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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난타전' 벌였던 LG-SK…하룻밤새 전격 합의한 배경은

美 정부, 거부권으로 한 쪽 편만 들 수 없어…합의 종용
분쟁 지속보다 사업 확대 필요성…막대한 소송비용도 부담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2021-04-11 09:10 송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놓고 2년 동안 미국에서 법적 분쟁을 벌였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둘 중 어느 한 쪽 편만 들어주기 어려웠던 미국 정부의 강력한 합의 요청과 소송을 끝내고 배터리 사업 확대에 집중한다는 양사의 입장 변화 등이 주요 배경인 것으로 풀이된다.

11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양사는 이번 주말 사이에 합의를 마쳤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르면 이날 오전 중으로 양사가 공동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한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이 지나기 전에 합의하기 위해 상당히 급박하게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로이터통신도 정통한 소식통 3명을 인용해 "양사가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한 합의안을 이날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블룸버그 통신도 소식통을 인용해 양사가 "양사가 막판 합의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건물. 2020.9.2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건물. 2020.9.2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당초 양사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 이후에도 '강대강'으로 대치하면서 당분간 합의가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았다. 지난달 초에도 양사 최고위급 경영진이 협상을 가졌지만 합의금을 둘러싸고 LG(약 3조원)와 SK(약 1조원)의 주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 분쟁에서 어느 한 쪽만 선택하는 것보다는, 서로 합의를 통한 해결을 강하게 원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 이번 합의의 주요 배경인 것으로 풀이된다.

ITC 결정에 따라 SK가 미국 내 사업을 못하게 될 경우 대대적인 전기차 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 정부는 배터리 수급난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SK도 ITC의 결정 이후 미국 공장 건설을 중단하고 유럽으로 옮기는 걸 고려했다. 이에 현지에선 배터리 공급망이 취약한 미국 완성차 업체까지 동반 부진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SK가 미국 사업을 철수하면 현실적인 대안은 중국에서 배터리를 수입하는 것인데, 이는 중국을 견제하며 의존도를 낮추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 역행한다. 여기에 조지아주 주지사도 거부권을 쓰라고 세 번이나 요청하는 등 자국 내 여론도 부담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ITC의 최종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해 SK이노베이션을 구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이 입주해있는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모습. 2021.2.1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SK이노베이션이 입주해있는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모습. 2021.2.1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부담이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건 ITC 소송에서 승소한 LG에너지솔루션을 외면하고 패소한 SK이노베이션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미국 정부 입장에선 해외 기업들의 다툼에 개입해 ITC의 법적 판단을 뒤집으면서까지 어느 한 쪽 편만 들어주는 건 무리가 있어서다.

특히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윤리적 잣대가 엄격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를 사실상 묵인하는 거부권 행사는 더욱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16년 ITC가 설립된 이후 100년이 넘는 동안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은 단 6건만 행사됐는데,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해선 아직 1건도 없을 정도로 지식재산권 침해는 미국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직접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어느 한 쪽의 손만 들어주는 부담을 지는 것보다는 양사의 합의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거부권 행사 시한이 지나기 전에 양사에 합의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블룸버그 통신도 "바이든 대통령이 ITC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수입금지 조치가) 시행될 예정이었다"며 "한국과 미국 정부는 양사가 합의에 도달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전했다.

미국 조지아주 제1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SK이노베이션 제공) © 뉴스1

급속하게 커지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분쟁이 지속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크다는 양사의 속내도 이번 합의의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SK는 미국 사업을 철수할 경우 포드·폭스바겐에 막대한 위약금을 줘야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 3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 시장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LG도 회사의 역량을 사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송에 얽매이는 등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실적으로는 막대한 소송 비용도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첫 소송 제기 이후 2년 동안 양사가 지출한 소송 비용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거부권 행사가 무산될 경우 SK는 ITC의 결정에 대해 미국 연방 항소법원에 항소할 예정이었고, 이와 별개로 델라웨어 연방법원에서도 양사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항소 절차는 약 1년, 손해배상 소송은 약 3~5년 정도 더 걸리는데 이 경우 소송 비용은 눈덩이처럼 더 불어날 수 있었다.

여기에 지속된 분쟁으로 인한 양사의 이미지 실추도 한 배경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싸우는 동안 경쟁자인 중국 기업에게 배터리 영토 확장의 기회를 넘겨주고 있다는 점도 국민 여론을 더욱 악화했다. 지난 1월 정세균 국무총리는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국민에게 이렇게 걱정을 끼쳐드리면 되느냐. 빨리 해결하시라고 권유했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합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양사가 합의하면서 SK이노베이션에 대한 ITC의 수입금지 조치도 무효화된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州)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도 차질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K는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를 포드·폭스바겐에 공급할 예정이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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