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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미라 우대·국내 미라 박대"…'화장·매장 위기' 韓미라들

세계 유일 사례인데…여러차례 논란에도 변화 없어
관련법·보관시설 없어…1차 연구 끝나면 방치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21-02-23 07:08 송고 | 2021-02-23 09:10 최종수정
김한겸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학교실 교수가 지난 2002년 발견된 '파평 윤씨 모자 미라'를 내려다 보고 있다.(김한겸 교수 제공)© 뉴스1
김한겸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학교실 교수가 지난 2002년 발견된 '파평 윤씨 모자 미라'를 내려다 보고 있다.(김한겸 교수 제공)© 뉴스1

"이 연구를 통해서 한국의 '미라학'이라는 것이 생기게 됐고 12구의 미라를 만나게 됐습니다. 현재 8분을 학교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제가 나가기 전에 이분들을 잘 정리하고자 했는데 현재 학교 박물관과 갈등이 있어서 약간 지체가 되고 있습니다."
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김한겸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학교실 교수는 지난 15일 열린 정년퇴임 기념 강연에서 못내 아쉬운 감정을 내비쳤다. 그간 연구하고 보관해오던 미라들이 그의 퇴임과 함께 갈 곳을 잃을 위기에 놓였지만 후속 방안이 전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미라 연구의 권위자인 김 교수는 2002년 세계 최초의 임산부 미라인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의 부검작업을 지휘하는 등 국내에서 발견된 여러 미라를 연구해왔다. 그는 후속 연구의 필요성 등을 들며 수년전부터 정부가 나서 미라를 보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해왔지만 끝내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교수는 자신이 은퇴를 하면 현재 고려대 병원 부검실에 보관하고 있는 8구의 미라가 화장이 되거나 다시 매장될 수 있다며 "한스럽고 애가 탄다"라고 말했다. 이미 여러 차례 미라의 보관 문제를 지적했던 그는 "그냥 알아서 하라고 두고 그냥 가버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파평 윤씨 모자 미라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미라학'의 초석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파평 윤씨 미라의 경우 세계 최초로 발견된 '임산부 미라'로 분만을 앞두고 사망해 미라가 된 세계 유일의 사례다. 2002년 발견 이후 파평 윤씨 문중의 기증으로 연구가 이뤄졌지만 문중은 최근 김 교수에게 은퇴하면 기증했던 미라를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김 교수는 국립 박물관에서 보관·연구를 하게 되면 문중도 이해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문화재청은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난감하다는 답변을 보냈다. 개인이 운영하는 한 박물관 측에 협의를 구해 그쪽에 보관을 하려고 했지만 파평 윤씨 미라를 기증을 받은 주체인 고려대 박물관 측에서 "다른 곳에 보낼 수 없다"는 의견을 내면서 이 또한 불가능하게 됐다.

파평 윤씨 미라의 행방이 결정되지 못하면서 나머지 7개 미라도 갈 곳을 잃었다. 김 교수는 현재 미라를 보관하고 있는 고려대 병원 쪽에 향후 보관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병원 측이 외부의 시선 때문에 당장에 미라들을 매장·화장하지는 못하겠지만 여론의 관심이 줄어들면 방치되다 버려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병원 측 관계자는 "보관하는 것 이외의 어떤 이야기도 논의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북부도시 볼차노의 유로피언 아카데미 과학자들이 지난 2010년 11월8일(현지시간) 티롤 빙하시대 상태로 완벽하게 보존된 미라인 아이스맨 외치의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탈리아 북부도시 볼차노의 유로피언 아카데미 과학자들이 지난 2010년 11월8일(현지시간) 티롤 빙하시대 상태로 완벽하게 보존된 미라인 아이스맨 외치의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런 상황에 대비해 김 교수는 여러해 전부터 정부가 미라를 보관·연구하기 위한 시설을 만들고 관련 법규를 만들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재 국내에는 연구·보관하는 전문적인 시설이 없어 연구자들이 미라를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으며 관련법도 없어 미라는 문화재로서의 지위도 얻지 못하고 있다.

그저 '오래된 시신'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국내에서 미라는 대부분 1차적인 연구를 마치고 화장되거나 매장된다. 문화재청이 1998년부터 2017년까지 파악한 미라 59구 중 24구가 다시 매장되거나 화장됐다.지난 2017년에도 유전자 분석을 통해 동맥경화로 인한 사인이 규명된 17세기 여성 미라(진성이낭)가 연구가 종료된 이후 화장됐다.

2017년 진성이낭 미라의 화장으로 언론에서도 문제가 제기됐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도 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한국과 달리 해외의 경우 체계적으로 미라는 보존하고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탈리아 북부에서 발견된 미라인 일명 아이스맨 '외치'(Otzi)다.1991년 외치의 발견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유럽아카데미 미라 및 아이스맨 연구소’(EURAC)에서 현재까지도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연구진은 5300년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외치의 의복과 도구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추측해 냈으며 DNA 분석을 통해 현대인의 흡사한 유전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미라는 병의 원인과 발생 경과 및 변화를 연구하는 병리학의 차원에서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된다. 미라는 과거의 자신이 앓았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외치의 경우 DNA 분석을 통해 심혈관계 질환과 관련된 유전적 소질을 가지고 있던 사실이 확인됐다. 또 외치가 우유를 흡수,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있었으며 보렐리아균에 감염됐던 사실도 발견됐다.

김 교수도 지난 2018년 미라 연구를 통해 조선 시대 미라에서 폐흡충(포유류의 폐의 기생하는 기생충)을 발견했다. 2016년 경기 의정부시에서 발견된 이 미라의 왼쪽 폐에서는 수많은 폐흡충의 성충과 알이 발견됐다.

이 발견을 근거로 김 교수는 '폐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시대 왕들이 사실은 폐기생충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내놨다. 당시 왕들이 영양면에서 부족한 면이 없었음에도 각혈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역사학계에서는 '결핵'이라고 추정하는데 오히려 기생충에 감염됐다는 쪽이 과학적으로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같이 김 교수는 미라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결과를 발표했음에도 지금까지 자신이 발견한 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외국처럼 계속해 연구진들의 후속 연구를 진행해 밝혀야 할 비밀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퇴임을 목전에 두는 상황에서도 미라들을 보관할 곳을 계속해 찾아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16년 12월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집트 문명을 소개하는 특별전 '이집트 보물전-이집트 미라 한국에 오다' 언론공개회가 열리고 있다. 2016.12.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지난 2016년 12월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집트 문명을 소개하는 특별전 '이집트 보물전-이집트 미라 한국에 오다' 언론공개회가 열리고 있다. 2016.12.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보존의 필요성이 있는 미라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제가 보관하고 있는 8구 중 2구의 경우 화장터까지 갔었는데 거기서 근무하시던 분들이 이상하게 여겨 보내준 것이다. 화장터에 있던 분들도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아준 것인데 감히 버릴 수가 있겠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외국의 경우 미라의 반출이 국가 간의 논쟁거리가 될 정도로 유산으로 생각하고 지키려고 한다"라며 미라의 옷이나 같이 매장된 문화재는 전부 가져가 복원을 하고 전시를 하는데 정작 그 주인인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은 생물학적인 역사에 대한 이해가 낮음에서 오는 결과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국립박물관 같은 곳에서 이집트 미라를 모셔오지 못해 안달인데 국내 미라를 박대하는지 모르겠다"라며 국내에서 발견된 미라가 문화재로 대접을 못 받고 계속해 사라지는 상황에서 국립 박물관들이 외국 미라들을 전시하는 것은 '사대주의'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한편, 현재 2017년 미라를 문화재로 규정하기 위한 법 개정 논의가 있을 당시 문화재청은 반대 의견을 냈다. 미라를 문화재로 정의하기 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시체이다 보니 윤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골을 매장 문화재로 포함하는 것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가끔 고고학계에서 관련 문제가 논의되기는 하지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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