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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선진국 기준' ILO 핵심협약, 국내서도 1년 뒤 발효

ILO 핵심협약 3건 비준 동의안 국회 본회의 통과
정부 "韓국격 높아져"…노사비판 등 걸림돌 여전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2021-02-26 19:33 송고
2020.11.26/뉴스1
2020.11.26/뉴스1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3건에 대한 비준 동의안이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리나라 노동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한 단계 높아지게 됐다.
지금껏 세계 주요국은 우리 노동권 수준을 선진국 반열에 걸맞지 않은 낮은 수준으로 평가해 왔다. 앞서 유럽연합(EU)은 한국이 ILO 핵심협약 미비준 국가임을 들며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분쟁해결 절차에 들어가기도 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ILO 핵심협약 제29호, 87호, 98호에 대한 비준 동의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앞으로 ILO에 협약 비준서를 기탁할 예정이며 기탁한 날로부터 1년 뒤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이번 비준은 대외적인 측면에서 국제사회와 약속 이행으로 국격과 국가 신인도 제고에 기여하게 됐다는 큰 의미가 있다"고 호평했다.

나아가 "한-EU 등 노동권에 관한 조항이 담긴 FTA 관련 분쟁 소지를 줄여서 통상 위험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ILO 핵심협약은 전 세계 어떤 노동자라도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국제 규범을 설립하고자 노동권의 기본 원칙을 구체화한 다국가 간 약속이다. 190개 ILO 협약 중 4개 분야 8개 협약을 가리킨다.

각각 △결사자유(87호, 98호) △강제노동 금지(29호, 105호) △아동노동 금지(138호, 182호) △균등대우 보장(100호, 111호)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ILO 회의장. © AFP=뉴스1
ILO 회의장. © AFP=뉴스1

ILO 회원국이라면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해야 하나, 한국은 1991년 ILO 가입 후 남북분단 등 국내 사정을 이유로 강제노동 관련 29호·105호와 결사자유 관련 87호·98호까지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군역 대신 전문·산업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허용한 군 제도나, 실업자나 교원·공무원의 경우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에 걸림돌이 많은 국내법이 문제였다. 이 같은 법 제도를 고치지 않고서는 4개 협약 비준은 어불성설인 측면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협약 비준부터 발효까지 1년의 시간이 주어지므로 이 기간에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는 지적도 내놨다. 그러나 협약 통과 뒤 국회 논의 등에 가로 막힌다면 국제사회 약속을 어겼다는 거센 비난이 불가피했다.

이에 따라 2017년 출범 이전부터 ILO 협약 비준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사회적 대화를 개시하고 협약 비준과 관련한 노사 의견을 수렴했다. 그리고 2019년, 마침내 협약 비준에 관한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제도 개선과 협약 비준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개정 노조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개정을 둘러싼 노사 모두의 비판이 터져 나왔으나 정부 입장에선 협약 비준의 길 자체는 열린 셈이었다.

결사자유 관련 87호는 자발적인 노사단체 설립을 어떠한 차별이나 사전인가도 없이 가능케 하는 협약이다. 이와 함께 98호는 노조 활동을 기초로 한 어떤 불이익도 금한다.

이들 두 협약을 비준하면 우리나라는 군·경찰 등 극히 일부 직종을 빼고는 노조 설립과 노조 활동 일체를 보장해야 한다. 정부는 해고자 노조활동 허용 등을 골자로 한 노조법 개정으로 협약 내용이 만족됐다는 입장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 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전교조 관계자. 2020.6.8/뉴스1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 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전교조 관계자. 2020.6.8/뉴스1

그러나 현행 제도가 ILO 핵심협약에 부합한다는 평가는 어디까지나 정부의 자체 평가로, 노동계는 협약 비준을 위해 단행한 정부의 조치가 오히려 노동개악(改惡)에 가깝다고 본다.

개정 노조법 하에서도 특고·프리랜서 등의 노조 설립은 완전히 자유롭게 보장되지 못했다. 기업별 노조 임원 자격도 여전히 해당 기업 종사자로 제한됐다.

반대로 경영계는 노동계 요구를 지나치게 수용하는 편파적인 조치가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노사 모두가 비준 결과에 불만을 품은 상황이다.

문제는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원국의 ILO 협약 위반 여부는 각국 정부가 판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ILO는 협약 위반 기준을 상당히 꼼꼼히 살피는 편이다. 일정 기간마다 전문가위원회가 구성돼 회원국 사례를 개별적으로 들여다 보면서 판단한다. 게다가 ILO는 과거 한국에 대체복무 개편이 아닌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만일 노동계가 협약 위반을 주장하면서 ILO 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경우 우리나라의 비준 노력 여부는 다시 국제사회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아직 105호가 미비준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도 문제다.

ILO 핵심협약 105호는 29호와 마찬가지로 강제노동에 관한 내용이다. 정치적 견해 표명과 파업 참가 등에 대한 처벌로서 강제노동을 금지한다.

따라서 105호는 국가보안법과 상충한다. 국가가 국민의 정치적인 견해 표명을 이유로 징역을 보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징역형을 금고형으로 바꾸려면 형법체계의 개편이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고용부는 앞서 105호만을 비준에서 제외한 결정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형벌체계, 분단상황 등을 고려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한 바 있다.

ILO 회원국 가운데 아직 핵심협약 105호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중일을 포함한 12개국뿐이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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