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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이중섭의 소, 헤밍웨이의 소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1-01-14 12:00 송고 | 2021-01-14 16:35 최종수정
이중섭
이중섭

신축년(辛丑年)이다. 흰 소의 해.
소를 뜻하는 축(丑) 앞에 천간(天干) 중 여덟 번째, 흰색에 해당하는 신(辛)이 붙어 하얀 소가 됐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새해 첫날부터 지금까지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중이다. 또 구정이 오면 스마트폰으로 비슷한 설날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다른 동물도 아닌 친근한 소의 해이다 보니 SNS에서 다양한 소의 이미지가 유통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소 그림이 이중섭의 '흰 소'였다.

신문에서는 신년특집으로 소와 관련된 다양한 읽을거리가 일러스트와 함께 실렸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재산 목록 1호였고 부와 풍요의 상징이었다. 느린 걸음, 큰 몸짓, 우직함, 근면, 자기 희생···.  

소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이미지다. 소와 관련된 속담은 또 얼마나 많은가. '소귀에 경 읽기' '소 뒷걸음에 쥐 잡는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동물 중에서 소만큼 시인이 사랑한 소재가 또 있을까 싶다. 김종삼은 '묵화'(墨畫)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물 먹는 소 목덜미 위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 함께 지냈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   
 
소는 고향과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다. 소 울음소리는 밥 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는 고향 마을을 떠올린다. 꿈결처럼 아득한 고향 마을의 풍경을 서정적이면서 애잔하게 그린 시가 정지용(1902~1950)의 '향수'다. 그 첫 번째 연에 황소가 등장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에들 잊힐리야···
 
이렇게 시작되는 '향수'는 정지용이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다니면서 쓴 시다. '향수'는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김희갑이 곡을 붙이고 박인수·이동원이 노래를 불러 3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우리들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시는 음악과 미술에 깊은 영향을 미치곤 한다. 열아홉에 소설로 등단한 백석(1912~1996)이 처녀 시집 '사슴'을 출간한 게 1936년 1월.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중 백석은 자비로 시 33편을 골라 시집을 냈다. 시집 '사슴'의 출간은 한국 시문학사의 중대 사건이다. 정지용, 김기림, 박용철, 이효석과 같은 당대의 문인들이 '사슴'을 극찬했다. 서울과 평양의 문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백석을 화제로 삼았다. 지식인 사회에서 백석 신드롬이 거세게 일었다.

시인을 가슴에 품고 있던 열아홉 살 윤동주(1917~1945)는 만주 용정에서 시집 '사슴'을 구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도저히 구할 수 없게 되자 필사(筆寫)를 결심한다. 책을 한 페이지라도 필사해 본 사람이면 안다. 필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통의 정성과 인내로는 어림도 없다. 시 33편을 필사해 만든 시집을 윤동주는 읽고 또 읽었다.    

1~4부로 편집된 '사슴'은 고향 예찬이다. 평안도 사투리를 과감하게 시어로 선택했다. 1부의 주제는 '얼룩소 새끼의 영각'이다. '영각'은 소가 길게 우는 소리를 뜻한다. 1부에 '가즈랑집' '여우난골족' '고방' '모닥불' '고야' '오리 망아지 토끼' 등 6편이 실렸다.. 송아지가 자라 어미 소가 되면서 고향을 떠난다는 메시지를 닮았다.

이중섭의 '흰 소'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이중섭의 '흰 소'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백석의 오산고보 4년 후배인 이중섭(1916~1956)도 '사슴'을 읽고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다. 이중섭은 오산고보 시절 미술 교사 임용련으로부터 미술을 배웠다. 임용련은 미술 시간에 학생들에게 향토적인 주제 의식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이즈음부터 이중섭의 그림에 소가 등장한다.

이중섭 하면 누구나 소를 떠올린다. 이중섭의 소 그림은 현재 25점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소 그림 3점이 '흰 소' '황소' '떠받으려는 소'이다. 그는 왜 소에 천착했을까.

이중섭 연구자들은 그가 식민지 시대 일제의 압박에도 우직하게 살아내는 우리 민족을 소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또한 소는 화가의 분신이기도 했다.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쓴 엽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 외롭구려.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안간힘을 다해 작품을 그리고 있소.'

최근에는 여기에 한 가지 해석이 더 추가되었다. 잃어버린 고향의 상징적 이미지를 소에 담았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 어렴풋하게 생각하던 소가 그의 정신세계에 단단하게 똬리를 틀게 된 것은 백석의 '사슴'을 읽고 난 뒤라는 해석이다. 같은 평안도 출신이어서 평안도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산고보 선배 백석의 시집은 그에게 고향의 의미를 일깨웠다는 것이다.

시인 고은은 '이중섭 평전'에서 "이중섭이 일생 동안 본 소는 우시장의 장꾼들이 본 소보다 많았을 것"이라고 썼다. 이중섭은 원산 시절 여러 날을 해가 저물도록 어느 집 소를 지켜보다 소도둑으로 몰린 일도 있었다.

이중섭은 6·25전쟁 때 북한에서 월남해 가난과 궁핍 속에서 대구, 통영, 부산, 제주도를 떠돌았다. 죽을 때까지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고 아내와 아이들과도 헤어져 있었다. 그랬으니 더더욱 고향의 상징인 소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스페인 알타미라동굴 벽화중의 '상처 입은 들소' 그림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스페인 알타미라동굴 벽화중의 '상처 입은 들소' 그림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주인공?

인류의 삶에서 소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인류는 그런 소를 오랜 세월 그려왔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소 그림은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 등장한다. '상처 입은 들소'.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구석기시대에 그려졌다. 구석기시대 인류에게 소가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미뤄 짐작게 한다.

현대 화가 중에서 소를 많이 그린 사람이 파블로 피카소(1881~1973)다. '투우의 나라'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945년에 소 연작(聯作) 11점을 남겼다. 사실화로 시작해 점차 선이 단순해지는 추상화로 변해간다. 그러나 피카소의 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중섭의 소 그림들과는 어딘가 느낌이 다르다. 우직함이나 자기희생 같은 '일 소'의 상징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어릴 적 소를 '일 소'보다 '싸우는 소'로 먼저 만나서일까.    

투우하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작가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다. 그는 파리 못지않게 스페인을 사랑했다. 투우와 엔시에로의 나라 스페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몰이를 뜻하는 엔시에로(encierro)는 TV에도 자주 소개되었고 유튜브에도 동영상이 많다. 매년 7월에 벌어지는 '산 페르민'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엔시에로다. 주최 측은 매일 황소 10여 마리를 잔뜩 성을 내게 만들어 놓은 다음 언덕길 위에서 풀어놓는다. 하얀색 옷에 빨간 머플러를 매단 사람들이 황소들에 쫓겨 골목길을 죽어라 내달린다.

소에게 받힐 것 같으면 잽싸게 집 벽에 붙는다. 골목길 발코니마다 미친 질주를 직관하러 온 사람들로 빼곡하다. 쓰러지고, 밟히고, 소뿔에 받힌다. 기성과 탄성이 골목길을 가득 메운다. 죽음 따윈 두렵지 않다는 마초들의 축제다. 질주를 끝낸 황소들을 기다리는 것은 둥근 투우장. 이제는 투우사들과의 한판 승부. 헤밍웨이는 1932년에 발표한 소설 '오후의 죽음'에서 투우와 엔시에로 이야기를 자세히 묘사했다.

1963년 3월, 독일 소도시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 이곳에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장 바닥에 텔레비전 13대를 깔아놓고 여러 가지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세계 미술사상 최초의 미디어아트 전시였다. 그러나 독일 기자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은 미디어아트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기상천외한 전시의 주인공은 서른한 살의 한국 아티스트 백남준. 그는 시대를 앞선 예술이 대중의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작가는 충격적인 방법을 쓰기로 한다. 전시장 입구에 도살장에서 구해온 피 묻은 황소 머리를 걸어놓았다. 엽기적 전시! 전시회에 온 사람들은 구역질과 함께 욕을 쏟아냈다.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서 온 어떤 동양인의 전시회는 화제가 되었고, 결국 언론도 이를 다뤘다. 세계 최초의 미디어아트 전시회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 공신이 황소 머리였다.  
월스트리트의 명물로 자리 잡은 '돌진하는 황소'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월스트리트의 명물로 자리 잡은 '돌진하는 황소'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 앞에는 거대한 황금색 황소가 놓여 있다. 월가(街)의 비공식적 마스코트다. 여행객들은 누구나 이 황소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관광 시즌에는 사람이 하도 많아 온전히 소를 감상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이 황소는 정면을 보며 반듯하게 서 있는 자세가 아니다. 몸이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채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다. 꼬리도 바짝 세웠다. 질주하다 방향을 살짝 트는 것 같다. 시칠리아 조각가 디모디카의 작품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다.

"두두두~ 두두두~" 굉음이 들리는 것 같다. 황소는 지금 콧김을 뿜으며 미래로 돌진하는 중이다.


auth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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