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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모든 게 끝" 잘못된 생각…유족은 '더 긴 고통터널'

[극단선택 끝내자]⑥유족들 일반인보다 9배 더 위험
가족 잃은 아픔 딛고 '생애위기' 상담 나선 허희라씨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1-02-08 06:30 송고 | 2021-02-16 16:58 최종수정
편집자주 모든 1등이 영예로운 건 아니다.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자살은 '막는 것' 밖에 대책이 없다. 2019년 극단 선택으로 1만3799명이 숨졌다. 하루 평균 37.7명이다. <뉴스1>은 자살시도자나 충동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흔적을 추적하고 유가족·상담사·복지사·학계 전문가 등을 취재해 관련 사례를 분석했다. 자살 예방을 위한 최선의 대책이 무엇인지 총 9회에 걸쳐 보도한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남겨진 사람에겐 고통이 시작된다. 소중한 사람의 극단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상처뿐인 마음을 더욱 짓누른다. 

자살유족의 극단 시도 위험은 일반인보다 8~9배 높다. 자살유족이란 가족과 친구, 동료 등 고인 주변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자살유족은 '생존자'로도 불린다.

◇"유족에게 필요한 건 들어줄 사람"

한국 '생명의 전화' 생애위기 상담사 허희라씨(50)는 극단선택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다. 그는 유족을 비롯한 극단선택 충동자를 상대로 '텔레 케어'를 한다. 자살 예방 전화 상담이다. 더 정확하게는, 상처에 신음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유족 등을 위로하며 '골든타임'을 잡는다.

"저 역시 너무 힘들어 극단선택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자살위기 예방센터 '생명의 전화' 유가족 힐링(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심리적으로 회복되면서 극단선택 문제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관련 교육을 이수해 상담사 자격을 취득하고 회복 기간을 거친 뒤 '텔레 케어'를 하고 있습니다."

허씨는 지난 7일 <뉴스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주일 두 차례 자살예방 상담을 한다고 한다. 하루 근무 시간은 오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총 15시간이다.

서울 한강 교량 20곳에 설치된 전화기 74대에서 극단선택을 암시하는 목소리가 '생애위기 상담사' 허씨에게 들려온다. 한파와 폭설로 얼어붙은 지난달에도 하루 3~4건씩 전화벨이 울렸다. 

허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극단선택 충동을 느끼거나 실제로 시도하는 20대 청춘이 부쩍 늘었다"며 "집에만 있다가 우울증이 더 나빠지면서 극단선택을 시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라며 우려했다.

허씨는 유족들을 대상으로 개인 상담과 집단 상담도 한다. 성북구 월곡1동에 있는 한국 생명의 전화 자살 유가족 지원센터에서 매달 한 번씩 유족 모임을 갖고 지원 활동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인 10일 서울 한강대교에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설치한 SOS 생명의 전화가 설치돼 있다.. 2020.9.1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모임에는 10여명이 참석한다. 슬픔과 슬픔이 만나면 서로를 보듬는 위로가 된다.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흉터를 지우고 있다. 허씨는 유족들이 미술 치료 받는 과정을 담은 책 '그리는 밤'을 그들과 함께 제작했다.

유족들과의 대화는 허씨에게 '그때' 그 기억을 부른다. 허씨는 그들에게 '들어줄 사람'이 간절하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떤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유족들의 얘기를 들어주면 충분히 위로가 됩니다. 유족들은 이미 저의 말투에서 '마음의 느낌'을 받아요. 진심 어린 마음의 느낌은 유족에게 참된 위로가 됩니다. 호기심 섞인 질문을 던지거나 섣부른 판단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자칫 끔찍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어요."

◇지난 10년간 유족 최소 '71만명'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자살 유족은 6만8995명~13만7990명으로 추산된다. 10년 누적으론 최소 71만명이다. 극단선택 사망 1건이 발생할 때마다 자살유족 5~10명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유족의 극단 선택 위험은 일반인보다 최대 9배 높다.

허씨의 역할은 들어주는 것만이 아니다. 전화 상담을 할 때 극단선택 징후도 감지해야 한다. 대화가 잘 통한다며 안심하고 있다가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골든타임이란 인명을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허씨는 "상담 업무는 신속한 판단이 요구되는 일"이라며 "119 신고를 늘 염두에 두고 심상치 않은 상황이 감지되면 상담실에 설치된 '신고' 버튼을 즉시 눌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방과 경찰 등 유관기관 직원들이 신고 5분 안에 출동한다"며 "골든타임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유족들은 캄캄한 터널에서 벗어나길 희망한다. 터널 끝 희미한 빛을 따라 세상 속으로 다시 스며들려고 한다. 허씨는 어떻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을까. 

© 뉴스1

"힘들 때, 너무 아플 때, 자신을 그저 지켜보길 권합니다.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고 억지로 애쓰면 오히려 에너지를 모두 소진합니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마음가짐으로 그저 받아들여야 해요."

허씨는 "가족을 떠나보낸 큰 아픔을 이겨내면 작은 어려움이 닥쳐도 별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유족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극단선택을 국가적 문제로 이해하는 선진국과 달리 '개인의 책임'이라는 시선이 한국 사회에 여전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현실도 고통스러운데, 남은 사람은 낙인까지 감내해야 한다.

허씨는 익명 보도를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가 지난 7일 밤 기자에게 다시 연락해 '실명'으로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익명 인터뷰는 다른 유가족에게 부끄러움을 줄 것만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 신념과도 모순됩니다. 유족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실명으로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일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아니 우리는 극단선택 사망자와 그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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