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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묻힐 뻔한 박원순 성추행 의혹, 결국 드러났다

법원, 피해자 병원기록 검토 후 "朴 성추행, 틀림없는 사실"
'성폭행 혐의' 전직 비서실 직원 재판에서 의혹 확인돼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2021-01-14 16:34 송고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법원에 의해 확인됐다.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의 영정을 실은 운구차가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법원에 의해 확인됐다.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의 영정을 실은 운구차가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으로 묻힐 뻔한 그의 성추행 의혹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수사기관도 밝히지 못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그의 부하 즉 전 서울시 비서실 직원의 성폭력 사건을 심리했던 법원에 의해 확인됐다.

◇'성추행 고소' 朴, 극단적 선택…경찰 '공소권 없음'

지난해 7월 8일 박 전 시장의 비서였던 A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박 전 시장을 고소했다. 그런데 박 전 시장은 고소 다음날 실종돼 10일 북악산 인근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A씨의 고소사실이 알려지면서 박 전 시장이 성추행 의혹을 감당하기 어려워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A씨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박 전 시장이 A씨에게 즐겁게 일하기 위해 셀카를 찍자며 신체를 밀착했고 무릎에 난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며 무릎에 입술을 접촉했을 뿐 아니라 집무실 내실로 불러 안아달라며 신체접촉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서울시 직원들의 방조 의혹 등을 수사했지만 지난해 12월 박 전 시장의 강제추행 및 성폭력처벌법 위반(통신매체 이용 음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 고소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직원들의 성추행 방조 혐의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판단했다. 다만 A씨 2차 가해와 관련한 15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군인 신분 2명은 군으로 이송했다. 

박 전 시장이 사망해 수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였다.

지난해 12월 김재련 변호사가  서울경찰청 앞에서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2차 가해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0.12.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지난해 12월 김재련 변호사가  서울경찰청 앞에서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2차 가해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0.12.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경찰 발표 다음날 검찰은 박 전 시장 피소사실 유출 의혹 관련 고발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결과에는 박 시장 사망 전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겨있었다.

박 전 시장이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은 지난해 7월 8일이었다.

이날 오후 3시쯤 임순영 전 서울시 젠더특보로부터 "시장님 관련해서 불미스럽거나 안 좋은 이야기가 도는 것 같은데 아시는 것이 있냐"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당시 임 전 특보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달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박 전 시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것 없다"고 했다. 이어진 "4월 사건(피해자가 다른 서울시 직원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건) 이후 피해자와 연락한 사실이 있으시냐"는 임 전 특보의 질문에도 "없다"고 거듭 부정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은 그날 밤 늦게 회의를 소집하고는 임 전 특보 등 측근들에게 "문제될 소지가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회의에서 박 전 시장은 "피해자와 4월 사건 이전에 문자를 주고 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나타났다.

그러나 이 또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에 불가했다. 수사 결과만으로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풀기에 한참 부족했다.

전 서울시 비서실 직원 정모씨가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성폭행 혐의 관련 1차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0.10.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전 서울시 비서실 직원 정모씨가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성폭행 혐의 관련 1차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0.10.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법원 "박원순 성추행으로 정신적 고통, 틀림없는 사실"

의혹을 사실로 확인한 것은 수사기관이 아닌 법원이었다. 그것도 앞서 언급한 4월 사건 즉 전 서울시 비서실 직원의 성폭행 사건 1심 재판에서였다.

비서실 직원 정모씨는 총선 전날인 지난해 4월 14일 밤 동료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진 후 여성직원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해당 직원은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을 받았다고 주장한 A씨였다.

정씨는 강제추행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강간 혐의는 부인했다. 또 A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은 것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제3자 즉 박 전 시장의 성추행 때문이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정씨가 A씨의 병원 진료기록과 상담기록들을 봐야 한다며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해 해당 자료들이 재판부로 왔다. 이 기록에 A씨가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A씨의 PTSD가 정씨 때문인지 박 전 시장 때문인지 확인하려면 재판부로서도 A씨의 병원 기록을 꼼꼼히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부는 14일 정씨의 1심 선고에서 A씨의 진술을 토대로 "A씨가 박 전 시장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A씨 진술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A씨가 비서실에 근무한 지 1년6개월 이후부터 야한 내용의 문자와 속옷 사진을 보냈다. 또 '냄새 맡고 싶다' '몸매 좋다' '사진 보내달라'는 문자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다른 부서로 이동했지만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은 멈추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은 '남자에 대해 모른다' '남자 알아야 시집 갈 수 있다' '섹스를 알려주겠다'는 문자를 A씨에게 보냈다.

다만 법원은 A씨의 PTSD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이 아닌 정씨의 범행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서 정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결론적으로 정씨의 주장 때문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드러날 수 있었다.


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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