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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독립성 생명’ 국수본부장도 '경찰대 출신'

총경 이상 고위직 10명 중 6명 '경대 출신'
3%도 안 되는 인원이 경찰 지휘부 독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1-02-25 06:53 송고
경찰청 © 뉴스1 황덕현 기자
경찰청 © 뉴스1 황덕현 기자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명대사로 기억되는 영화 '부당거래'에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최철기 반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최 반장은 자타공인 에이스지만 승진 인사에서 번번이 누락된다. 경찰대 출신 후배에게 매번 물 먹는다. 최 반장은 넋두리하듯 말한다. "경찰대 출신 아니면 서러워서 살겠냐."

10년도 더 된 작품이지만 영화에 공감했다는 경찰이 상당수다. 극적 과장 장치를 덜어내면 현실에 상당 부분 부합한다. '경찰대 카르텔'은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경찰서장급 총경 이상 고위직 726명 중 436명이 경찰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휘부의 60% 이상이 경찰대 출신인 셈이다. 전체 경찰관 12만7377명 중 경찰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6%(3293명)에 불과하다. 

반면 순경 출신 고위직 비율은 10%를 넘기 어렵다는 게 정설로 굳어졌다. 전체 경찰의 최소 90%가 순경 출신이다. 순경 출신들이라면 최 반장처럼 '족보의 한계'를 한번 쯤 경험했을 것이다.

경찰은 올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경찰대 쏠림은 더 심하다. 경찰 서열 1위 계급 '치안총감' 김창룡 경찰청장은 경찰대 4기 졸업생이고, 전임 민갑룡 경찰청장도 경찰대 4기 출신이다. 

현재 치안정감 6명 가운데 4명이 경찰대 출신이고 1명은 경찰간부후보생, 나머지 1명은 행정고시 출신이다. 경찰 서열 2위 계급 치안정감 중에서도 요직인 서울경찰청장과 부산경찰청장, 경기남부경찰청장 모두 경찰대 출신이다. 

여기에 경대 출신의 치안정감이 1명 더 추가될 전망이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54·경찰대 5기)다. 지난 23일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단수 추천된 그는 이르면 이번 주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서열 3위 계급 치안감으로 경남경찰청장인 남 후보자가 임명장을 받는 순간 치안정감 수도 기존 6명에서 7명으로 늘어난다. 국수본부장의 계급이 치안정감이기 때문이다. 국수본부장은 수사 권한이 커서 영향력이 검찰총장에 비유되고 있다.

내부에서 국수본부장을 선발하려면 △경찰청장 추천 △행정안전부 장관 제청 △국무총리 경유 △대통령 임명 등으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남 후보자를 추천하는 과정에 경찰대 한 기수 선배 김창룡 청장의 의사가 어떤 식으로든 반영된 셈이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사시 출신으로 경찰 고위직을 경험한 법조계 인사가 원래 본부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다가 이달 초부터 '경찰대 출신을 밀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본청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며 "그렇다고 해도 남 후보자가 단독 추천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경력과 평판만 놓고 볼 때 남 후보자는 자격 요건을 충분히 갖췄다. 문제는 경찰대 외에 정말 대안이 없었느냐는 점이다. 치안감 30명 가운데 리더십과 수사 경험, 인성 면에서 비경찰대 출신 인재가 분명히 눈에 띄는데도 또 경찰대 출신이어야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인사에서 안배하는 이유가 있다. 특정 출신이 우대 받으면 그 출신이 아닌 사람은 인사 시즌때 서러움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 직원 사기를 저하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국수본의 설립 취지가 수사 독립성이라 아쉬움이 더 남는다. 국수본부장은 독립성 확보를 위해 경찰청장을 견제해야 한다. 실제로 이렇게 해석되는 조항이 국수본 관련 법에 명시돼 있다. 경찰 내부의 기수 문화가 아무리 사라졌다고 해도 남 후보자가 기수 선배인 경찰청장을 대상으로 그 역할을 잘 수행할지 의문이 든다.

청와대도 이를 고려해 외부 인사를 본부장 후보로 추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경찰청에 여러 차례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도 결국 경찰대 출신이다. 경찰대 출신들이 고위직 독점을 '권리'로 생각할까 봐 걱정된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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