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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호 침몰 50주년上] 50년전 그날…이땅에서 잊힌 323명의 비극

338명 중 생존자 불과 15명…우리나라 최악의 해상사고
감귤상자 등 무리한 과적이 사고 원인이었지만 처벌 미미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홍수영 기자 | 2020-12-15 07:00 송고 | 2020-12-15 08:51 최종수정
편집자주 1970년 12월15일 발생한 남영호 침몰 사고가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남영호 사고는 세월호를 포함하더라도 해상사고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다. 하지만 당시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사고는 순식간에 대중의 뇌리에서 잊혔다. 지금도 사망자가 가장 많은 제주에서조차 큰 관심을 얻지못하고 있다. 뉴스1제주본부는 2차례에 걸쳐 발생 50주기를 맞아 남영호 사고를 재조명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전한다.
남영호 침몰 사고 후 시신 운구의 모습(한국향토문화대전 제공) /© 뉴스1

"제주만의 비극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비극입니다"

2014년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10대 학생들을 포함해 304명이 생명을 잃은 이 사고를 두고 누군가는 대한민국이 멈췄다고 했다.

TV화면으로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종열씨(71)에게 이 사고의 아픔과 충격은 더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나종열씨는 세월호를 포함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해상 참사인 50년 전 남영호 침몰 사고의 유족이다.

부산지방해난심판원의 이 사고 관련 재결서(1971년 9월6일)와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등에 따르면 남영호 침몰 사고는 1970년 12월15일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항에서 출항해 부산과 제주를 오가던 여객선 남영호가 침몰한 사건이다.

중량 363톤, 길이 43m, 폭 7.2m의 남영호는 321명(승객 302명, 선원 19명)이 승선해 시속 15노트로 항해할 수 있는 여객선이었다. 1968년 3월5일 첫 취항한 지 12년만에 우리나라 역대 최악의 해상사고를 낸 배로 기록된다.

◇338명 가운데 323명 사망·실종…생존자 15명

남영호는 1970년 12월14일 오후 5시 서귀포항에서 200여명을 태우고 출항해 성산항에서 추가로 100여 명을 더 태우고 오후 8시쯤 부산으로 떠났다.

성산항을 떠나고 약 5시간 반만인 새벽 강풍에 휘청이던 남영호는 선체가 기울기 시작해 전남 여수시 소리도 인근에서 침몰한다.

이 사고는 지금과는 달리 승선자 명부가 정확하지 않고 정부의 제대로 된 진상조사도 없어서 사망자와 실종자수 등이 언론보도나 기록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부산지방해난심판원의 재결서를 기준으로 보면 승객수 322명을 포함해 총 338명이 남영호에 탔다.

부산지방해난심판원은 338명 가운데 생존자 15명, 실종자 305명, 사망자 18명으로 집계했다. 이 기록만 봐도 사실상 323명이 숨진 것인데 추가 승객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제주 서귀포시 정방폭포 주차장 인근에 설치된 희생자 명단 비석. /© 뉴스1

나씨는 이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사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씨는 "어머니가 친구들과 부산으로 가려고 비행기표까지 끊었는데 느긋하게 가고 싶다며 배로 바꿔탔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나씨는 "배안에는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들도 많았다. 제주에는 가구점 등이 없어 예물을 사려고 부산으로 가다 변을 당했다"며 "당시에는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탑승객을 관리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태웠으니 정확한 신원을 알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나씨는 "어머니는 침몰하면서 감귤상자를 끌어안고 있어서 그래도 일주일만에 대마도에서 시신이 발견될 수 있었지만 300명이 넘는 사람들은 물속에 잠겼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유족 차효근씨(61)의 어머니는 부산에서 사진 인화지, X선 필름 등을 사다가 제주 사진사 등에게 파는 일을 하려고 배를 탔다가 비극의 희생자가 됐다.

사고 당시 11살이었던 차씨는 "내가 다니던 서귀국민학교에서도 하루아침에 사고로 부모님과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며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던 어머니 시신이 한참 지나서야 발견됐는데 너무 어려서 창고에 있던 어머니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제주 서귀포시 정방폭포 인근 주차장에 설치된 남영호 위령탑 주변을 올레꾼이 걷고 있다© 뉴스1

◇감귤상자 등 과적이 사고 원인…책임자 솜방망이 처벌


남영호 사고의 1차적인 원인은 과적이다.

승객수도 정원을 초과했고 선박회사측은 배 안의 화물창고 3개가 감귤상자로 다 채워지자 선적이 금지된 곳에까지 감귤 900여 상자를 쌓았다. 이미 출항할 때부터 선체 중심이 15도쯤 기운 상태였다.

부산지방해난심판원은 "선장은 선적 불량으로 선체의 안정이 불량한데도 고려치 않고 또한 풍조의 영향을 유의치 않은채 운항한 직무상의 과실로 인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다른 선원들도 화물 선적에 있어 두부과중(頭部過重)을 고려치도 않고 다량의 화물을 결박치도 않은채 갑판상에 적재했을 뿐 아니라 최대 탑재인원을 초과해 다수의 여객을 승선시킨 직무상의 과실도 있다"고 밝혔다.

출항 열흘 전에야 해당 항로에 경험이 부족한 항해사를 선장으로 바꾼 것도 참사가 일어난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300명이 넘는 비극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관련자 7명이 재판에 넘겨져 남영호 선장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만 적용돼 2년6개월의 금고형이, 선주에게는 금고 6개월에 벌금 3만원, 통신장에게는 벌금 1만원이 선고되는 등 3명은 유죄를, 나머지 4명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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