 반도체가 왜 필요한지 피부에 와닿게 설명 좀 해주십시오." 자동차 공학자 최웅철 교수(국민대)에게 나의 혼란스러움을 덜어달라고 호소했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다. "운전대에 앉아 시트벨트를 매지 않고 자동차 시동을 걸면 빨간 불과 함께 경고음이 나옵니다. 벨트 매면 조용해집니다. 이게 전담 컴퓨터, 다시 말하면 시트벨트를 맡은 반도체 칩이 하는 일입니다."

최 교수의 설명이 계속됐다. "전기로 작동하는 자동차의 모든 부품에는 전담 컴퓨터(반도체 칩)가 있습니다. 수천개 됩니다. 현대적 의미의 자동차는 반도체 칩이 없으면 고물 덩어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요즘 자동차는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차 등 종합 모빌리티 개념으로 급속히 진화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가 깊어지면 반도체 칩은 더욱 중요해진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모터 제어장치, 배터리 충전 및 화재 제어 등 주행관련 기능외에 다양한 오락 시스템이 자동차에 장착되면서 반도체 칩이 할 일이 계속 늘어난다고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기사에는 자동차 한 대에 필요한 반도체 칩이 약 3000개라고 집계했다. 자동차가 값비싼 제품이긴 하지만 반도체 칩이 이렇게 많이 필요하다니 정말 놀랍다. 이런 정보를 듣다 보니 자동차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깨지는 것 같다. 마치 자동차가 반도체 상자처럼 보인다.

우리는 반도체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빠져 살면서도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 마치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평소 공기의 귀함을 모르듯이 말이다. 그런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런 통념을 깨뜨리며 경종을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이 4월29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동안 많은 일을 벌이면서 뉴스를 뿌렸다. 그의 뉴스 이벤트 중 인상 깊었던 일은 지난 4월 12일 TV카메라 앞에서 동그란 반도체 웨이퍼를 치켜들고 "칩이 인프라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반도체 공급망 대책을 협의하기 위해 GM, 인텔 등 19개 글로벌 기업 CEO들을 화상회의에 불러낸 자리에서다. 78세의 대통령이 노쇠해지는 미국을 향해 "정신 차려라"라고 일깨우는 모습 같았다.

바이든의 이 한마디는 반도체를 인프라의 중심 무대로 불러낸 선언이었다. '인프라'(infrastructure), 정말 많이 들어온 말이다. 도로 교통망, 항만과 공항, 수자원 및 상하수도 시설, 전력과 통신망, 의료시설, 교육시설 등 국민 경제의 기초가 되는 기반시설을 일컫는 개념이다. 바이든은 이러한 전통적 인프라를 망라해서 거론했지만 유달리 강조한 것이 반도체, 배터리, 광대역통신망(브로드밴드)이다. "과거의 인프라를 보수하는 게 아니라 오늘의 인프라를 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에 울림이 컸다.

차량 반도체 부족이 발단이었지만 반도체 공급 대책회의를 소집한 바이든 대통령의 시야는 넓고 멀리 꿰뚫고 있다. 그건 중국과 벌이게 될 반도체 패권 경쟁이다.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국가 경쟁력 내지 안보 차원에서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이날 회의를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한 것이고, 미국 기업만 아니라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를 참여시킨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견제에 미국 의회의 초당적인 응원이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공급망의 방향을 바꾸고 이를 지배하기 위해 공격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상원의원들의 편지를 공개한 것이다. 미국이 기다리지 말고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500억달러의 반도체 분야 지원책을 내놨다.  

미국은 반도체 기술의 탄생지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서 절대 강자다. 그러나 미국 반도체 산업은 기업이 주도한다. 인텔이나 애플 등 반도체 기업들은 주로 설계만 하고 생산은 대만의 TSMC 등 주로 아시아 국가 반도체 기업에 위탁생산(파운드리)으로 맡긴다. 그 결과 세계 반도체 생산 능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2%다. 1990년엔 37%였다.

중국은 기술개발에 국가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시진핑이 꾸는 중국몽(中國夢)은 '중국제조2025' 프로젝트를 통해 건국 100주년(2050년)에 미국에 필적하는 첨단기술국가가 되는 것이다. 오랜 상원의원과 8년의 부통령 경험을 가진 바이든은 중국의 위험요소를 공산당 일당지배의 독재권력 체제에서 감지할 것이다.  

장차 산업의 연료이자 국가안보 자원이 되는 반도체 공급망이 아시아에 몰려 있다.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는 바로 중국의 턱밑에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긴요한 전략물자를 가진 대만과 한국이 중국의 군사 및 경제 사정권 안에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 두 기업에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보채고 있다. 일단 미국 땅 안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림으로써 공급망을 배타적으로 확보하고 중국에 대한 추가 투자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중국 또한 기술을 보유한 한국기업의 중국 투자를 원한다.  

백악관이 삼성전자에 구체적으로 어떤 주문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5월 21일 열리는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서 반도체공급망 문제가 의제로 떠오른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을 것이다. 이 상황을 위기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큰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메모리반도체가 주력이지만 반도체 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은 작지 않다. 미국이 그렇듯이 반도체 기술개발과 공급망은 국가가 챙겨야 할 인프라 전략이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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