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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씩 든 봉투 2장 꼭 쥐고 매달 주민센터 찾는 80대 할아버지

광주 서구 화정2동 박영배씨
수술 후 걷지 못하는 아내 위해…"기적 내려줄 것으로 믿어"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2021-04-20 14:24 송고
20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박영배 할아버지(86)가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2021.4.20/뉴스1
20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박영배 할아버지(86)가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2021.4.20/뉴스1

"하나는 내 몫, 하나는 아내 몫… 꼭 필요한 사람들한테 전해주세요."

20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 느린 걸음으로 센터 안에 들어온 한 노인이 봉투 두 장을 꺼냈다.
한 봉투에는 '적지만 좋은 곳에', 다른 하나에는 '적지만 필요한 곳에'라는 손글씨가 꾹꾹 눌려 쓰여있었다.

봉투를 전달받은 복지센터 직원은 "꼭 한달 만에 오셨네요"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노인도 "잘 지냈어?"라며 살포시 미소지었다.

마치 손주들을 보는 양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이 노인은 광주 서구 화정2동 주민 박영배 할아버지(86)다.

박 할아버지는 2018년부터 벌써 4년째 매달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에 10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500만원이 넘는다.
눈이 펑펑 내리던 추운 겨울에도, 태풍이 불던 여름에도 계좌이체 대신 매달 한번 센터를 직접 찾아 손수 적은 문구와 함께 기부금을 내놓는다.

몇 달 전부터는 그의 아내 장야림 할머니(84) 몫도 추가했다. 아내의 몫까지 부부가 기부하는 금액은 매달 20만원이다.

이들의 기부금은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를 거쳐 매달 사회복지공동모금에 전해진다.

할아버지가 기부금 전달을 시작한 건 온전히 아내 때문이다.

아내인 장야림 할머니는 지난 2014년 고관절과 무릎, 허리 등을 수술하며 병원 신세를 졌다. 세 번의 수술 후 홀로 걷지 못하게 돼 노인장기요양등급 3급을 받았다.

박 할아버지는 아내가 걷지도 못하게 되자 기부를 시작했다.

"기적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부를 생각했지. 좋은 마음을 쓰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하늘도 아내가 걸을 수 있게 기적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는 거지."

할아버지의 따뜻한 선행은 이뿐이 아니다. 그의 넉넉한 마음씨는 과거 교직생활부터 시작됐다.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박 할아버지는 1965년부터 약 35년간 광주 무등중학교, 나주 남평중학교, 신안 하의중학교 등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당시 그는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 책값과 용돈 등을 마련해주곤 했다. 이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박 할아버지는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 할아버지는 그때 도운 제자들이 커서 찾아왔을 때 삶의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내가 도와줬다는 사실을 기억조차 못하던 순간에 제자들이 나를 찾아와 감사하다고 하는데, 아, 더 많이 베풀고 나눠야겠구나 하는 결심을 했지."

이렇게 퇴직 후 다시 시작된 그의 나눔사랑은 전남 화순 노인복지관 등을 거쳐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로 이어졌다.

박 할아버지는 "아픈 아내와 늙은 나보다도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매달 복지센터를 찾았다"고 말했다.

장야림 할머니와 박영배 할아버지 (독자제공) © 뉴스1
장야림 할머니와 박영배 할아버지 (독자제공) © 뉴스1

박영배 할아버지의 가장 큰 소망은 아내 장야림 할머니의 건강 회복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휴대전화 배경화면에 저장된 할머니의 사진을 애틋하게 바라봤다. 눈시울이 붉어지나 싶더니 굵게 주름잡힌 눈가에 어느덧 눈물이 맺혔다.

"우리의 이 마음이 닿아서 어려운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또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길 바라지. 지금은 아내가 걷지 못해 혼자 복지센터에 오지만 나중에는 기적이 생겨 함께 손을 잡고 기부금을 전하고 싶어."

화정2동 행정복지센터 조자영 주무관은 "할아버지를 매달 볼 때마다 건강하게 잘 계시는 모습에 반갑고 기쁘다"며 "또 할아버지께서 할머니를 생각하시는 마음이 너무도 애틋해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 어르신께서 매달 20만원씩 기부하신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지역사회를 위해 마음을 주신다는 것에 감사하다"며 "그 마음을 잘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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