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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골프회원권 넘겨줄게' 29억 챙기고 16년간 해외 도피

피해자만 22명, 범행 후 자취 감춰…재판만 2년4개월
1심 "피해자 경제적·심적 고통 가중"…징역 5년 선고

(서울=뉴스1) 온다예 기자 | 2021-02-21 06:00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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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회원권 매도하려는 사람이 있으니 5510만원만 주면 명의개서(권리자의 변경에 따라 명의인 표시를 변경하는 것)를 해주겠다"

2001년 4월 서울 모처의 한 사무실, 골프회원권 거래소를 운영하던 이모씨(현 52세)는 고객인 A씨에게 돈을 주면 회원권을 넘기겠다고 속이고 회사 명의 은행 계좌를 통해 현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씨는 그 대금으로 다른 계약자에게 판매할 회원금을 매입하는 등 이른바 '돌려막기'를 할 속셈이었고 회원권을 양도받지 못한 A씨는 5000만원이 넘는 사기 피해를 당했다.

2001년 4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이렇게 이씨가 1년여간 고객을 상대로 가로챈 금액만 29억원 상당에 달했다. 한 사람당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사기 피해를 입었고 피해자는 22명에 이르렀다.

이씨는 피해자들이 계약이 지연되는 이유를 묻거나 계약이행을 독촉하면 계약 상대방이 '이사를 갔다' '병원에 입원했다' '회원증을 분실했다' 등 갖가지 변명이나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끌었다.

피해자들로부터 받는 계약이행에 대한 압박이 커지자 이씨는 결국 2002년 5월 해외로 도주했다. 이씨가 도주할 무렵 회사는 부도가 났고 피해를 입은 고객들은 이씨가 자취를 감춘 16년여간, 사기당한 돈을 찾지 못해 속앓이를 했다.

이씨가 재판에 넘겨진 건 2018년 10월이었다. 2년4개월여간 이어진 법적 공방에서 이씨는 "편취의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회원권 가격이 급등해서 회사 돈을 보태 회원권을 매수해 주는 과정에서 자금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허선아)는 지난 5일 열린 1심 선고기일에서 이씨의 사기·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골프회원권 중개회사의 기본적인 거래 구조에 주목했다. 통상 중개회사는 특정 회원권의 매수자, 매도자를 찾아내 매수대금과 명의이전 서류를 양쪽에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중개회사는 일정한 중개수수료를 양 당사자에게 받는다.

이씨는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서까지 각 계약 성사 이전 매수자와 매도자는 모두 확보돼 있었다고 주장해 왔지만 실제 이행된 계약은 없었다.

매수의뢰인은 매수대금 전액을 지급했는데도 회원권을 받지 못했고 매도 의뢰인은 명의이전 서류를 이씨에게 전달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했다.  

재판부는 "만일 실제로 매도자와 매수자가 사전에 확보돼 있었고 매수대금과 회원금이 계약 당사자들에게 정확히 전달됐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미리 전달받은 매수대금 혹은 회원권 판매대금을 수령 직후 다른 곳에 유용했음을 추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씨는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부터 '돌려막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다.

또 이씨는 회사에 약 20억원 규모의 적자가 발생해 계약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거래 내역 등을 봐도 20억원 규모의 적자가 발생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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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돌려막기식으로 대금을 유용한 것은 그 자체로 계약 당사자들인 피해자들에 대한 기망행위로 볼 수 있다"며 "범행 방법이나 횟수, 기간 등에 비춰 그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편취액의 합계액이 약 29억원에 이르러 엄한 처벌은 불가피하다"며 "범행 직후 해외로 도피해 16년여간 행방을 감춰 피해자들의 경제적, 심적 고통은 더 가중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22명의 피해자 중 일부 피해자에 대해선 피해금액을 변제하고 합의한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양형에 고려한다고 밝혔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과 이씨는 쌍방 항소했다.


hahaha828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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