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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회장' 정주영부터 '막내' 정상영까지…막 내린 현대家 창업 1세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 등 6남1녀 모두 별세, 2세대 이어 3세대로 경영승계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2021-01-31 20:15 송고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News1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News1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지난 30일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영'(永)자 항렬을 쓰는 현대가 창업 1세대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정상영 명예회장은 6남1녀의 막내로, 맏이였던 정주영 회장과는 21살의 나이 차가 났다. 정상영 회장은 오늘날 현대가(家) 신화를 일군 창업주 정주영 회장을 평소 아버지처럼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과의 사이에 다른 형제로는 1920년생인 2남 고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1922년생 3남 고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 1925년생 장녀 고 정희영 한국프랜지 명예회장, 1928년생인 4남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1931년생인 5남 고 정신영 동아일보 기자가 있는데, 정주영 회장은 이들 모두를 아버지처럼 챙겼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에서 아버지 정봉식씨와 어머나 한성실씨 사이에서 태어난 정주영 회장은 19살의 나이에 가출한 뒤 자신이 일해 온 쌀가게를 인수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 1950년 현대건설 등을 잇달아 설립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한 정주영 회장은 "이봐 해봤어?"로 상징되는 굽히지 않는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일화를 여럿 남겼다.

1971년 조선소 건립 사업계획서와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을 들고 영국으로 건너간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한국은 400년 전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며 선박 수주를 따냈다. 1984년 천수만 방조제 공사 때는 유속이 빨라 공사가 난항을 겪자 322m의 고철 유조선으로 물막이를 만들고 공사를 완수하며 이른바 '정주영 공법'을 선보였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한 정주영 회장은 말년에는 남북 간 경제교류에 관심을 가져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에 열의를 보였고, 1998년 직접 소 떼를 몰고 방북하기도 했다.

2001년 별세하기 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그룹이 쪼개졌지만, 그는 이른바 '왕회장'으로 불리며 현대가 사람들의 존경받고 있다.
고 정인영 한라그룹 창업 회장.(한라그룹 제공)© 뉴스1

정주영 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1951년 현대상운 전무, 1953년 현대건설 부사장, 1962년 현대양행, 만도기계 등을 설립하며 오늘날 한라그룹의 기반을 다졌다. 1978년 한라시멘트, 1980년 한라건설을 설립한 그는 1984년 한라그룹 회장에 올랐으며, 2006년 별세했다.

3남인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은 1969년 현대건설에서 분리된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독립해 성우그룹을 일궜다. 1995년 성우리조트를 건설하며 종합레저사업에 열의를 보였던 그는 2000년 현대시멘트 명예회장에서 물러난 뒤, 2005년 10월 별세했다.

4남 정세영 명예회장은 오늘날 현대차그룹의 기반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1967년 현대자동차가 설립될 때 초대 사장에 취임했다. 1974년 한국 최초 고유모델 승용차인 현대 포니를 개발하고, 1976년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포니를 세계시장에 수출하면서 '포니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99년 장조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에 자동차 사업을 넘긴 뒤에는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으로 활동했다. 2005년 5월 별세한 정세영 회장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정몽규 HDC 회장은 '포니정재단'을 세워 장학 사업을 하는 한편, 연구자를 후원하고 있다.

2015년 5월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타계 10주기 추모식에서 한 참석자가 추모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2015.5.2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2015년 5월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타계 10주기 추모식에서 한 참석자가 추모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2015.5.2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고인의 유일한 여동생인 정희영 한국프랜지 명예회장은 2015년 별세했고, 5남 정신영씨는 30대 초반인 1962년 독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1세대 중 마지막으로 전날 별세한 정상영 KCC명예회장은 22살 때인 1958년 8월 KCC 전신인 스레이트 제조 회사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했다.

1974년에는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사업에 진출했으며,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에는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 2005년에 금강고려화학㈜을 ㈜KCC로 사명을 변경해 건자재에서 실리콘, 첨단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첨단소재 화학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고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 뉴스1
현대가의 기업들은 '몽'(夢) 자를 쓰는 2세대에 이어 '선'(宣) 자를 쓰는 3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정주영 회장의 장남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지난해 10월 아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고,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2006년 건강상의 이유로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을 장남 정지선 회장과 차남 정교선 부회장에게 맡겼다.

정주영 회장의 6남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이끌던 현대중공업은 그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이끌어가고 있다.   


ryupd01@new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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