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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쪽방촌 속 '뿔난' 집주인과 '벼랑끝' 세입자…'상생' 힘들까

[쪽방촌 새볕들다]③개선사업 발표 후 현금청산에 불거진 재산권 침해 논란
영등포주민위원장 "실익을 원한다면 협상을, 반대를 위한 반대는 손해"

(서울=뉴스1) 김희준 기자 | 2021-02-25 07:30 송고 | 2021-02-25 10:08 최종수정
편집자주 서울역(동자동) 쪽방촌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공공시행 정비사업 발표 이후 집과 토지를 산 소유주의 현금청산 문제를 포함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다. 반면 정부와 지자체가 왜 쪽방촌 정비사업을 진행하는지, 꼭 공공이 나서야 하는지, 쪽방촌 입주민인 세입자의 입장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뉴스1>은 3회에 걸쳐 영등포·대전·서울역(동자동)쪽방촌 정비사업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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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동자동) 쪽방촌은 서울역을 등지고, 대로변을 건너 우측 블록에 있다. 서울역과 남대문경찰서, 그리고 동자동이 도로를 끼고 3개의 섬처럼 이웃해 있었다.

동자동이란 이름은 생소하지만, 서울역 어딘가에 쪽방촌 골목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본 계기는 최근 국토교통부의 발표와 그에 따른 토지·건물주의 반발이 언론을 뜨겁게 달궜기 때문이다.
◇1000명 몰린 동자동 쪽방촌, 개선사업 발표 후 재산권 침해 논란 

국토부는 지난 5일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통해 약 4만7000㎡ 규모의 쪽방촌을 정비해 총 2410가구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쪽방 주민 등 기존 거주자의 재정착을 위한 공공주택 1450가구(임대주택 1250가구, 분양 200가구)와 민간분양주택 960가구가 포함된다.

문제는 크게 2가지 부분에서 불거졌다. 발표전 토지-건물주와의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것, 서울역 인근 알짜 땅과 건물을 정당보상이란 명목하에 현금보상으로 강제 수용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문제에 대해선 어느 정도 해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장을 동행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공공주택특별법상 택지지구 위치를 노출하는 것은 형법에 저촉되는 사안이라, 고시 전엔 관계자 외에 누구도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앞서 영등포역이나 대전역 쪽방촌 개선사업도 동일한 방법으로 발표됐지만, 1년이 지난 영등포역 사업은 90%가 넘는 소유주들이 이에 수긍하고 보상합의에 도달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현금보상에 의한 재산가치 하락과 강제수용 우려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재산권 침해는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영등포역과 대전역의 쪽방촌 개선사업의 진행상황을 함께 둘러보고 청취한 것도 단순한 '확대재생산식' 판단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난 17일 찾아간 쪽방촌은 의외로 찾기 쉬웠다. 여느 쪽방촌과 마찬가지로 번듯한 노변상가와 여인숙 뒤편에 그늘처럼 웅크린 모습이지만, 3~4층 건물 전면을 뒤덮는 대형현수막이 '랜드마크'의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검은바탕 현수막엔 흰 글씨로 '사유재산을 빼앗아서 공공주택 만드는 게 공익이냐'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때 문득 공원인근 옆 계단에서 열심히 물품을 나르는 이들이 보였다. 쪽방촌 지원센터에서 음식물을 수령해 동네에 분배하고 있었다. 취재 일행이 사진 촬영의 양해를 구하자 단칼에 거부한다.

지난19일 오후 다시 찾아간 현장에서 서울역 쪽방상담소를 운영하는 김갑록 소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들의 냉담한 반응을 이해했다. 수많은 언론이 취재차 방문해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어갔지만 정작 나온 사진과 이야기는 저기 현수막 사진과 집주인들 말뿐이라고. 냉담한 게 아니라 쪽방촌에 딱한 사정을 설명해도, 반영이 되지 않으니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게 됐다는 얘기다.

기자의 사진찰영에 냉담했던 상담소 계단 © 뉴스1
기자의 사진찰영에 냉담했던 상담소 계단 © 뉴스1

◇"재산권 이야기만…쪽방주민 목소리 들리지 않아 허탈"


김갑록 소장은 "여기저기 걸려있는 대형현수막 뒤쪽에 어쩌면 그 건물에 쪽방 주민들이 살고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이야기가 쓰여 있는데 현수막은 버젓이 걸려있다"며 "그렇다면 누가 진짜 약자인지, 현수막 글귀가 아니라 그 이면도 한번 읽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000여명의 쪽방주민들이 24만원의 월세로 6.6㎡(2평) 미만의 좁은 방에 단열, 방음, 난방이 취약한 상황에 노출된 현실에 어떤 관심이 있었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쪽방촌 소유주 보다 유독 동자동의 반발이 크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궁금했다. 김익근 LH 차장은 "서울 도심이라 과거 여러 번 재개발조합이 만들어졌지만, 최근에도 세입자에 대한 이주대책이 미흡해 무산됐다"며 "이곳은 서울시가 용적률 등 개발확대의 저지선으로 여기는 곳이라 '공익'이라는 설득력있는 사업이 아니면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현재 쪽방촌 개선사업을 반대하는 위원장도 과거 진행이 무산된 재개발 조합을 이끌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익근 차장은 "이번 사업도 서울시, 지자체와 어렵게 협의해서 일이 되게 만든 것"이라며 "공공사업이 무산되면 수익성을 거둘 수 없는 상황이라 막연한 불신부터 걷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막연히 세입자를 위한 희생만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조재형 영등포역 쪽방촌 주민대표 위원장은 "공공주택특별법의 최종단계는 강제수용이지만, 협상테이블에서 소유주들이 다양한 실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단계별 장치를 만들었다"며 "지금처럼 덮어놓고 반대만 한다면 그런 단계별 협상기회를 다 놓친 채 최소한의 보상만 받아 가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실제 영등포역 쪽방촌의 경우 적극적인 사업수용을 전제로 시행사와의 협상과정에서 대토권을 얻어내 기존 매각이익보다도 더 높은 실익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귀띔했다. 대신 영등포구청 등 지자체는 속도감 있는 사업진행의 이익을 얻게 돼 정부의 예산과 제도지원 등의 이점을 얻게 됐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사업시행자로 참여하는 동자동 쪽방촌 정비사업에선 총 2410가구의 주택 중 쪽방 주민 등 기존 거주자의 재정착을 위해 공공주택 1450가구(임대주택 1250가구, 분양 200가구)와 민간분양주택 960가구가 분배된다. 

사업부지 내 상가 내몰림 방지를 위해선 공공주택 단지 내 '상생협력상가'가 마련된다. 민간분양주택은 최고 40층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민간 건설사는 새로 조성된 택지에 중대형 면적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새로 짓는 분양아파트의 경우, 40층까지 지을 수 있도록 서울시와 관련 규제를 풀도록 협의했다"고 말했다.


h99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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