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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畵音] 오펜바흐와 티소, 화려한 작품 속 감춰진 속내

(서울=뉴스1)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 2021-03-02 12:00 송고 | 2021-06-08 15:17 최종수정
제임스 티소의 '너무이른'© 뉴스1
제임스 티소의 '너무이른'© 뉴스1
'프랑스 오페레타의 창시자'라 불리는 오펜바흐.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가 작곡한 캉캉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긴 치마를 들어 올리고 다리를 차올리며 경쾌한 춤을 추는 캉캉.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 중 '지옥의 갤럽'이라는 제목을 가진 음악이 바로 그 유명한 캉캉 곡이다. 오페라타란 짧은 오페라를 말하는 것으로 주로 희극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오펜바흐는 무려 100여 편에 가까운 오페라타를 작곡했다. 그 수만큼이나 엄청난 유명세를 탔던 오펜바흐는 재치 있는 줄거리와 음악으로 대중의 환심을 샀고 오페레타는 당시 프랑스의 대유행이 되었다.
오펜바흐의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타는 '지옥의 오르페우스'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차용, 패러디를 만들어낸다. 죽은 아내를 찾아 지옥으로 간 오르페우스가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을 어겨 결국 죽음으로 아내를 다시 만난다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당시 시대 상황에 맞춰 각색한 것이다. 먼저 오프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있는 커플로 등장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인 에우리디케가 양치기로 변신한 지옥의 신 하데스와 바람이 나 지옥으로 가게 되고, 오르페우스는 화가 나는 대신 아내가 없어진 것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여론'에 밀려 하는 수 없이 아내를 구하러 지옥에 가게 되고, 아내를 데리고 지옥을 나오던 오르페우스가 우연히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결국 아내를 구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오르페우스는 아내와 마침내 헤어질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며 오페라의 막이 내린다. 죽음을 넘어서는 신화적 사랑을 비웃는 듯한 이 이야기 안에는 귀족들 간의 사랑 없는 결혼과 무위도식하는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등장을 통한 당시 관료들에 대한 사회 풍자가 담겨있다.
제임스 티소의 '쉿!(연주회)'© 뉴스1
제임스 티소의 '쉿!(연주회)'© 뉴스1

오펜바흐가 파리 사교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미술계에서는 제임스 티소가 파리 상류층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23세에 파리 살롱에 작품을 발표한 후 파리 상류층의 여성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서 주목을 받게 된 그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보불 전쟁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을 그렸다. 모자와 모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티소는 부모의 영향 덕분인지 여성들의 패션을 화려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그림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그런 작풍으로 인해 그는 부유층으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누렸지만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존 러스킨은 그의 그림을 보고 '저속한 상류층의 불행하고 단순한 컬러 사진'이라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부자들만의 화려한 모습을 담은 그의 그림에는 사실 상류사회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다는 점이다. 실제 그는 당시 유명 잡지였던 베니티페어의 풍자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가 그린 '야망을 품은 여인', '너무 이른', '쉿!(연주회)' 등과 같은 작품을 보면 상류 사회에 대한 그의 비판적 시선이 담겨있다. '야망을 품은 여인'에서 여인은 노신사의 팔짱을 끼고 사교계 무도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마치 다른 기회를 노리는 듯 주변을 향해있다. '야망을 품은 여인'이라는 제목을 통해서도 티소는 화려한 사교계 속 여인의 숨은 의도를 드러내는 듯하다. '너무 이른'이란 작품 역시 사교계 무도회를 그리고 있는데 파티에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부끄러워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변의 시선들은 그녀를 불편하게 만드는 듯하다. 뒷담화를 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는 이 그림은 사교계 안에서 일어날 법한 미묘한 신경전을 떠올리게 한다. '쉿!(연주회)'이라는 작품에서는 살롱문화를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서 티소는 연주 시작 전 아랑곳하지 않고 떠드는 살롱의 관객들을 묘사하고 있다. 화려한 치장에 앞서 갖춰야 할 예의를 강조하려는 풍자적 그림처럼 보인다.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사교계를 주제로 불편한 진실을 그려낸 그의 그림들. 감춰진 상류층의 속내가 드러나는 듯 하다.  

제임스 티소의 '자화상'(왼쪽'과 '야망을 품은 여인'© 뉴스1
제임스 티소의 '자화상'(왼쪽'과 '야망을 품은 여인'© 뉴스1

티소가 평론가들로부터 '저속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처럼, 오펜바흐 역시 '천박'하다거나 '싸구려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오페라타라는 다소 가벼운 장르로는 그러한 평을 뛰어넘기 어려웠던 그는 죽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페라를 쓰기에 이른다. 바로 '호프만의 이야기'다. 이 오페라는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오펜바흐는 여기에서도 사회풍자를 이어간다. 특히 1막에 등장하는 인형 올림피아의 모습은 좋은 집안에 시집 보내고 싶은 딸을 가진 부모들이 딸을 인형처럼 예쁘게 꾸며 사교계에 등장시키던 모습을 빗댄 것으로 당시 상류 사회의 모습을 꼬집고 있다.

평생 오페라타를 작곡한 오펜바흐가 말년에 가서 오페라를 만든 것처럼 티소 역시 말년에는 사교계의 화려함을 그리는 것을 멈추고 종교화에 심취하게 된다. 티소가 사랑했던 여인 캐서린 뉴튼이 죽은 후 영적 경험을 하고 난 후였다. 티소는 캐서린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그에게 수많은 영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혼녀이자 불륜녀로 사교계에 낙인이 찍힌 상황이었다. 그녀와의 사랑은 그에게 사교계 퇴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와의 사랑을 택한 티소. 캐서린이 결핵으로 죽고 나서야 그의 사랑은 끝이 난다. 1882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티소는 파리로 돌아가 활동을 이어갔으나 1888년, 그녀와 관련된 영적 경험을 한 후 티소는 성서에 기반한 작품활동에 매진한다.
같은 사람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달라진 그림은 그의 심경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오펜바흐 역시 그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슬픈 음악을 남겼다. 다름 아닌 ‘자클린의 눈물’이라 불리는 첼로 곡이다. 작곡가이자 첼로 연주자기도 했던 오펜바흐는 많은 첼로 곡을 남겼는데 이 곡은 한동안 역사 속에 묻혀있다 베르너 토마스라는 첼리스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너무나도 슬픈 멜로디 때문에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의 이름이 붙여졌을 만큼 음악에는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슬픔이 묻어있다.  

사교계의 중심인물이었던 오펜바흐와 티소. 화려한 작품들을 통해 표현했던 사교계의 이면, 감춰진 속내. 그리고 화려한 작품들 뒤 숨겨두었던 자신들의 이면, 그들의 또 다른 자아.    

오펜바흐의 '지옥의 갤럽'과 '자클린의 눈물'을 번갈아 들으며, 티소의 서로 다른 작풍의 그림들을 동시에 보며, 그들의 서로 다른 자아만큼이나 다른 나의 멀티 페르소나를 들여다본다.

제임스 티소의 '찰스다윈의 캐리커처'(왼쪽)와 'men of the day' © 뉴스1
제임스 티소의 '찰스다윈의 캐리커처'(왼쪽)와 'men of the day'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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