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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호 침몰 50주년下]세월호와 판박이…참사 전후 국가는 없었다

SOS 묵살돼 인명구조 늦어져…日 외신으로 사고 파악
위령탑도 한때 방치 논란…유족들에게는 현재진행형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홍수영 기자 | 2020-12-15 07:00 송고 | 2020-12-15 08:54 최종수정
편집자주 1970년 12월15일 발생한 남영호 침몰 사고가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남영호 사고는 세월호를 포함하더라도 해상사고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다. 하지만 당시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사고는 순식간에 대중의 뇌리에서 잊혔다. 지금도 사망자가 가장 많은 제주에서조차 큰 관심을 얻지못하고 있다. 뉴스1제주본부는 2차례에 걸쳐 발생 50주기를 맞아 남영호 사고를 재조명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전한다.
제주 서귀포시 정방폭포 주차장 인근에 설치된 남영호 위령탑에 새겨진 희생자 명단 비석. /© 뉴스1

남영호와 세월호는 무고한 사람들이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숨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영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은 선박회사측의 무리한 과적으로 추정되지만 제때 구조가 됐고 과적 단속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남영호 침몰 사고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도 우리나라 구조대가 아니라 일본 해상안전부 소속 순시선이었다.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서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짐작할 수 있다.

매일경제는 1970년 12월18일자 신문에서 "남영호 침몰 사건때 타전된 SOS가 여수어업무선국에 입전됐으나 숙직원에 의해 묵살됐다"고 보도했다.

매일경제는 SOS가 즉시 수신됐다면 9시간 이상 빨리 구조작업에 착수해 생존자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같은해 12월16일자 신문에서 "생환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100여명의 승객은 바다에 뛰어들었으나 현장은 상어가 많은 곳이고 100여명은 탈출도 못해 가라앉은 배 속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우리나라 정부가 외신을 통해서 사고를 뒤늦게 파악했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경향신문은 같은날 보도에서 "남영호가 입항 예정시간을 4시간이 남겼으나 해운국, 경찰, 소속회사는 조난확인을 하기는커녕 일본해상보안청의 남영호 조난발표를 외신을 통해 듣고서 겨우 제주~부산간 정기여객선의 출입항을 확인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1971년 서귀포항에 세워진 남영호 위령탑. 이 위령탑은 1982년 상효동으로 옮겨진 뒤 2014년 다시 현재의 정방폭포 주차장으로 이설됐다(한국향토문화대전 제공) /© 뉴스1

◇군사정권 시절 울분삼킴 유족들…위령탑도 한때 방치


300명 이상의 희생자 가운데 인양된 시신은 18구(부산해양심판원 기준)에 불과했다.

오랫동안 바닷속에 있던 시신의 신분을 확인할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족 차효근씨(61)의 어머니 역시 목걸이와 반지 등의 패물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차씨는 동네사람들이 상여에 매인 광목 끈을 걸어메고 장지로 향하던 장례식을 기억한다.

온 동네 주민들이 아픔을 공유했고 지금도 남영호 사고 유족들은 한날한시 각자의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진상조사를 요구하던 유족들은 서슬퍼런 독재정권의 탄압과도 맞서야 했다.

유족 나종열씨(71)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어서 정부가 (유족들을)꼼짝 못하게 만들어 할말도 제대로 못했다. 큰 소리치면 잡아다가 족치고 공무원, 교사 등도 각 기관에서 압력을 넣어 입을 닫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남영호 위령탑의 이설 과정만 봐도 정부가 희생자와 유족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알수 있다.

위령탑은 1971년 3월 서귀포항에 세워졌다가 1982년 항만 확장공사 등을 이유로 1982년 상효동으로 옮겨졌다.

상효동에 옮겨진 위령탑은 진입로나 안내표지판도 없이 주변에 잡초만 무성한채 방치돼 논란이 됐다.

엉망진창이된 위령탑을 보고 분개한 나종열씨는 몇 안되는 유족들과 함께 2013년 유족회를 결성했다. 현재 나씨는 유족회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정방폭포 주차장 인근에 세워진 남영호 위령탑. /© 뉴스1

제주도와 서귀포시는 유족회 요구를 수용해 위령탑은 2014년 현재의 정방폭포 주차장 서측으로 다시 옮겼다.

2013년부터는 매년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고 올해는 50주년을 맞아 한국예총 서귀포지회 주최로 추모예술제가 열린다.

◇50년 무관심에 지친 유족들…"기억해주길"

유족들에게 남영호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세월호 사고로 반짝 관심을 얻었지만 그 이후 다시 국민과 도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아직도 정확한 사고 기록이나 통계가 없고 실종자가 워낙 많아 유족을 파악하는 것조차 미진한 실정이다.

유족들이 지금 원하는 것은 뒤늦은 보상이 아니라 '기억'이다.

차효근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해난사고인 남영호 침몰은 역사적으로 잊혀져서는 안되는데 이 사회가 이 아픔을 진심으로 보듬을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차씨는 "지금까지 공식석상 등에서 남영호를 한 줄이라도 거론하거나 기억해주는 정치인도, 언론도 본 적 없다"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나씨는 "50년동안 정부에서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며 "고위층들은 신경을 안쓰고 도지사나 국회의원도 남영호 사고는 잘 모를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 후손들이 이 사고의 교훈과 아픔을 이어가야 하는데 자료도 턱없이 부족하고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유족들을 찾기도 힘들다. 이대로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유족 찾기 운동을 더 벌이고 현대 기술로 가능하다면 바다에 수장된 영혼들을 찾아주길 바랄 뿐"이라고 호소했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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