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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人사이트] 젊음이여 황당무계하게 살아라…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행동하는 철학자 최진석 교수…"버릇없어야 창의성 발휘"
큰 기업 경영자는 인문적 시선이 높은 사람들, 잡스처럼

(서울=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 2021-01-10 06:30 송고 | 2021-02-03 12:08 최종수정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뉴스1과 인터뷰하면서 포즈를 잡았다.2021.1.6©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뉴스1과 인터뷰하면서 포즈를 잡았다.2021.1.6©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테스 형~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목 놓아 불러도 누구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코로나로 벼랑에 몰리고 있다. 인류가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살아나 이 세상을 본다면 과연 답을 해줄까? 이럴 땐 죽은 철학자가 아닌 살아있는 철학자를 만나 이야기해 보자. 혹시 그 철학자가 세상이 왜 이런지, 힘든 삶을 해결할 방안을 줄 수도 있으니까.
최진석(62)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인문학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로 이름이 나있다. 어려운 철학이나, 노자, 장자의 사상과 삶도 그를 통하면 누구에게나 쉽게 스며든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인간이 그리는 무늬> <경계에 흐르다> 같은 그의 책들은 인문학 베스트 셀러로 생각하는 방법과 사유하는 수준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향 함평으로 돌아가 ‘호접몽가’라는 공간을 갖추고 ‘새말새몸짓 기본학교’라는 학당을 지어놓고 젊은이들에게 철학을 강의하던 최 교수가 최근 정부의 5·18 민주화운동 역사 왜곡특별법을 비판하는 시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현실문제에 깊이 파고들었다. 지난 6일 오후, 마침 서울 강남 사무실에 온 그를 만난 것은 굳이 그의 사회 참여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평소 그의 책을 읽고, 유튜브 강연을 통해 공감하고 무릎을 친 그 나름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팬심’의 발로였다.

◇자신을 죽이는 것이 황홀한 삶의 시작…철학적 시선 높아야 성취감

역시 교수의 ‘설(說)’은 막힘이 없었다. 버릴 것이 없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모두를 받아 적어야 했다. 그는 젊은 시절 많은 방황을 했다고 했다. 그런 방황을 하며 철저히 고독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죽이는 것이 황홀한 삶의 시작”이라며 “고독하지 않고는 독립된 자신을 찾을 수 없다”고 단정했다. 장르를 만드는 일류(一流)의 삶을 노래했고, 예민하고 민감해져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와의 유쾌하고도 짭짤한 이야기는 소크라테스로 시작했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넘겨 줄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가수 나훈아는 노래 ‘테스 형’으로 모두를 열광시켰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왜 이렇게 중심에 섰나?”
-스티브 잡스가 소크라테스를 만나고 싶어 한 것은 인간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철학자 소크라테스였다 철학자와 한나절을 만나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하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줘버려도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철학자의 도움을 받아 시선의 높이를 최고도로 높이면, 돈을 훨씬 더 많이 버는 것과 같은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는 각자가 가진 시선의 높이 이상을 해낼 수 없다.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를 결정한다. 철학적 시선은 인간이 지적으로 가질 수 있는 시선 가운데 가장 높다. 시선의 높이에 따라 영향력과 통제력이 달라진다. 시선이 높으면 영향력과 통제력은 커진다. 잡스는 그 비밀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큰 기업 경영자들은 철학자들인가?”
-철학자는 아니더라도 인문학적 소양이 높거나, 인문적 시선이 높은 이들이 많다. 미국의 유에스에이라는 신문에서 미국의 1등부터 1000등까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의 전공을 살펴보니 경영이나 경제를 전공한 이들은 3분의1 정도였다. 나머지 3분의2는 인문학 전공자들이었다. 선도력을 발휘하는 나라는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고, 선도력은 상상력과 창의성에서 시작된다. 상상력과 창의성은 지적인 활동인데, 이는 인문적 시선의 높이에서 나온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뉴스1과 인터뷰 하고 있다.2021.1.6© 뉴스1이길우 객원대기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뉴스1과 인터뷰 하고 있다.2021.1.6© 뉴스1이길우 객원대기자

“최근 인문학에 관심이 높아졌다. 도대체 인문학은 무엇인가?”
-인문학은 말 그대로 인간(人)이 그리는 무늬(文)에 접촉하는 지적 활동의 이론 체계다. 인문은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동선이다. 인간이 움직이는 패턴과 흐름을 알아내는 것이다. 누가 나의 동선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 사람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동선을 미리 안다면, 인간의 기호나 변화를 미리 파악해 거기에 맞추거나 심지어는 컨트롤할 수 있다. 인문학은 인간의 동선이나 무늬를 지적으로 이해하고 반응하는 학문이다.


◇1등 기업은 있으나 1류 기업은 없는 한국…고유함, 창의성이 핵심

“역사적으로 인문학은 동양이 앞선 것인가? 서양이 앞선 것인가?”
-많은 논란이 있는 질문이다. 자연의 동선을 아는 것은 이학(理學)이고, 사람의 동선을 아는 것은 인문학이다. 두 덩어리가 함께 어울려 문명을 만들어간다. 인문학의 최고 높이에 철학이 있고, 이학을 대개는 과학이라 한다. 역사적으로 아편전쟁(1840~1860)이 큰 의미를 지닌다. 아편전쟁은 서양에 의한 동양의 완전 패배를 의미하고,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완전’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모두에서 졌거나 모두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정신문명은 동양이 앞섰는데, 서양의 물질문명에 당했을 뿐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과 일본은 서양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처음엔 기술 문명을 따라잡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채고, 기술 문명의 위 단계인 제도를 따라잡으려 했다. 제도를 따라잡으려 노력하다가 그것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제도보다 높은 단계인 철학과 과학을 따라잡으려 노력하게 된다.서양을 극복하려는 이런 노력 과정에서 서양의 궁극적인 힘의 원천이 과학과 철학에 있음을 알게됐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동양에는 철학과 과학이 없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 철학은 철학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서양 철학의 방법론에 맞추어 철학 대접을 해주는 학문이다. 동양에 없던 철학이라는 방법론이 들어와서 동양의 수준 높은 사상을 철학적으로 다루는 학문을 동양철학으로 불러주는 것이니 동양철학이라는 학문은 아주 오래된 자료들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철학이라는 영역에서는 사실 새로 생긴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굳이 하라고 강요한다면, 인문학은 서양이 동양보다 앞섰다고 대답하겠다. 비유적으로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동아시아에는 연산과 대수까지만 발전했다. 기하학은 발전하지 못했다. 서양에는 기하학이 잘 발달했다. 기하학이 연산 대수보다 훨씬 더 추상적이다. 기하학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서양 사유의 수학적 시선이 연산과 대수까지만 발달했던 동양보다 높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패권국이었던 중국도 과학은 아직 없었다. 당시까지 우리는 과학이 아니라 기술의 높이까지만 산 것이다. 아편전쟁은 기술 문명에서 과학 문명으로 세계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분기점이다. 중국이 화약과 종이, 나침판 등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명했지만, 그것들은 기술이지 과학은 아니다. 기술의 시대에서 과학의 시대로 문명이 이동할 때, 동아시아는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주도권을 서양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정리하면, 서양의 지적인 시선이 동아시아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았다. 다시 말하면, 훨씬 더 추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엔 아직 한 번도 세계적인 일류 기업이 없었나?”
-너무 이론적이고 너무 야박하게 말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다. 우리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엄격하게 말해보겠다. 1등 기업은 있으나 일류 기업은 아직 없다. 물론 내가 아직 모르는 일류 기업이 있을 수 있다. 1등 기업은 남들이 만든 물건을 빌려다가, 혹은 다른 기업들에도 있는 것을 재생산해서 다른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잘하면 된다. 일류는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판을 새로 짜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고유함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가 핵심이다. 창의적인가의 여부인 것이다. 1등이 아닌 일류가 돼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일류가 1등보다 더 독립적이고,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류는 질문의 결과로 나오고, 1등은 대답의 결과로 나온다. 대답은 이미 있는 이론과 지식을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행위이다. 여기에는 정답이 존재한다. 질문은 오직 자기에게만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튀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것이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고 오히려 불편함이나 문제가 노출된다. 질문이 튀어나오게 하는 힘이 자신에게만 있는 욕망이다.

“교수님은 강연이나 책을 통해 이성으로 욕망을 관리하지 말고, 이성을 욕망의 지배하에 두라고 당부했다. 또 욕망에 집중하라고 했다. 인간의 욕망은 어떤 의미가 있나?”
-‘욕망’은 여기 있는 나를 저곳으로 건너가게 하는 의지이자 힘이다. 건너갈 수 있게 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질문은 욕망이 작동해야 가능하다. 질문은 장르를 개척한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보다 자동차라는 장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답만 하는 인재로 채워진 사회에서 장르의 개척은 어렵다. 정답만 찾게 하는 대답의 습성은 사람을 멈춰 서게 하고 과거를 살게 한다. 욕망이 꿈틀거리는 사람만이 장르를 개척할 수 있고 일류가 될 수 있다. 살아있는 욕망과 질문하는 힘이 있어야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 건너갈 수 있다. 욕망에 의지하는 사람은 자잘하지 않다. 그 씨알이 크고 굵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만들어 현대인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잡스가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당시 MP3와 핸드폰을 따로 따로 쓰던 시대였다. 두 개를 따로 쓰면서 누구도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컴퓨터와 핸드폰이 따로 있었으나 누구도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 스티브 잡스는 거기서 불편함을 느꼈다. 예민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발견한 문제, 즉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덤볐고 따로 있는 것들을 서로 연결했다. 문제 해결 방식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유’(有)들끼리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창의력의 핵심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두 개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이 나오고, 그것 때문에 새로운 흐름이 형성된다. 변화가 야기되는 것이다. 변화를 야기하려면 정답이 아니라 우선 불편함(문제)을 느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세계에 변화를 야기한 사람이다. 그가 위대한 이유다.

◇장자의 '吾喪我' 낡은 자기와 결별하는 것…진짜 자기와 만난다

“창조성을 키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불편함을 느끼는 예민함이 있어야 한다. 부처도 예수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깨어 있으라고…. 생각하라는 뜻이다. 예민하고 민감하고 생각을 해야 문제를 발견하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무던하고 무딘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어렵다. 또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버릇이 없어야 한다. 정답이라고 정해진 틀을 깨고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버릇이 없으면 기성세대와 갈등이 요인이 된다.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버릇이 없어야 하나?”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다. 어느 시대에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 버릇이 없어야 한다. 버릇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새롭게 열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생각을 확대해보면, 젊다는 것과 버릇이 없다는 것은 거의 동의어다. 버릇은 이미 만들어진 기준이다. 젊은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젊은이라면 이미 정해진 모든 것에 짜증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기존의 정해진 것이 편안하게 느껴져서 그 한 귀퉁이를 남보다 일찍 크게 잡으려고 안달한다면 젊은이가 아니다. 이미 정해진 모든 것들을 불편해하는 것이 젊은이의 진실한 자세다. 이 진실에서 창의력이 나온다. 철학은 인간이 신이 주인이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주인 노릇하겠다고 신의 세계에서 이탈하면서 생겨났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품을 벗어나려는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 얼마나 버릇없이 보였겠는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뉴스1과 인터뷰하며 포즈를 잡았다.2021.1.6 ©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뉴스1과 인터뷰하며 포즈를 잡았다.2021.1.6 ©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자신을 죽이는 것이 황홀한 삶의 시작이라고 하셨다.”
-진짜 자기를 발견하려면 낡은 자신을 죽여야 한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가 누군가인지, 나를 구성하는 것들이 남들이 준 것이거나 사회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내가 생산한 것인지? 바람직한 것으로 자리 잡은 것들인지 아니면 내가 바라는 것들인지. 해야 하는 것들인지 하고 싶은 것들인지. 좋은 것들인지 좋아하는 것들인지. 그 정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각성해야 새로워질 수 있다. 장자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려면 우선 ‘자신을 장례 지내야’(吾喪我)한다고 했다. ‘자기 살해’이다. 외부의 것들로 채워진 낡은 자기와 결별하지 않고는 절대 새롭고 진실한 자기를 만날 수 없다. 예수나 부처가 왜 그렇게 회개와 참회를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자기 살해는 남들과 공유하는 가치와 이념으로 꽉 채워진 폐쇄적인 자기를 벗어나 개방적 자아로 깨어나는 것이다. 자신만의 욕망으로 자기를 새롭게 건설하는 순간이 바로 황홀경이다. 그래야 자신이 진짜 자기로 등장한다.

“독립적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고독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인들은 SNS를 통해 쉼 없이 외부와 소통한다. 그런 현대인들은 독립적인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고독과 외로움은 구별돼야 한다. 외로움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심리이다. 나 말고 다른 것에 의존해야 만족스럽고 편안하고, 그것이 없을 때 결핍이나 불안을 느끼는 것이 외로움이다. 고독은 외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할 때 느껴지는 독립적인 심리이다. 독립은 익숙한 것이 갑자기 낡고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거기로부터 벗어나려고 용기를 발휘해 얻은 선물이다. 독립된 주체는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절’을 감행한다. 이 단절을 기반으로 자신이 새롭게 발견되고, 그 힘으로 새로운 연결이 가능해진다. 연결을 통해 발휘되는 창의력은 기존의 정해진 관념과 과감하게 단절된 독립적 주체에게만 일어날 수 있다. 고독한 존재는 꿈을 꾼다. 외로운 존재는 현실의 한 귀퉁이를 붙잡으려고 애를 쓴다. 고독한 존재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려 하고, 외로운 존재는 익숙한 세계에 남으려 한다.

◇소확행이 행복의 전부라면 큰 착각…예능 아닌 예술에 집착했으면

“젊은이들 가운데는 소확행 즉, 사소한 것에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소확행은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다. 하루키라는 이름이 주는 폭과 높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세계를 노래하는 작가이다. 어느 날 그가 서랍을 열어보니 앙말이 가지런히 정리돼 놓여 있고, 옷장에는 깨끗한 와이셔츠가 걸려 있었다. 그때 엄청 행복함을 느꼈다. 이런 일상의 작은 일들이 주는 행복이 세계를 노래하는 그가 누리는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큰 행복에만 빠져 있다가 작은 행복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작은 행복을 연료로 큰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작은 행복이 그의 행복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잘한 행복이 전부인줄 알면 하루키에게 완전히 속은 것이다. 하루키 정도 되니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소확행이 전부인 젊은이는 자기의 포부나 꿈이 없이 자본주의의 부스러기나 먹으며 얻는 심리적 만족감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려면 평소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나?”
-핵심은 용기를 내어 자신을 향해 걷는 것이다. 인생이 매우 짧다는 것을 절실히 인식 한다. 그러면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가고 싶은가. 이런 질문이 없으면 더 이상의 삶은 없다. 묻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인간은 쪼그라든다. 헤르만 헤세는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다’고 말한다. 자신 이상을 욕망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자신 이상을 꿈꾸지 않으면 우주에서 어떤 선물도 주지 않는다.

“요즘은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홍수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빠진 젊은이들을 어떻게 보나?”
-젊은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그런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예능에만 ‘빠진다’는 것이다. 예능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생각하며 즐겨야 쾌락이 온다. 반면 예능은 생각하지 않으며 즐겨야 쾌락이 온다. 깊은 생각을 하며 예능을 보면 재미가 없다. 예능을 즐기는 이유는 생각하는 수고를 하기 싫어서다. 생각하는 데는 힘이 든다. 누군가 예능에만 빠진다면, 그는 분명히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생각하는 수고를 많이 하다보면,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예능은 그럴 때 즐겨도 충분하다. 큰 폭과 높은 높이가 없이 소확행에만 빠지면 사람이 작아져버리듯이, 예술 없이 예능에만 빠져도 사람은 쉽게 작아진다.

“나이들면서도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문명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문명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른다. 자신이 가진 문명적 식견이나 태도를 고집하면 시대에 뒤처지는 꼰대가 된다. 지적 게으름에 빠지면 사고가 굳어가고, 결국 깡통이 된다. 힘들다고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면 지금 이상(以上)이 없다. 부단한 학습과 적응력이 요구된다. 결국 부단한 건너가기밖에 없다.  

“평소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시는데,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수련이다. 인간은 탐욕스러울 정도로 지식욕이 있어야 한다. 일단 많이 알아야 한다. 세계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만든 장치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장치가 지식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지식 이상의 도구는 없다. 지식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내공이 쌓인다. 내공 없는 지식은 답답하고, 지식 없는 내공은 경박하다. 지식과 내공을 함께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는 독서가 최고다.

◇운동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하라…독서 통해 지식 쌓아야 세계로 항해

“육체적인 운동은 철학적 삶에 어떤 의미가 있나? 평소에 운동하라고 강조한 이유는?”
-운동은 힘들다. 하지만 운동을 한다. 왜냐하면 운동을 하면 더 나아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나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삶이 1인치도 성장하지 못한다. 만약 한정된 시간에 공부를 할 것인가, 아니면 운동을 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운동을 하라고 권한다. 운동이 자기 통제력을 잘 키워준다. 지적 습관이 어느 정도 된 사람이라면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운동하는 것보다, 운동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하는 것이 삶의 완성도를 높인다. 공부는 제3자의 생각이나 지식과 만나는 일로 시작한다면, 운동은 오로지 자기를 만나는 일이다. 운동은 지식을 증가시켜주지는 않지만, 지력을 키워준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고 생각하는 능력인 지력이다.

“교수님은 운동을 많이 하나?”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꾸준히 하는 편인 것 같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건국이라는 어젠다를 수행했고,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국가적 어젠다를 온 국민이 함께 진행했다. 이제 어떤 어젠다를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고 보는가? 통치의 시선을 어느 높이로 올려야 하는가?”
-이제는 그동안 따라하기로 살아온 삶을 넘어서서 독립적이고 선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어젠다를 가져야 할 때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아주 강하게 욕망해야 한다. 욕망하지도 않으면 시작도 못한다.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은 이미 있는 것을 재평가하는데 머물러 있었고, 그 이상을 꿈꾸지 않았다. 미래를 꿈꾸는 역량을 배양하지 못했다. 미래를 꿈꾸려면 질문하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대답은 멈추게 하고, 질문은 건너가게 한다. 우리는 건너가는 힘을 아직 키우지 못했다. 생각을 하는 힘이 약한 것이다. 심리적으로 이미 있는 것을 뛰어 넘어, 다음을 꿈꾸고 욕망하는 준비를 하지 않으면 선진국이나 선도국도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생각하는 능력을 서둘러 길러야 한다.

“최근 정부가 5·18 역사왜곡 특별법을 만든 것에 대해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제목의 시를 통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우리는 좀 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삶으로 진화해야 한다. 5·18 투쟁도 그래서 한 것이고, 다른 민주화 투쟁들도 그래서 한 것이다. 특정한 역사를 특정한 법으로 정해버리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와 자유의 핵심이다. 역사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 역사 해석을 국가나 특정 정치세력이 독점하면 절대 안 된다는 정신으로 역사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꾸지 않았는가. 이런 정신을 5·18 역사왜곡특별법에는 적용하지 않나? 이런 법은 소탐대실의 전형이다.

“현 정부가 불편한가?”
-나의 심리적 불편함은 큰 문제가 아니다. 사회 공동체가 조금이나마 더 민주적이고 더 자유로운 방향으로 진화해 나아가야 한다. 나라가 민주와 자유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

“교수님은 중국 철학자 장자(莊子) 전문가이다. 장자가 살던 시대는 이미 2300년 전이라 지금과 시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그 시대를 살던 장자의 생각을 배우고 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장자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서 살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장자의 콘텐츠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유의 높이를 배워서 그 높이를 자신의 삶으로 응용하여 가장 멋지게 살려고 도전할 뿐이다. 장자는 진짜 자기를 발견하여 그것을 우주의 넓이로 키우고 우주의 높이로 승화하려 했다. 이런 포부와 크기가 매력적이다.

“장자는 숨진 아내를 장례하면서 노래를 불러 문상 온 친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장자가 부인의 죽음 앞에서 노래를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장자는 ‘나라고 슬프지 않겠느냐?’는 말을 분명히 했다. 인간적인 감각과 본능에서는 슬픈 일이다. 그래서 장자도 슬프기는 슬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부인이 우주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지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축하한 것이다. 우주는 ‘기’(氣) 하나로 되어 있다, 우주 만물은 기의 연합이다. 기가 모이면 생겨나는 것이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 것이다. 죽음은 ‘기’가 운동하는 하나의 과정(프로세스)이니 슬퍼할 이론적 이유가 없는 것이다. 본능적이고 감각적으로는 슬퍼할 일이지만, 지적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축하할 일이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1.1.6© 뉴스1 이승아 기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1.1.6© 뉴스1 이승아 기자

"코로나19로 전 인류가 불안과 혼돈에 빠져있다. 인류는 큰 전염병을 겪으며 삶의 방식이 바뀌어왔다. 포스트 코로나를 어떻게 예상하나?"
-문명사를 보면 기술적으로 이미 개발되고 준비된 것들이 있는데, 인간이 익숙함을 벗어나지 못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지 않고 있을 때 전쟁이나 팬데믹이 일어나서 그것을 강제로 적용시키는 일을 하곤 했다. 지금의 코로나19 그럴 것이라고 본다. 팬데믹에 적응하고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미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과감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원칙이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내용이 분명한 어떤 선명한 원칙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다만 나만의 비밀스러운 각성이 있다. 내가 금방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 각성을 철저히 했다.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나를 지키고 진짜 나를 살리는 길인지에 관심이 많다. 진짜 내가 되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과감하게 버렸고, 도움이 되는 것은 과감하게 선택한다.

“호접몽가의 구호는 ‘새말 새몸짓’이다. 무슨 의미인가?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의지가 담겨 있다. 나에게 과거는 모두 헌 말 헌 몸짓이다. 새 말 새 몸짓으로 무장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싶다. 말은 세계관이자 문법이고, 몸짓은 태도이다. 인간은 세계관(문법)과 태도로만 삶을 운용할 수 있다. 새 문법과 새 태도로 무장해야 새 세상을 열 수 있다. 일등국가에서 일류국가로, 전술국가에서 전략국가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나아가는 것이 새 세상을 여는 일의 구체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누군가 해 놓은 생각의 결과를 얻어와 사는 삶에서 스스로 생각하며 사는 삶으로 바뀌는 일이다. 선례를 찾는 삶에서 선례가 되려는 삶으로 도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조언 한다면?”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다. 탐험하고 도전하는 존재란 뜻이다. 인생 짧다. 되도록 황당무계하게 거침없이 살아볼 필요가 있다. 무슨 뜻인지 설명하지 않겠다. 화두로 남겨주고 싶다. 황당무계…
 



kichen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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