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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월요묵상] 자신만의 탁월을 연마하고 있습니까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2021-05-03 06:30 송고 | 2021-05-03 16:21 최종수정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인간은 자유인이거나 노예다. 근대 이전 인간은 사회가 부여한 계급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신분이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 신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다. 그런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 시대 사상들, 즉 스토아철학, 에피쿠로스 철학, 견유학파 철학이 등장하면서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철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일반인에게도 문을 열었다. 이 시대 사상가들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스스로 '자유인'이 되었다.

노예였던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철학자가 되어 후학을 양성하였고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근교에 '정원'형식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당시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감행하였다. 이 공동체에 아녀자와 노예를 수용하여 함께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에피쿠로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1세기엔 40만 명에 달했고 수백 개의 공동체가 생겨났다. 후에 등장한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원은 원래 에피쿠로스학파의 공동체 건물들이었다.

IT혁명으로 타인의 생활을 시시각각 현미경으로 관음하고, 익명을 매개로 정제되지 않는 댓글을 달 수 있는 디스토피아에서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적이다. 소극적인 의미의 자유는 타인으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는 상태이지만,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는,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지금-여기에서 몰입하는 기운이다. 코로나 시대 현대인들은, 타인과의 신체적인 접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그와 비례하여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의 자발적인 노예가 되었다.

자발적인 모방자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신만의 삶의 노래로 자신에게 감동적이며 세상에 자비를 실천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통점은 '탁월'이다. 그 탁월이란, 오랜 묵상을 거쳐 특정한 분야에서 소질을 발견하여, 그것을 갈고 닦는 수련을 거쳐, 소명으로 삼은 자의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 전체를, 이 소질을 탁월로 변모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에 언제나 겸허하다. 거기에는 경쟁이 없다. 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을 발휘하여 승리자가 된다.

이 자기-확신과 자기-존경은 그를 타인과 구별시키는 아우라이다. 이 아우라는 사회가 그에게 부여하고 싶은 부, 권력 그리고 명성을 초월한다. 이 아우라는 숫자로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후진사회에서, 그를 독보적인 존재로 승화시킨다. 이 확신과 존경, 그리고 탁월은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묵묵히 시행착오를 거친 수련과 연습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한 마리 제비가 여름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 탁월한 자는 명성을 얻기도 하고 약간의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탁월한 사람들 대부분은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인생을 유유자적하며 산다. 고독이 그들을 탁월하게 만드는 기반이자 무기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난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인정이나 부의 축적은, 스스로에게 가지는 자기 신뢰와 자기존경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다. 자기 신뢰와 자기존경은 어떤 권력이나 부도, 혹은 바람과 같은 명성도 함부로 도달할 수 없는 성배다.

탁월의 보상은 명성이 아니라 자기-존경이다. 자신을 존경하는 이유는 타인의 박수나 환호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만의 천부적인 소질을 발견했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순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탁월한 인간에게 타인이 부여하는 인정이나 입증이 필요 없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의 인정을 위해 법정 연설하지 않았다. 그에게 불리하고 엉뚱한 판결에 순응한 이유는,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법의 가치를 신봉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의 최고 판결기관인 산헤드린의 공식적인 인정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한 가치인 '사랑'을 자신의 삶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기꺼이 올라간 것이다. 탁월은 인정을 받기 힘들다. 인정을 받기 위해 초조하게 기다리거나 그 대상에 아부한다면, 그는 이미 자발적인 노예다. 천재는 타인들이 보기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인내다. 성인은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이런 탁월과 자기존경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의 표식이라면, 사회나 전통이 정해놓은 규범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소극은 '자발적인 노예'의 계급장이다. 그 계급장을 따기 위해, 청소년 시절에 건강을 해치고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과외를 하고, 돈을 잘 번다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인생의 황금기를 철장과 같은 고시원에서 취준생으로 산다. 그런 자들에게 정신질환은 덤이다. 자유로운 자는 자신의 유일무이한 삶을 창조하지만, 자발적인 노예들은 관습, 평판, 의견에 감금되어 사회가 그에게 어울리는 삶을 정하도록 허용한다. 철학자 리차드 테일러는 그런 현대인들을 '자발적인 노예'라고 불렀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노예인 줄 모르고 지낸다. 개인의 자유와 탁월을 보장하는 길은 좁다. 이 길은 처음에는 좁아, 나의 최선 이상을 요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넓어진다. 밤에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떤 이는 양봉으로, 어떤 이는 춤으로, 어떤 이는 글로, 어떤 이는 요리로, 어떤 이는 바둑으로, 어떤 이는 사업으로 자신의 탁월을 자유롭게 수련한다. 자신이 정복하고 싶은 각자의 에베레스트산에 조금씩 올라가기 때문에, 매일 매일이 산 정상이다. 당신은 자신의 탁월을 수련할 분야를 알고 계십니까? 그것을 안다면 오늘 그것을 어제보다 좀 더 완벽하게 연마했습니까? 아니면, 어제와 똑같이 주위의 인정에 목마른 자발적인 노예입니까?

레바논 출신 미극 작가 칼릴 지브란의 '노예'©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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