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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畵音] 하늘, 별, 우주, 새, 그리고 꽃

꽃만 그린 조지아 오키프와 포로수용소에서 작곡한 올리비에 메시앙

(서울=뉴스1)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 2021-01-19 07:00 송고 | 2021-01-20 11:21 최종수정
조지아 오키프 (1887-1986)© 뉴스1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세상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 한 생명이 탄생해서 소멸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버텨야 하는 순간들, 이겨내야 하는 시련들. 인생이란 하나의 꽃이 피고 지듯 그처럼 힘겨우면서도 아름답고 위태로우면서도 고귀한 것이 아닐까.

한 세기 가까이 예술에 모든 인생을 바친 화가가 있다. 꽃과 자연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 그녀의 99년간의 인생은 꽃 같은 것이었다.

조지아 오키프는 1887년 미국 위스콘신 선 프레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열정을 보였던 그녀는 10살에 이미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시카고 예술대학을 거쳐 강사 생활을 하던 중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온다. 그녀의 친구가 당시 사진계의 거장 스티글리츠에게 그녀의 그림을 보여주었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동의 없이 그녀의 그림을 뉴욕 '291갤러리'에 전시한 것.

오키프는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스티글리츠에게 화를 냈지만 이들은 이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23세나 연상이며 유부남이었던 스티글리츠와의 관계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나 사진작가였던 스티글리츠가 그녀의 누드를 찍은 사진으로 전시를 하자 그녀는 '청순한 요부'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조지아 오키프 '하얀 접시꽃과 숫양의 두개골'(1935년작)© 뉴스1
남편을 등에 업고 출세한 화가로 폄하되거나 그녀의 의도와 다르게 작품이 해석되곤 했다. 그림의 주제는 꽃이었다. 꽃을 크게 확대해 거대하게 그려내는 그녀의 그림에서 사람들은 여성의 성기를 보았다. 그녀의 누드와 요부의 이미지 그리고 꽃그림은 그녀를 특정 프레임에 가둬버렸다. 그녀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람들은 풍경화에서 사물들을 왜 실제보다 작게 그리느냐고 묻지 않으면서 내겐 왜 꽃을 실제보다 크게 그리냐고 묻는 것인가."

그녀는 계속해서 꽃 그림을 그렸다. 확대해서 크게 그렸다. 꽃 그림만 200점이 넘는다. 작디작은 꽃. 순간에 꺾여버릴 수 있는 미약함.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곧 지고 마는 숙명. 어쩌면 그녀가 그리고 있었던 것은 세상의 모든 힘없는 존재에 대한 의미였는지 모른다.

"내가 만약 꽃을 거대하게 그려낸다면,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무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 뉴스1
오키프의 꽃에 대한 거대한 탐구를 보고 있으면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이 떠오른다. 억압의 순간에 작곡된 음악이.

메시앙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으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1939년 프랑스군의 가구 운반병으로 입대해 1940년 5월 독일군에게 잡혀 임시 수용소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메시앙은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그리고 클라리네티스트를 만나게 된다.

메시앙이 작곡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독일군 장교는 그가 작곡을 할 수 있도록 악기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지급된 악기가 정상일 리 없었다. 첼로는 줄이 하나 빠져있었고 피아노의 건반은 누르면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 속, 메시앙은 독일과 폴란드 접경 실레지아의 괴를리츠 포로수용소에서 직접 피아노 연주를 맡아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초연했다. 1941년 1월15일, 영하 20도의 날씨에 이뤄진 막사에서의 음악회. 그곳에서 5000명의 포로들과 독일군들은 함께 음악을 들었다.

자유를 박탈당한 순간에 작곡된 음악. 제한적 악기구성. 주어진 요건 안에서의 창작. 박자와 리듬에 제약을 두지 않음으로써 표현하고자 했던 자유.

올리비에 메시앙이 임시 수용소 수감된 시절© 뉴스1
요한 묵시록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8악장으로 돼있다. 8이라는 숫자는 6일간의 천지창조, 7번째 날의 안식일 이후 영원한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기독교적 의미가 깊다. 각각의 악장은 표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중 3악장은 ‘새들의 심연'이라 붙여졌다. 그는 이 악장에 대해 "심연은 지치고 슬픈 시간이다. 새들은 시간의 반대다. 그들은 빛, 별, 무지개, 그리고 기쁜 노래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다"고 썼다.

새소리는 메시앙의 음악에서 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조류학자이기도 한 메시앙은 새의 소리를 그대로 음악에 담았다. 200점이 넘게 그렸던 오키프의 꽃에 대한 탐구처럼 메시앙은 새 소리에 주력했다. 새에 대한 대표곡으로는 '새의 카탈로그'가 있다. 총 13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피아노 독주를 위한 곡으로 연주에 대략 3시간 정도가 걸린다. 프랑스 자연과 새를 묘사하고 있는 이 곡에서 77종에 이르는 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에게 새는 새 이상의 의미였다. 새는 자연과 동일한 것이었고 자연은 곧 신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메시앙은 음악에서 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과 신의 세계를 음악에 담고자 했던 메시앙. 새의 소리는 신의 메시지며 자연은 신의 선물이었던 것이리라.

조지아 오키프 '뮤직 핑크 앤드 블루 Ⅱ' © 뉴스1
메시앙은 공감각의 소유자다. 칸딘스키나 스크리아빈처럼 음악을 보고 들었다. 그는 악보에 자신의 화성에 색깔을 지정해서 표기하기도 했다. 그의 예술세계는 신과 새, 색과 음악,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통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키프 역시 공감각적 작품을 그렸다. '블루 앤드 그린 뮤직', '뮤직 핑크 앤드 블루 Ⅱ'와 같이 색과 음악을 결합한 제목을 붙여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꽃 그림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오키프, 새소리를 통해 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메시앙. 공감각과 더불어 자연에 대한 사랑과 억압에 대한 표출, 그리고 예술에 대한 신념을 작품에 녹아낸 이들.

오키프는 생의 끝을 뉴멕시코의 자연에서 보내게 된다. 시력이 나빠져 유화를 그릴 수 없게 되자 찰흙으로 조소를 할 만큼 끝까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죽음 후에는 자신의 유언대로 한 줌의 흙이 되어 그곳에 남겨졌다. 이후 그녀가 살았던 산타페는 예술 도시가 됐고 그녀의 작품 '흰 독말풀 / 흰 꽃 No.1'은 2014년 소더비경매에서 495억이라는 경매가를 기록했다.

메시앙은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파리 음악원에 교수로 취임, 교육과 작곡 활동을 병행하며 인생을 보냈다. 말년으로 갈수록 기독교를 넘어 신비주의적 작품 성향을 보이다 85세에 사망했다. 그의 작품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칠어진 대부분의 동시대 음악과는 대조되게 서정적이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대변하듯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신을 죽여버린 시대에 신을 찬송했고, 조성을 해체한 시대에 노래를 불렀으며 자연을 파괴해 버린 시대에 새들과 노닌, 한 음악가 여기 잠들다."

메시앙의 음악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를 기리며 묘비 앞에 놓아두었을지 모를 한 송이의 꽃을 떠올려본다.

"손에 꽃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그 순간, 그것은 당신의 세계가 됩니다."(오키프)
노년의 조지아 오키프© 뉴스1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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