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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만나자" 낯선 이의 전화…범죄는 아니라는 法

연세대생 65명에 만남요구 男 불기소의견 송치한 경찰
"충분히 무섭고 불쾌한데"…사기·협박·성희롱 등만 처벌

(서울=뉴스1) 이밝음 기자 | 2020-12-04 07:00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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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게 처벌이 안 돼요?"

지난달 7일 연세대 학생 65명에게 "만나자"고 연락한 남성이 불기소 의견(혐의없음)으로 검찰에 넘겨졌다는 소식에 일부 시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 남성은 인터넷 카페에 공개된 학생들 연락처를 이용했다. 해당 연락처 주인의 이름을 문자로 보낸 뒤 답장이 오면 만남을 요구하고 전화를 걸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법 감정과 법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연락처를 불법적으로 얻은 게 아니라 공개된 정보를 이용했다면 낯선 사람에게서 연락이 와도 처벌할 수 없다.

반복적으로 연락하거나 전화를 걸어서 사기나 협박, 성희롱 등을 해야만 범죄가 성립된다. 경찰은 "해당 남성은 학생들이 누구냐고 따져 물으면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그 뒤로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사 처벌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내 이름을 아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이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또 단순전화로 시작한 사건이 스토킹 등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제는 앞으로도 온라인상 공개된 개인정보를 활용한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세대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연락해 만남을 요구했던 남성도 인터넷 카페에 공개된 학생들의 정보를 이용했다.

대학교 신입생 카페에 들어가 조금만 검색해도 전화번호와 이름, 심지어 얼굴과 거주지까지 나와 있는 자기소개 글을 수십 개씩 찾을 수 있다. 온라인에 떠도는 여행 예약글, 구매 후기글 등에서 쉽게 개인정보를 찾을 수 있는 현실에서 제2, 제3의 '무작위 문자' 사건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의 개인정보가 스토킹 같은 범죄에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연락처 외에 다른 정보를 더 많이 얻을수록 범죄의 가능성과 범위는 커진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일단 한 번 개인정보가 흘러나가면 메신저 프로필을 비롯해 거품처럼 빠져나가는 정보가 커진다"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개인 스스로가 정보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본인이 정보를 올릴 때 비공개 설정 등 최소한의 장치를 해둬야 해당 정보가 유출됐을 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래도 기대할 부분이 있다. 법무부는 지난달 27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 했다. 스토킹 행위를 최대 징역 3년(흉기 이용 시 최대 5년)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이 법안은 범죄발생 초기 단계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스토킹이 더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스토킹을 단일 법률로 처벌할 수 있게 되면 스토킹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들도 처벌할 가능성이 생긴다. 스토킹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낯선 사람의 연락도 직접적으로 제재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다만 이를 위해선 법안에 처벌 근거가 담겨 있어야 한다. 입법예고 기간 동안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부디 스토킹범죄 처벌법 공포 전에 유의미한 논의가 이뤄져서 낯선 사람의 연락이 범죄로 이어진 뒤에야 대책을 마련하는 날이 오지 않길 바란다.


brigh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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