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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선택 암시는 "살고 싶다"는 뜻…'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극단선택 끝내자]⑦10명 중 9명 '경고신호' 보내
'주저하고 있다' 신호…"신속한 대처로 구조해야"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이승환 기자, 원태성 기자 | 2021-02-09 06:30 송고 | 2021-02-09 09:54 최종수정
편집자주 모든 1등이 영예로운 건 아니다.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자살은 '막는 것' 밖에 대책이 없다. 2019년 극단 선택으로 1만3799명이 숨졌다. 하루 평균 37.7명이다. <뉴스1>은 자살시도자나 충동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흔적을 추적하고 유가족·상담사·복지사·학계 전문가 등을 취재해 관련 사례를 분석했다. 자살 예방을 위한 최선의 대책이 무엇인지 총 9회에 걸쳐 보도한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극단선택 충동을 느끼는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거나 가족과 지인에게 문자를 보낸다.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호소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마음의 준비를 이미 끝냈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런 메시지를 올린 배경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요컨대 '살고 싶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직 미련과 애착이 남아 주저하는 순간을 골든타임으로 해석해 신속한 구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 한 쪽에 남은 미련"

9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발간한 '2019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극단선택 시도자·충동자의 93.4%가 실행 전 '경고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고신호란 자살 의도를 드러내는 징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언어적 경고 신호'다. 극단선택 충동자들이 절망과 죄책감을 표현한 글도 해당한다.

젊은 세대는 SNS에 글을 올리고 중장년층은 가족과 지인에게 휴대전화 문자를 보낸다. 경고신호가 거기 숨어 있다. 그 신호를 감지한 순간이 골든타임이라 할 수 있다. 골든타임이란 인명을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의미한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주변 사람이 극단선택 직전에 연락하면 죽고 싶은 마음과 가슴 한 쪽에 남은 살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는 것"이라며 "이들이 주저하는 동안 경찰과 소방이 출동해 구출할 수 있는데 그게 골든타임"이라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인 10일 서울 한강대교에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설치한 SOS 생명의 전화가 설치돼 있다. .9.1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인 10일 서울 한강대교에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설치한 SOS 생명의 전화가 설치돼 있다. .9.1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주저하기 마련"이라며 "SNS에 글을 남기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 극단선택을 암시하는 건 '혹시라도 나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김 소장은 "달리 말하면 마지막 구조 신호"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이란 단어 보고 실제상황 직감"

지난달 8일 황금산 대전교통방송 라디오 PD(57)의 대응은 골든타임을 살린 모범 사례로 꼽힌다. 

황 PD가 이날 밤 10시16분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50대 남성 A씨의 문자가 왔다.

황금산 PD는 처음엔 고된 일상을 토로하는 흔한 사연이라고 생각했다가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신청곡 '홀리데이'는 지난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서울 서대문구의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하다 극단선택을 하기 전에 경찰에게 틀어달라고 한 노래로 알려져 있다. 

황 PD가 곧바로 전화했으나 A씨는 받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직감한 그는 휴대전화로 '30분 후에 틀어 주겠다' '우리 방송과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문자를 A씨에게 보내 시간을 끌었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선산 주차장에서 자해 중인 A씨를 발견했다.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받던 그는 회복 후 "사는 게 더 좋다"며 "바보 같은 생각 두번 다시 안하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고 황 PD는 전했다. 

황 PD는 "A씨의 목적이 단순히 신청곡을 듣는 것이었다면 나의 전화를 받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 '실제 상황'임을 알게 됐다"며 "그의 문자가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호소하는 글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안일한 인식 개선 필요성

문제는 황 PD 사례와 달리 극단선택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설마 진짜로 극단선택을 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의 '2020년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2018년 기준으로 '자살에 대한 인식 부족 점수와 항목별 동의율'을 분석한 결과 '극단선택을 한다고 위협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실행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인식에 45.5%가 동의했다. 

'극단선택은 아무런 경고 없이 발생한다'는데 동의한 비율도 42.9%에 달한다. 이 조사는 표본을 추출해 진행됐으며 만19세 이상 75세 이하 성인 1500명이 참여했다.

2013년과 비교해 이런 인식은 다소 개선됐으나 여전히 심각성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향희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사회복지사는 "치명적인 방법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를 제외하면 신속한 대처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며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소속 자살예방센터의 출동 매뉴얼도 더 쉽고 빨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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