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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닭인데…"예방적 살처분만 최선? 백신 접종하면 안되나요"

"백신이 살처분보다 저렴하고 안전" 주장도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2021-02-26 11:15 송고 | 2021-02-26 11:17 최종수정
31일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흥리에 있는 대규모 산란계 농장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이 닭 24만 수에 대한 살처분을 하고 있다. 2021.1.31/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31일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흥리에 있는 대규모 산란계 농장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이 닭 24만 수에 대한 살처분을 하고 있다. 2021.1.31/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감염 우려 없는 멀쩡한 닭들까지 다 살처분하는 게 방역인가요? 백신 등 과학적 방역이 필요합니다."
국내 대표 친환경 동물복지 농장인 산안마을의 닭들이 최근 살처분되면서 일률적이 아닌 과학적인 방역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산안마을의 닭들은 바이러스 잠복기가 지나고 비감염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병원성 조류독감(AI,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농장과 반경 3㎞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모두 살처분됐다. 이 때문에 조류 전문가, 동물단체, 양계농장주 등이 반발하는 상황이다.

◇ "비감염 개체 살처분 문제…비용도 백신이 저렴"

26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AI가 발생한 지난해 10월부터 전국적으로 닭과 오리 약 280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24일까지 국내 AI 확진 농가는 102곳이다.
농식품부는 AI 발생 농장 반경 3㎞ 내 모든 축종을 예방적 살처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살처분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지난 15일 2주 동안 반경 1㎞ 내 동일 축종을 살처분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하지만 결국 조정 내용도 한시적이고 이 또한 과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감염 농장과 반경 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감염 개체들까지 모두 살처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 16일 한 동물복지 농장은 '살생의 광기, 예방적 살처분 정책을 전면 검토하고 계란 반출을 허가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두 달 가까이 예방적 살처분을 거부했다는 청원인은 "정부가 손에 피를 묻혀 가며 37년 친환경 양계 농가를 이렇게 무너뜨려야 하나. 단지 3㎞내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강한 동물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고 생산물의 이동제한도 엄격하게 작동된다. 과도한 살처분이 아니라 과학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적었다. 현재 87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가 예산 낭비 △달걀 등 가격 상승 △환경오염 △비인도적인 살처분 방법 △살처분자의 건강 등을 고려했을 때 이제는 무조건적인 살처분보다 백신 등 적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회장은 "정부는 바이러스 변이 등 백신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미 닭들은 백신을 많이 하고 있다"며 "차단 방역은 임시방편일 뿐 매년 되풀이되는 AI를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 고병원성 AI 백신도 준비돼 있는데 안전성 검증을 끝낸 만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회장에 따르면 알을 낳는 산란계 1마리가 알을 낳기 전까지 맞는 백신은 10번 정도다. 닭이나 달걀이 출하 전까지 백신 성분이 잔류되는 일도 드물다는 것이 윤 회장의 주장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살처분의 경우 장비, 인력 등 비용은 물론 보상비까지 마리당 1만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지만 백신은 200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 "비인도적 살처분에 사람도 트라우마 생겨"

닭들을 생매장하는 살처분 방식이 잔인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최근엔 이산화탄소 주입 방식으로 살처분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닭들이 바로 기절하지 않기도 해서 살처분 현장을 지켜보는 수의사, 공무원 등 관계자들의 트라우마도 적지 않다.

이 뿐 아니라 닭들을 매몰 후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3년 후에 다시 파내서 렌더링(열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이같이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때 백신 등을 활용한 과학적인 방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물단체에서도 예방적 살처분을 강력 반대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과학적 근거없이 3㎞로 일관한 탁상행정식 살처분 명령은 최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방역당국은 잘못된 방침을 신봉하다시피하며 3000만 마리를 죽이는 참사와 혈세 낭비 등 막대한 피해를 유발했다. 그런데도 조류독감은 계속 발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을 정해 시범적으로 백신 접종을 하자는 얘기도 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은 지난 19일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효율적인 고병원성 AI 방역을 위한 방역정책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정부가 정책을 실행하기에 앞서 실제 농장이나 업계 현장에 가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책 시행에 있어 너무 많은 국가기관이 관여돼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정책결정을 위해 체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며 "AI로 인한 현재와 같은 피해가 지속될 경우 백신접종을 심층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너무 범위가 크다면 지역적으로 한정해서 백신 접종을 시도해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등 단체들은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산안마을 닭들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 강행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카라 제공 © 뉴스1
동물권행동 카라 등 단체들은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산안마을 닭들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 강행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카라 제공 © 뉴스1

한편 농식품부는 알 생산가금 일제검사를 계기로 종합적인 상황 진단을 통해 향후 방역대책을 설정하고 사전 예방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고병원성 AI 백신에 대해서는 아직 부정적이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백신을 접종한다는 건 한국에 언제나 AI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라며 "(중국 등에서)AI 바이러스 변이가 심한데 어느 한 종류의 백신을 들여오면 변이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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