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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월요묵상] 천노엘 신부의 마음으로 2021년을 산다면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2020-12-28 06:30 송고 | 2020-12-28 09:20 최종수정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크리스마스는 한 해를 마감하고 다가오는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중요한 의례다. 빙하시대를 경험한 현생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추위를 견뎌야 했다.

이 추위의 정점은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12월22일 동지다. 동지는 동시에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추위로 상징되는 죽음의 문턱을 건너가야 한다. 그 경계를 건너갈 수 있는지, 그 능력을 시험하는 기간이 3일이다. 우리가 삼일장을 지내는 이유도 완전한 죽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12월25일은 그런 충분한 죽음 후에 다가오는 희망의 의례다. 북유럽에서 빙하기를 견딘 호모 사피엔스는 이날을 죽음과 어둠이 물러가고 생명과 빛이 시작하는 희망의 날로 정했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그리스도교를 수용한 후, 빛의 축제일인 12월25일을 예수의 탄생으로 정해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의례로 삼았다.

1년 전, 과학기술로 무장한 21세기 신인류에게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바이러스가 중국 어디에선가 갑자기 등장해 그 오만한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아 볼모로 잡았다. 코로나19란 바이러스는 인류의 가장 큰 축제인 크리스마스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탄생을 기념하는 캐럴을 무음으로 처리하고 크리스마스트리 위에서 조명들의 빛을 꺼버렸다. 텅 비어있는 시내는 인류가 경험해보지 않는 초현실적인 기괴함이다.

인간은 타인과 대면해 눈으로 정답게 인사하고 입으로 친절한 말을 건네고 몸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확인할 때 행복하다. 이 전염병은 그런 인간문화를 한순간에 취소시켜, 휴대폰 의존도를 높였다. 우리는 휴대폰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다. 절제되지 않은 우리의 눈과 손은 우리를 SNS와 배달앱에 탐닉하도록 유도한다.

그런 암울한 크리스마스 저녁, 나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우연히 한 방송국 채널에서 마련한 '노엘의 선물'이란 성탄 특집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정말 오랜만에 볼만한 프로그램이었다. 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한 신부의 천진난만한 얼굴과 친절한 말에서 이상적인 인상의 모습, 즉 신적인 아우라를 느꼈다. 내 눈에는 눈물이 저절로 고였고 나도 그 신부처럼 살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이 신부는 아일랜드에서 선교사로 온 오닐 패트릭 노엘이다. 한국에선 천노엘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가톨릭 집안에서 1932년에 태어나 1956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일생을 자신이 결정한 거룩한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그는 원래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갈 예정이었으나, 6·25전쟁의 참사를 보고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했다.

당시 아일랜드 부모들은 말썽부리는 아이들에게 "너 계속 말썽부리면, 한국 보낸다!"라고 말하며 겁을 줬다. 그 당시 한국은 빈국 중의 빈국이었다. 천노엘 신부는 그런 한국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성소'(聖召) 즉 '거룩한 부르심'에 온전히 복종해 한국으로 떠난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한국으로 직접 오는 운행 수단이 없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화물선에 몸을 싣고 3개월 동안 항해해 1957년 12월10일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엠마오의 그리스도' 르네상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 유화, 1601, 런던 영국 국립 미술관.© 뉴스1

천 신부는 전라도 지역에서 정착해 24년간 사목활동을 했다. 그는 또한 장애인, 결핵환자, 알코올중독자, 부랑자, 독거노인 등 600여명이 집단생활을 하고 있던 '무릉갱생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고유한 임무를 발견한다.

그는 이 봉사활동을 통해 지적장애인들이 자기 권익을 주장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의 진솔한 마음씨에 감동했다. 그들은 파란 눈의 신부를 만나면 항상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아이고, 신부님,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사랑합니다." 이들은 상대방을 생김새나 사전정보로 차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 순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반응한다.

1979년 어느 날, 천 신부는 한 봉사자로부터 '무릉갱생원'에서나 만난 19세 지적장애인이 급성폐렴으로 입원해 위독하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그 아이의 이름은 '여아'였다. 어릴 적에 버림을 받아 이름도 없어 사람들이 여아라고 불렀을 것이다. 천 신부가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하니 여아는 임종 직전이었다. 그는 여아의 손을 잡고 임종미사를 드렸다. 여아는 신부의 눈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유언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이 죽어가는 여아는 무엇이 감사한 것인가?

병원은 신부에게 연고가 없는 여아의 장례를 치르는 대신, 그의 시신을 병원연구실에 해부용으로 기부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19년 동안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여아의 마지막은 인간다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아를 천주교회묘지에 매장해 장례식을 정성스럽게 치렀다. 그리고 여아의 묘비에 이렇게 적었다.

"고(故) 김마리아(여아)의 묘
사회를 용서해 주시렵니까"

천 신부는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갱생원에 있던 지적장애인들 친구들과 함께 여아의 무덤을 성묘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들을 위한 특수사목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1981년 안식년을 맞이해 외국을 돌며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둘러보고 사례를 연구했다. 지적장애인들은 별도의 대형시설에서 집단으로 격리돼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도시 안에서 생활하는 소규모 가족형 주거시설인 '그룹홈'을 1981년에 창설했다. 천 신부는 그 이후 이들이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시설을 관장하는 '엠마우스 복지관'을 설립했다.

천 신부는 복지관의 이름을 '엠마우스'라고 지었다. 엠마오의 두 제자는 낯선 자를 자신의 집으로 인도해 식사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들이 식사하려 하니 그 낯선 자가 바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부활한 예수였다. 천 신부에게 여아와 같은 지적장애인이 바로 부활한 예수일 것이다.

며칠 남지 않은 2020년이란 시간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2020년에 도움이 필요한 '여아'를 모른 체했는가? 모른 체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는가?" 코로나19는 2021년에도 우리의 삶을 힘들게 만들 것이다. 특히 우리 주위의 '이름 모를 여아'들은 생존을 위한 힘든 싸움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천 신부의 마음으로 2021년을 살고 싶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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