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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찍지 않은 성인영화에 당신 얼굴이 나온다면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2021-01-28 06:30 송고 | 2021-01-28 08:21 최종수정
© 뉴스1 황덕현 기자
© 뉴스1 황덕현 기자

지난해 이맘때까지만 해도 텔레그램 애플리케이션을 좀처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 별의별 이야기가 쌓여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성착취 범죄의 원조 'n번방'과 '박사방' 등을 취재할 때쯤에야 이 '뒤틀린 신세계'(커뮤니티 성격의 텔레그램 채팅방)를 알게 됐다.
1번부터 숫자로 이름 매겨진 처참한 사건 옆에는 얼굴을 빼앗긴 이들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진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 수 있는 '지인 능욕'이 먼저 발견됐고 뒤이어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인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2000년대 데뷔한 여성 연예인의 얼굴부터 2020년말 처음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친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까지. 이들은 얼굴을 도둑맞은 채 성인영화 배우의 몸과 합성돼 괴상한 자세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K-POP을 대표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딥페이크 합성 사진과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린 게 지난해 2020년 3월이다. 

그 뒤 검찰로 송치됐던 '박사' 조주빈을 비롯해 부따 강훈, 이기야 이원호, 갓갓 문형욱, 코태 안승진 그리고 남경읍이 1심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최저 2년(공범)에서 최고 40년까지 선고받았다. 이들을 뒤쫓을 당시 경찰은 "'여성 아이돌 딥페이크' 역시 본청(경찰청) 차원에서 엄정 수사해 처벌할 것"이라면서 의지를 보이는 듯 했다.
1년 여의 시간이 흐른 뒤 딥페이크 이슈가 다시 생각난 것은 여성 가수 아이유와 닮은 중국 인플루언서 '차이유'와 여성 연예인 딥페이크 처벌 국민청원이 올라와서다. 

취재 결과 당시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와 합성영상을 유포하던 텔레그램 채팅방은 폭파된 상태였다. 또다른 유사 채팅방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의 딥페이크 사이트는 여전히 '성행 중'이었다. <뉴스1>이 보도한 뒤 데뷔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새로운 아이돌 그룹 카테고리까지 생겨났다. 끊어도 끊어지지 않고 무한증식한 셈이다(굳이 검색하는 방법과 사이트를 들어가는 요령은 작성하지 않겠다). 

경찰 수사는 어디까지 왔을까. 경찰 관계자는 "현행 법령상 이를 성폭력처벌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만 적용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한 적이 있다. 해당 사이트들은 외국에서 외국인에 의해 운영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수사도 어렵다고 했다.

궁색한 변명으로 들렸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20여개국 수사기관이 공조해 다크 웹에서 전세계적 아동 성폭행을 조장하며 성착취물을 배포한 '웰컴 투 비디오'의 손정우를 붙잡은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수백개의 증거가 눈 앞에 있는데도 왜 쉽게 공조해서 뿌리뽑지 못한다는 것일까. 

그 사이 '여성 연예인들을 고통받게 하는 불법 영상 딥페이크를 강력히 처벌해주세요' 청와대 국민청원이 27일 오후 38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답변 조건을 갖췄다. 청와대나 수사기관 누군가 나서서 답변을 할 테지만 명쾌한 해답이 될까. 지금으로선 어림없어 보인다.

내 얼굴이, 당신 자녀의 얼굴이 찍지 않은 성인영화와 합성돼 온라인상에 돌아다닐 수 있다. 제도와 관련 법이 마련되지 않는 시간을 기술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불어 연예기획사의 강력한 의지와 인식 재고가 필요하다. 지난해 '여성 아이돌 그룹 딥페이크 영상' 보도 당시 해당 연예인이 소속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너무 만연해 있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소속 연예인 딥페이크 영상을 방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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