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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축브리핑] 다시 그리고 여전히 '인종차별'로 얼룩진 유럽축구

12일 손흥민 향해 "작은 눈으로 다시 다이빙 해 보라" 인종차별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2021-04-12 15:03 송고 | 2021-04-12 15:48 최종수정
인종차별을 받은 손흥민. © AFP=뉴스1
인종차별을 받은 손흥민. © AFP=뉴스1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에서 뛰는 손흥민을 향해 잉글랜드 일부 축구 팬들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큰 논란이 일고 있다.

토트넘은 12일(이하 한국시간)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2020-21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31라운드 홈경기에서 1-3으로 졌다.

이 경기에서 손흥민은 경기 외적인 잡음 때문에 주인공이 됐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전반 33분 맨유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가 폴 포그바의 패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켰다. 그런데 그에 앞서 스콧 맥토미니가 손흥민의 얼굴을 가격한 장면이 비디오판독(VAR)을 통해 발견, 득점이 취소됐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쓰러질 때 '다이빙' 논란이 일었고, 시뮬레이션 액션이라고 주장하는 맨유의 극성 팬들은 SNS를 통해 손흥민에게 '인종차별적' 발언과 폭언을 퍼붓고 있다. 

인종차별은 팬뿐 아니라 함께 뛰는 동료와 심판에게서까지 나오고 있다. © AFP=뉴스1
인종차별은 팬뿐 아니라 함께 뛰는 동료와 심판에게서까지 나오고 있다. © AFP=뉴스1

◇ 선수도, 심판도, 팬도 인종차별…주체도 다양

손흥민이 얽힌 이번 일을 포함, 최근 유럽 축구는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인종을 향한 인종차별이 끊이질 않고 있다. 주체도 다양하다.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은 건 대부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이었다. 지지하는 팀의 골이 취소됐으니 불만이 쌓일 상황일 수는 있겠으나, 손흥민을 향한 비난은 선을 넘었다.

팬들은 "작은 눈으로 다시 한 번 다이빙을 해 보라"는 등 사건의 본질과는 별개로 인종을 차별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도 인종차별을 했다. 지난 5일 스페인 라몬 드 카란자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디즈와 발렌시아의 2020-21 스페인 라 리가 29라운드에서 무흐타르 디아카비는 카디즈의 칼라로부터 "빌어먹을 검둥이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발렌시아 선수들은 30분 가까이 경기를 보이콧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 신성한 승부가 펼쳐져야 할 그라운드 위가 더렵혀진 순간이었다.

라 리가 사무국의 조사 결과 해당 발언의 진실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후로도 발렌시아 구단은 성명서를 내고 큰 유감을 표했다.

경기를 원활하게 관장해야 할 심판조차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 지난해 12월9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바샥세히르(터키)와 파리생제르맹(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루마니아 출신의 세바스티안 콜테스쿠 대기심이 주심에게 "저기 네그로 누구인지 확인하세요"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벤치에서 이 말을 들은 뎀바 바는 대기심에게 "당신은 백인 선수를 칭할 때 '하얀 선수'라고 일컫는가"라며 크게 항의했고, 경기는 신경전과 싸움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팬뿐 아니라 선수와 심판 등 축구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팬들로부터 '개고기 송'을 들었던 박지성 © AFP=뉴스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팬들로부터 '개고기 송'을 들었던 박지성 © AFP=뉴스1

◇ 손흥민 포함, 코리언 유러피언리거들도 당했다

오랫동안 EPL을 누비고 있는 손흥민은 12일 뿐아니라 이전에도 줄곧 인종차별 피해를 받아왔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일부 팬들은 아시아인들이 런던에서 DVD 판매 일을 많이 하는 점과 연관지어 "아시아에서 온 거지는 DVD나 팔아라" "나도 불법 DVD 하나 달라"며 손흥민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 

발렌시아(스페인)에서 뛰는 이강인도 인종차별을 당했다. 한 스페인 매체는 유망주 10명을 소개하는 캐리커쳐에서 이강인의 눈만 길게 찢어진 모습(아시아인들의 눈을 표현)으로 그렸다. 더해 발렌시아의 상대 팀 관중이 이강인의 이름이 소개될 때 눈을 찢는 시늉을 하며 깔깔대는 모습이 중계에 잡히기도 했다.

과거 유럽을 누볐던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에서 뛰었던 박지성은 '개고기송'을 들으며 뛰어야 했다. 비록 홈팬들이 응원의 의도를 담아 부른 것이었지만, "박지성은 언제나 개고기를 먹지"라는 노래 가사엔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시선이 짙게 담겨 있었다.

위건 애슬래틱(잉글랜드)에서 뛰었던 조원희도 한 TV 프로그램에서 "동료들이 라커룸에 도착하면 늘 내게 마늘 냄새가 난다며 구토하는 시늉을 했다"며 "눈을 찢는 시늉을 바로 앞에서 하는 동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12일 손흥민을 향한 도 넘은 비난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손흥민을 포함한 한국 선수들을 향한 인종차별은 오래 전부터 이어졌고,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경기 전 무릎을 꿇지 않는 윌프리드 자하 © AFP=뉴스1
경기 전 무릎을 꿇지 않는 윌프리드 자하 © AFP=뉴스1

◇ 무릎 꿇고, SNS 보이콧을 해도 멈추지 않는 문제

최근 유럽 축구가 인종차별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건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경기 직전 10초 동안 한쪽 무릎을 꿇는 인종차별 방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는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해 5월25일 미국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에서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인종차별'적 사건을 기억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퍼포먼스가 충실히 이행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인종차별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허울 뿐인 퍼포먼스에 불만을 표하는 선수도 나왔다.

크리스털 팰리스의 윌프리드 자하는 "무릎을 꿇는다고 인종차별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피해받는 흑인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 퍼포먼스를 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실제로 자하는 모두가 무릎을 꿇을 때 굳은 표정으로 서서 그라운드만 바라보고 있다.

SNS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보이콧을 하고 있지만 이것도 실효성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스완지 시티는 인종차별 댓글이 달리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모든 SNS를 당분간 닫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흑인 선수들을 향한 인종차별은 멈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 손흥민은 11일 에이전시 CAA 베이스와 함께 인종차별에 맞서 SNS를 7일 동안 보이콧하기로 했는데, 곧바로 그 다음날 손흥민을 향한 인종차별 공격이 쏟아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고, 인종차별을 막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캠페인이 동원되고 있지만, 이날 손흥민을 향해 일어난 인종차별을 통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주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이 멈추지 않으니, 그 사안이 훨신 심각하다는 걸 방증하는 셈이기도 하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은 "인종차별은 (퍼포먼스를 한다고 바뀌기 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며 "이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미션"이라고 규탄했다.


tr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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